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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물을 대립하는 2가지 규정의 통일로서 파악하는 방법. 예컨대 <사랑은 충족과 결핍의 통일이다> 등이다. 동일물(同一物)이 대립한 규정을 갖는 것은 속담이나 전승문학(傳承文學)에 어떠한 것에든 일면적(一面的)인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는 훈계로서 이야기되고 있다. 여기에서 회의주의자(懷疑主義者)는 어떠한 일에도 일의적(一義的)인 규정을 부여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결론을 도출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쓰다. 그러나 하나의 행위가 한쪽 면에서는 선이고, 다른 한쪽면에서는 악이 된다면 행위를 하는 사람은 비극에 빠진다. 집안의 법도를 지켜서 오빠를 매장한 안티고네의 행위는 반역자의 매장을 금하는 국법에 비추어 보면 죄이다. 비극만이 아니다. 희극 예컨대, 《피가로의 결혼》에서도 자기 아내를 하녀로 잘못 알고 유혹하는 백작과 같이 동일물이 대립하는 규정을 가진다.

변증법의 원형은 속담·회의(懷疑)·비극·희극 등에서 볼 수 있다. 그 대립의 통일·모순을 실제와 필연으로 볼 것인가, 우연과 가상으로 볼 것인가. 운동의 존재를 주장하는 일에 내포되는 <아킬레스와 거북>과 같은 모순을 지적하여 운동·변화·다양의 존재를 부인한 제논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변증법의 아버지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제논의 논리를 인정하고 또한 운동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은 <운동이 모순의 실재를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물은 유전(流轉)한다>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람은 같은 강에 2번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우주는 끊임없이 타서 스러져가는 불과 같은 것이다. 정지하여 존속하고 있는 물체도 실제로는 2개의 대립하는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불안정한 상태이다. 근대에 와서도 G.W.F. 헤겔은 존재를 끊임없이 신진대사에 의하여 자기를 외계로 분해시키면서, 동시에 자기를 재생산함으로써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대립하는 힘의 균형이라고 하는 본질이, 정지한 존속이라고 하는 현상을 지탱하고 있다.

변증법의 어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의 디알렉티케(dialektike)란, 문답법이라는 뜻이다. 플라톤의 저술에서는, 소크라테스의 비판에 응답하면서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 부정(否定)을 통하여 정신이 진리에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변증법이다. 부정을 통하여 고양하는 정신은 동일한 정신이다. 헤겔에 의하면, 정신뿐만 아니라 발전·성장·변화하는 것에는 <달라져 가면서 동일(同一)을 유지한다>고 하는 <대립의 통일>이 내포되어 있다. 발전·변화의 한계점에서는 다른 것이 같은 것이다. 이 한계의 모순성이 수학에서는 미분으로 표현되는 극한점에서 성립한다. 그래프 위의 접점으로 표시되는 극한점에서는 곡선이 직선과 같다. 미분의 변증법적인 해석에는 <점의 본질적인 규정으로서 인접점과의 관계가 포함된다>고 하는 원리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원리를 확장하면, <어떤 것의 본성에는 다른 것과는 다르다고 하는 등의 관계가 내재한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관계는 실체와 마찬가지로 실재한다>고 하여도 같은 말이다. 여기에서 다시 <내적인 본질이란 다양한 관계의 집약이다>라고 하는 규정을 도출하면, 문제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과의 관계라고 하는 구조로 투영된다. 헤겔은 동일한 구조를 마음의 내성(內省) 속에서도 발견한다. 마음이 그 마음을 의식할 때 의식하는 마음과 의식되는 마음은 동일하면서 또한 동일하지 않다. 주관으로서의 마음과 객관으로서의 마음이 동일하기 때문에 외부의 매개를 거치지 않은 직접적인 지각이 성립된다. 예컨대 산을 보고 있는 나는 자기가 <산을 보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본다>고 하는 의식활동을 의식하는 반성의식은 보는 의식과 동시에 작용하는 동일한 의식이다. 그러나 아는 주체와 알려지는 객체라고 하는 작용면에서의 구별이 있다. 따라서 내성·반성 속에는 <구별 없는 구별>이라고 하는 대립자의 동일이 포함된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본질과 현상, 하나의 이데아와 많은 개체,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 주관과 객관은 내성·<자기의식>이라는 구조를 매개로 하여 통일된다. 헤겔은 신플라톤파가 주장하는 <이데아의 유출>이나, 그리스도교적인 <성육신(成肉身)>이라는 개념을 이것을 통하여 합리화한다. 그 결과로 생겨나는 <사물에 대한 파악>, 즉 개념은 본질이라고 하는 보편, <이것>이라고 하는 개별 본질이 개별화되어 있다고 하는 매개관계 그 자체(특수)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요약하면 <사물이란 추론(보편·특수·개별의 종합)이다>가 된다. 헤겔은 <3요소의 일체>라고 하는 신플라톤파의 관념을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에 중합시켜 근대범신론의 토대 위에 재정립하였다. 종래 헤겔의 변증법은 정립(테제)·반정립(안티테제)·종합(진테제)의 3단계(줄여서 正·反·合)로 구성되는 논리라고 설명되어 왔으나 이 어법은 헤겔의 텍스트 속에는 없다. J.G. 피히테의 용어를 빌려서 헤겔변증법을 설명한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에서는 수(數)의 연속체에서 한계의 변증법, 등질성의 변증법과 안과 밖의 변증법, 비등질성의 변증법이 종합되어 있지만, S.A. 키에르케고르의 <질적 변증법>에서는 비등질성 속에 역설적인 것이 도입된다. 예컨대 <예수와 자기와의 2000년을 사이에 둔 동시성(同時性)>이라는 개념이 있다. K. 바르트의 <변증법신학>에는 신인(神人)의 절대적인 단절 속에서 존재의 동일이라고 하는 사상이 있다. 키에르케고르·바르트의 사상은 연속성·등질성을 거부한 단절에서 역설적인 매개가 변증법의 개념을 형성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인식 이전의 물질의 구조가 정신에 반영되어 변증법의 구조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자기의식의 내성구조의 변증법성을 부인하고, <관계의 실재성>이라는 존재론적인 규정으로서 변증법을 받아들이고 있다. → 문답법 → 헤겔 → 테제 → 정·반·합 → 변증법적 유물론

