위대한 교양인 몽테뉴 (Michel Jokan No Hito)
홋타 요시에(1918- , 일본)
김석희 역
한길사
알라딘, 두레문고

 

 

 

 

1권 전란의 시대 (Michel Jokan No Hito Vol.I Soran No Jidai, 1991)
2권 자연,이성,운명 (Michel Jokan No Hito Vol.II Shizen, Risei, Unmei, 1992)
3권 정신의 축제(Michel Jokan No Hito Vol.III Seishin No Shukusai, 1994)

 


1권
미셸 에켐 드 몽테뉴(1553. 2. 28- 1592)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보르도는 오랫동안 영국이 지배)시 기엔(아키텐의 지방어) 지방의 몽테뉴 성.

당시의 유럽 정세 
① 에스파냐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카를로스 1세),
② 프랑스는 프랑수아 1세 - 카를 5세에게 대항,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와의 동맹관계가 수시로 뒤바뀜. 
③ 나바르 공국 - 개혁파 침투, 마르그리트 공비, 인문주의의 아성.
④ 영국은 헨리 8세 - 영국국교회 설립.
⑤ 이탈리아는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공국.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갈등과 분쟁이 시작,
⑥ 르네상스기.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 마키아벨리, 토마스 모어
⑦ 예수회 설립 :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


에라스무스(1466-1536)
마키아벨리(1469-1527)
미켈란젤로(1475-1564)
토마스 모어(1478-1535)
마르틴 루터(1483-1546)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1491-1556)
헨리 8세(1491, 재위 1509-1547)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1492-1549)
프랑수아 1세(1494, 재위 1515-1547)
카를 5세(1500, 재위 1516/1519-1556)
칼뱅(1509-1564)
앙리2세(1519, 재위 1547-1559)
카트린 드 메디시스(1519-1589)
몽테뉴(1533-1592)

백년전쟁(1337-1453, 영국과 프랑스/잔 다르크)
프랑스를 전장()으로 하여 여러 차례 휴전과 전쟁을 되풀이하면서,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단속적()으로 계속되었다.
영국은 1066년 노르만 왕조의 성립 이후 프랑스 내부에 영토를 소유하였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는 오랫동안 분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1328년 프랑스 카페왕조의 샤를 4세가 남자 후계자가 없이 사망하자, 그의 사촌 형제인 발루아 가()의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올랐다.
이에 대하여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그의 모친이 카페왕가 출신(샤를 4세의 누이)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양국간에 심각한 대립을 빚게 되었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하여 플랑드르에 수출해오던 양모() 공급을 중단하고, 그 보복으로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인 기옌, 지금의 가스코뉴 지방의 몰수를 선언하였으며, 1337년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6세에게 공식적인 도전장을 띄우게 되었다.원래 플랑드르는 프랑스왕의 종주권() 아래에 있었지만, 중세를 통하여 유럽 최대의 모직물 공업지대로서 번창하여, 원료인 양모의 최대 공급국인 영국이 이 지방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기옌 역시 유럽 최대의 포도주 생산지였으므로, 프랑스왕들은 항상 이 두 지방의 탈환을 바라고 있었다. 따라서 전쟁의 근본적 원인은 이 두 지방의 쟁탈을 목표로 한 것이다.


몽테뉴는 라틴어를 모국어처럼 익혔고, 프랑스어는 거의 할 줄 몰랐다. 그가 학문을 익혔던 보르도의 기옌학교 교장은 그 자신이 가톨릭 성직자였으나 많은 프로테스탄트와 이교도를 자처하는 학자들을 교수로 받아들였고, 종교적으로는 자유주의를 표방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라틴어에 능숙했던 몽테뉴는 이교적인 로마의 많은 서사시를 읽으며 성장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간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그 자신의 가치에 따라 평가하지 않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많은 하인과 훌륭한 저택과 권세와 수입을 갖고 있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그의 주변에 있는 것일 뿐 그의 내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왜 한 인간을 평가함에 있어 포장된 상태의 그를 판단하는가. 그래서는 그 자신의 것이 아닌 것들만 볼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은 겉보장만 보여줄 뿐 정작 중요한 부분은 감추게 된다. ... 인간을 판단하려면, 그 사람의 장식품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신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
- 편견을 없애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너무 어렵다. 그 외피들을 다 걷어내려면 얼마나 명료한 눈을 가져야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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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1
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사

 

한 후배가,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원 후배인 그 친구를 떠올리며 문득 이 책이 떠올랐다. 전에 읽다가 그만 뒀는데,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시 한번 도전해 보련다. 근데 정말 궁금하다. 박노자씨는 이 책을 정말 혼자 썼을까? 한문학을 공부했다고는 하지만 왠만한 한국 사람들 이상의 필력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불어도 어렵긴 하지만 내가 외국인이라면 불어보다는 한국어가 더 어렵다고 느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솔직히 나는 불어로 이만큼의 글을 쓰지는 못한다. 한국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도 분석이지만 나는 박노자씨의 필력에 우선 감탄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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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10-01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씨도 그의 한국어 실력에 찬사를 보내더군요 외국인이 썼다고는 믿기 힘든 필력이죠^^

부엉이 2006-10-02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한 번 만나서 확인해보고 싶어요!
 

공산주의 선언(Das Kommunistiche Manifest, 1848)
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1818-1883, 독일)
프리드리히 엥겔스 Frederich Engels(1820-1895, 독일)
김태호 옮김
박종철 출판사
2005.6 알라딘

 



 
 
 
 
 
 
 
1872 독일어판
1882 러시아어 제 2판
1883 독일어판
1888 영어판
1890 독일어판
1892 폴란드어 제 2판
1893 이탈리아어


1888, 영어판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의 유령이.

 1. 부르주아와 프롤레테리아
*부르주아지 bourgeoisie : 생산수단의 소유자, 임금노동의 고용자.
*프롤레테리아 proleteria :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임금 노동자 계급.
사회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끊임없는 대립이며, 그 투쟁의 끝은 사회의 혁명적 개조나 계급의 공동 몰락이었다.
사회는 신분과 등급으로 구분된다.
현대의 부르주아 사회는 봉건사회의 몰락으로 탄생하였으며, 이전 사회의 계급 대립을 타파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양상의 계급 대립으로 바꿔놓았을 뿐이다. 다른 시대와의 차이점은 계급 대립을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테리아트로 단순화했다는 점이다.
성외시민으로부터 부르주아지 최초의 요소들이 발전되었다. 매뉴팩처의 도입으로 장인계급이 쇠퇴하였으며, 공업 생산 혁명으로 대공업이 가능해졌다. 식민지 개척으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부르주아의 자본이 증대되었다. 부르주아의 진보는 생산과 교류 방식의 변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진보를 살펴보면, 봉건제도 하에서는 피억압자였고, 꼬뮌 하에서는 무장자치 연합체였으며, 이탈리아에서는 도시공화국을 이루었다. 프랑스에서는 납세 의무를 지닌 제3신분이었고, 매뉴팩처 시기에는 귀족에 대한 평형추를 이루었다. 대공업과 세계 시장을 통해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했다.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부르주아지는 봉건적 잔제를 타파하고 이해, 금전관계만을 중요시했다. 이기적 타산.
은폐된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한 착취로 탈바꿈.
끊임없는 혁명을 일으키고, 생산을 변화시켰으며, 사회 상태들을 동요시킴. 영원한 불안, 격동 - 다른 사회들과의 차이점.
생산물의 판로를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욕구.
세계의 시장화로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으로 만듦.