*출처 : 엥빠스 앙씨끌로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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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 W. F. Hegel, 1770 ~ 1831

독일 철학자. 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 출생. 신플라톤학파의 철학과 르네상스 이래의 근대사상을 독자적 관점에서 논리학·자연철학·정신철학의 3부로 체계화하였다. <독일 관념론>의 대성자(大成者)로 알려졌으나 독일 관념론을 창시한 J.G. 피히테에 관한 계통적인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헤겔을 피히테의 계승자로 규정하기가 어려워졌다.

경건한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자라나 1788년 튀빙겐대학에서 철학·신학을 공부하고 J.C.F. 횔덜린 및 F.W. 셸링 등과 사귀었다. 처음에는 베른·프랑크푸르트 등에서 가정교사를 하며 독자적인 인생철학에 바탕을 두고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1801년 예나대학의 사강사(私講師), 1805년 원외(員外)교수가 되었고 이때 셸링의 사상에 동조하여 그와 공동으로 <철학비판잡지>를 출판하였다. 그러나 점차 셸링의 입장을 벗어났으며 예나대학이 나폴레옹군에 점령된 상황 아래에서 1807년 최초의 저서 《정신현상학》을 내놓아 독자적인 입장을 굳혔다. 예나를 떠나 밤베르크에서 신문편집자로 있다가 1808∼16년 뉘른베르크 김나지움의 교장이 되었다. 1812년 두번째 주저 《논리학》을 출판하였고 16년 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이듬해 《철학체계》를 간행함으로써 그의 사상체계의 개략을 완성하였다. 18년 피히테의 뒤를 이어 베를린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마지막 주저 《법철학강요》를 간행하였다. 그의 저작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역사철학》 《종교철학》 《미학》 등은 죽은 뒤 제자들이 편찬한 강의록이다.

헤겔사상을 요약하면 변증법과 이성주의이다. 세계를 현실과 이성의 일치라고 본 그는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방법인 변증법에 의하여 전개되는 세계를 이성적으로 추구하였다. 독일관념론 테두리 안에서 변증법을 완결시킨 그의 영향은 세계로 번져 헤겔학파를 이룩하였으나 P.J.A. 포이어바흐로부터 시작되는 헤겔좌파에 의하여 논리가 정반대인 유물변증법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또 그의 존재론은 원자론(atomism)과 개체적인 요소로의 환원주의를 비판, 생명적 존재의 일원론을 주장함으로써 현대 전체론(全體論 ; holism)의 효시를 이룬다. 헤겔철학은 형이상학적 관념론으로 많은 비판·반발을 받았지만, 역사적 의의는 18세기 I. 칸트로 대표되는 계몽사상의 한계를 통찰하고 <역사>가 지니는 의미에 중점을 두어 19세기 후반 이후 국가주의·역사주의의 길을 열었다는 데 있다. 그는 현실이란 인간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 과정은 오히려 그 자신의 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사람들이 아무리 이상을 실현하려고 애써도 역사의 법칙적 흐름에 부합되지 않는 한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역사를 지배하고 있는 법칙에 대해 관념론적·형이상학적 견해를 가졌으며 역사는 절대자나 신(神)이 자기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 판단하였다. 그에 의하면 절대자는 이성(理性)이고 그 본질은 자유이다. 따라서 역사는 자유가 그 속에서 전개하여 나가는 과정이며 전제군주만이 자유를 누렸던 고대로부터 소수의 사람이 자유를 누리던 시대를 거쳐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시대로 옮아간다. 그리하여 현대를 바로 이 마지막 단계가 실현되어야 할 시대로 보았다. 헤겔은 이러한 근본사상을 바탕으로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의 3부로 된 철학체계를 수립하였고 이 전체계를 일관하는 방법이 모든 사물의 전개를 정(正)·반(反)·합(合)의 3단계로 나누는 변증법이다.

*출처 : 엥빠쓰 앙씨끌로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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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목 올빼미과의 새 중에서 외이(外耳)처럼 보이는 깃뿔을 가진 종(種)의 총칭. 특히 큰소쩍새를 가리킬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는 깃뿔이 있는 것을 부엉이
라고 하며, 없는 것을 올빼미라고 하여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별이 분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솔부엉이같이 깃뿔이 없는 것에 부엉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있고, 반대로 깃뿔이 있는 것에 올빼미라는 이름을 붙인 줄무늬부엉이와 같은 예도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부엉이로는 수리부엉이를 들 수 있는데, 특산품종으로 한국 전역에서 번식하는 텃새이다. 평지에서 고산에 이르는 암벽·바위산·하천을 낀 절벽 등지에 살며,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한배에 2∼3개의 알을 낳는다. 야행성 조류로 밤에 활동하며, 낮에는 물체를 잘 보지 못한다.

*출처 : 엥빠스 앙씨끌로뻬디
*사진 설명 : 삼청동 소재 부엉이 박물관 까략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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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화의 비평 / 조르쥬 풀레

- 남(작가)의 의식과 자기 의식을 합치시키려는 의지

1) 티보데(Thibaudet, Albert 1874-1936) : 즉각적, 전폭적인 동화. 작품 자체에 대한 비평이라기 보다는 작품과 작품 외적인 요소 사이의 비교 분석에 주력. 이를테면 통시적으로 유사/상이한 작품들과 비교, 역사적 관점으로 분석. 비평의 관점이 작품 자체를 벗어나는 단점. 외향적.

2) 리비에르(Riviere, Jacques 1886-1925) : 작품과의 정신적 교감, 촉각적, 작품에 대해 전적으로 순종적. 정숙주의(quietisme). 작품의 사상이 비평가를 변화시키지는 않음. 작품의 사상이 비평가에게 그대로 스며듦. 비판없는 수용?

3) 샤를르 뒤 보스(Charles du Bos) :  유연성, 액체 상태. 비평자는 정신, 사고의 통과점, 집적장, 교차역의 역할. 리비에르와의 차이점은 유입된 남의 사상이 그를 통과, 자기 것이 되어 흘러나간다는 점. 좀더 능동적인 동화.

4) 라몽 페르낭데스(Fernandez, Ramon 1894-1944) : 비평적 관점(vision)이 확실히 정해짐. 문학 작품 속의 혼돈을 비평가의 관점으로 질서정연하게 정리. 구조주의의 전조. 비평은 작품의 모호성을 작품에 앞서 이해하고 작품을 하나의 통일체로 만드는 것.

5) 마르셀 프루스트(Proust, Marcel) : 소설가이면서 비평가. 자신의 비평적 기도를 소설에 구현. 창조 행위 이전의 것들에 대한 고찰. 비평은 창조의 선행단계. 독서에서 비평으로. 한 존재양식(작가의 존재양식)에 합치하는 것. 능동적 독서. 모방(작가의 관점)을 통한 재 창조.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어, 그 속에서 반복적으로 얻어지는 하나의 본질적이고 통일성을 지닌 사실을 얻어냄. 작가들은 작품활동을 통해 어떤 것에 대한 총체성을 보여주려고 하나(예를 들어 발자크의 <인간희극>), 대부분은 거기까지 이르지 못하므로, 추 후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는 통체적 독서행위를 통해서 이를 실현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비평. 주제비평의 시초.