새롭게 형성된 것들은 정착되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논문을 쓰다가 부르주아에 대해 궁금해서 산 책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여유가 없어서 자세히 읽지는 못했지만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테리아를 통해 기본적인 개념은 습득되었다. 부르주아지는 '개인의 존엄성을 교환 가치로 해소해 버렸다'는 지적이 매우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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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의 수도원(La Chartreuse de Parme, 1839)
스탕달(Stendhal, 1783-1842, 프랑스)
원윤수, 임미경 공역
민음사
2006.3.13 알라딘

 

 

 

 

 

*등장인물
델 동고 후작
델 동고 후작부인
지나 피에트라네라 백작부인 : 델 동고 후작의 여동생(후의 산세베리나 공작부인)
아스카니오 델 동고 : 후작의 장남
파브리스 발세라 마르케지노 델 동고 : 후작의 차남
블라네스 신부 : 파브리스를 교육. 점성학에 관심.
파비오 콘티 장군 : 파르마의 장군
클렐리아 콘티 : 장군의 딸.
보르다 : 성당 참사원, 지나를 연모.
모스카 델라 로베레 소레자나 백작 : 파르마 대공 에르네스트 4세의 육군대신, 경찰청장, 재무대신. 40-45세.
라베르시 후작부인 : 모스카 백작 일파의 라이벌, 자유주의 당파의 우두머리, 산세베리나 공작의 조카딸.
산세베리나 탁시스 공작 : 모스카 백작이 피에트라네라 백작부인을 궁정에 들이기 위해 위장결혼시킨 대상. 68세의 노인, 거부. 훈장타는 것만을 목적으로 백작부인과의 결혼을 통해 대사자리를 얻고 훗날 훈장을 타기 위해 이 결혼을 받아들인다. 이로써 지나 피에트라네라는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이 된다.
파르마 대공 - 라 뉴체 에르네스트 4세
클라라 파올리나 : 파르마 대공비
란드리아니 신부 : 파르마의 대주교, 귀족 앞에서는 무릎을 꿇기 위해 태어난 사람.
발비 후작부인 : 파르마 대공의 애인.


파브리스는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의 전쟁터로 향한다. 밀라노 공국의 신민인 파브리스는 가짜 여행 증명서를 지니고 다니다가 헌병대에 체포되어 한달의 감옥에 있다가 마음씨 좋은 옥지기의 아내에게서 투옥된 경기병의 군복과 신분증을 지니고 프랑스 연대에 들어간다. 거기서 그에게 친절하게 굴던 이동식 매점 여인은 그의 돈을 훔치고, 말을 빼앗기고,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한편 파브리스의 고모 지나 피에트라네라 백작부인은 파브리스에 대한 사랑을 싹틔우고, 파르마의 재무장관인 모스카 백작은 피에트라네라 백작부인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그녀와 함께 파르마의 궁정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그는, 그러나 그가 유부남이기 때문에 미망인인 피아트라네라 백작을 나이 많은 산세베리나 공작과 결혼을 하도록 주선한다. 산세베리나 공작은 단 한번의 실수로 훈장을 박탈당했으나, 결혼을 하고 외교관 임무를 수행하면 훈장을 얻을 기회를 다시 얻게 되기에 단지 그 목적만으로 그녀와 결혼한다. 모스카 백작은 늙은 산세베리나 공작이 죽으면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할 생각을 한다.

이렇게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이 된 파브리스의 고모는, 나폴레옹의 실각으로 파브리스가 밀라노로 들어오면 범법자가 될 것을 염려하고 다른 곳에서 피신하여 신학공부를 하도록 돕는다. 고모와 모스카 백작의 따뜻한 충고로 조신한 생활을 하던 파브리스는 파르마의 대주교의 신임을 얻어 보좌주교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파브리스는 극장의 여배우 마리에타 발세라에게 끌려 그의 남편 격인 질레티와 싸우게 되고, 그와의 결투에서 질레티를 죽여 볼로냐로 도망친다. 그런데 다시 거기서 파우스타라는 가수에게 이끌린다. 그녀를 사랑하고 있던 M백작은 파르마로 피신하고, 자신의 연적이 파르마의 왕세자라고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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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3.24. 한겨레 책과 지성
아깝다 이 책!

발자크의 해학 30(Les cent contes drolatiques, 1836)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 프랑스 투르)
김창석 역
범우사

 

 

 

 

글 : 장웅진/범우사 편집부

‘발자크’라는 이름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인간 희극>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그 누구라도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정리하기 위해 써내려간 그 작품의 유명세를 실감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뜻밖에도 발자크는 그가 가장 오랫동안 사랑했던 귀부인 에블린 한스카에게 이런 내용을 적은 편지를 보냈다.
“만약 나의 작품 중에서 후세에 남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30편의 해학 단편들(Les Contes Drolatiques)>일 것이오.”
발자크가 하루 15시간씩 글을 쓴 목적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사업실패에 따라 지게 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적 목적에서였고, 다른 하나는 당시 프랑스 사회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내면을 밝혀 고발하고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목적을 달성시킨 작품이 바로 <인간 희극>이었다. 하지만 발자크 스스로도 밝혔듯이 그의 두 번째 목적을 달성시킨 진정한 작품은 바로 <발자크의 해학 30>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30편의 해학 단편들>이었던 것이다.
북유럽풍 르네상스를 개시한 대문호 라블레를 존경한 발자크는 그의 문체와 해학, 그리고 풍자를 사용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한 뒤, 작업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백 편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결국 아쉽게도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30편의 이야기를 쓰는데 그쳤다. 하지만 편집과정에서 그 30편의 이야기들 하나하나의 내용을 주의 깊게 읽어보니, ‘일단 이정도만으로라도 그는 분명 목적을 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래서 발자크도 계획을 변경하여 나머지 이야기들을 포기하고, <인간 희극>의 집필에 힘을 기울였겠지만 말이다.
원제목의 정확한 의미는 아마도 <우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발자크 스스로도 각 편의 머리말 부분에서 ‘이 책을 읽고 웃으라. 어차피 그러라고 썼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면, ‘과연 이것이 단순히 웃고 즐기며 가볍게 넘어갈 수준의 이야기들인가!’ 싶을 정도로 사랑과 우정 등 인간관계에 대해 심도 깊고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뫼동의 쾌활한 사제의 설교>라는 소제목으로 소개된, 라블레가 왕에게 들려주는 ‘왕비로 맞이한 암컷 생쥐의 미모에 빠져 간신배들을 등용함으로서 식량창고의 관리라는 자신의 막중한 임무를 그르치고, 결국 식량창고의 원래 주인에 의해 사형에 처해진 뾰족뒤쥐대왕 이야기’의 경우, 놀랍게도 우리의 <화왕계花王戒>를 연상시키는 점이 있다.
또한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30개의 진지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이 일개 ‘우스개 이야기처럼’ 술술 읽어나갈 수 있도록 만든 대문호 발자크의 솜씨에 있다. 하나의 세련된 프랑스 요리처럼, 읽는 이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러한 내용이 19세기 초반의 어느 위대한 요리사의 펜에 의해 해학과 풍자로 맛을 낸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다만 자극적이고 빨리 읽어나갈 수 있는 패스트푸드 같은 작품들을 찾는 현대 젊은 독자들의 취향이 ‘대문호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부담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대문호도 사실 대중적 작품을 쓰던 사람이었기에 이를 예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발자크는 이 ‘가볍게 즐길 수도 있는 요리’를 만들어냈을 터. 부디 이 책이 ‘어려운 고전’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히 그리고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책임을 독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런 책들은 1년이 지나면 매장에서 사라진다. 책을 만드는 일 역시 '장사'니, 돈 안되는 책을 안 찍는 건 당연한 경제논리일 듯. 헌책방에 열심히 드나들어야 쓰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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