  • 지드와 발레리 - 신비평의 선구자 / G.W. 아일랜드

작품을 외적 요소 즉, 역사, 시대적 관점에서 비평하는 방법론을 지양. 오히려 '무엇에 의해 한 작가작품이 자기 시대를 초월하는가'에 관심. 문학작품은 말(mots)의 총체. 그 속에 사상이 스며들어 동화될 때 가장 풍요로운 상태. 완결된 하나의 작품은 하나의 소우주. 한 작품은 오직 그에만 해당되는 유일한 열쇠로 열 수 있는데, 가장 완벽한 열쇠는 '작가'. 작가의 내면의 조작에 관심. 하나의 작품은 오로지 하나의 질서에만 호소할 수 있다.

1) 작가에서 출발하여 작품을 연역해 냄

- 그러나 발레리는 작가가 작품 속에 현존해 있되, 그 해석의 장은 작가의 전기적 요소가 아니라 오로지 작품 내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문학 작품은 한 인간의 창작이 아니고, 작자와 언어행위의 합작물이다'. 언어라는 '형태'가 작품에 깃드는 감동의 창조자. 작품의 내밀한 구조가 정신의 내밀한 구조와 부합됨. 작품이 곧 작자이며, 비평가는 작품의 인간을 알아보아야 함. 작품의 개인성도 인간에게서처럼 온갖 변모를 일관하여 보존됨.

"포우의 체제 안에서 일관성(consistance)은 동시에 발견의 수단이자 발견 자체이다. 그것이야말로 희한한 의도다-본보기와 자기소유화의 상호 연관성의 작품화. 그 심오한 균형이 이를테면 우리 정신의 내밀한 구조 속에 현존하는 한 도면에 의거하여 세계를 구축한다. 시적 본능이 맹목인 채로 우리를 진실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수학자들에게서 꽤 흔히 이와 비슷한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발견을 배합능력의 창조로 보지 않고, 차라리 그들의 주의가 이미 존재하는 자연스런 형태의 보물을 포착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 보물은 오직 엄밀함과 예민한 감수성 그리고 욕구의 무척 희귀한 만남에 의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잘 이해 안되는 부분)"

발레리는 포우를 통해 '작품의 인간'에 대해 설명. 작품의 개인성이 변모를 일으키면서도 일관되게 보존되는 것을 포착해야 하는데, 포우에게서 이러한 일관성(consistance)가 관찰됨. 그 일관성의 발견은 창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자연스런 형태의 보물을 포착하는 것이다. 포우가 모색하는 진실은 직관에 의해 포착되며 직관은 고찰하는 한 체계의 각 부분과 특질의 상호 의존을 드러내준다. 직관에 의한 가담이란 작품에 대한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생명에의 참여를 말한다. 이는 곧 삶의 한 체험이며 이를 통해 비평가는 창조적 몽상이 가능하다. 즉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에게서 빠져나와 그가 명상하는 작품 속에 몰입하는 것이다.


  • 작품의 실재적 형태들 / 장 루세

*비평이란 주관적 성격을 지니며, 비평가의 구체적 경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는 파악하는 주체와 그 대상을 분리하기 힘든 활동이며, 그 둘 사이의 공모를 피할 수 없다.

1) 형태적 지표 - 시에서 호흡의 변화, 연극에서 무대의 채움과 비움, 소설 서술에서 독백의 삽입, 인칭의 선택 등과 같은 형태적 지표는 작품 해석에 있어서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형태적 경험으로 시작하는 해석이 작품의 여러 감가적인 요소들 밑에 언어행위의 자원을 통하여 그 작품을 살아고 느끼도록 함.

2) 형태의 도취 - 필자의 저서 <문학적 바로크>을 이 소논문이 출발점으로 삼음을 밝힘. 바로크는 형태의 도취이다. 다양함 속에 선택이 필요하다.

3) 회화(나 건축)에 빗댐 - 문학작품 속의 의미와 형태의 관계를 회화의 그것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회화는 형태가 강하고 즉각적이므로 그 자체가 작품이며(즉 형태가 이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기 내면의 법칙에 의해서 규제되는 자기 생명의 상징이다.

4) 음악에 빗댐 - 음향의 연속을 통일체로 파악할 때 음악을 이해하 듯, 상호간에 서로 침투되는 관계들의 복합적 체계를 다룸. 전체와 부분과의 상호작용, 유기적인 관계.

5)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예로 듦 - "이중 렌즈": 요소들의 대립과 반복, 서로 얽히고 배합됨. 결국 이러한 것들(구조적 모티브들)이 하나의 구조를 형성함. 총괄적 독서의 효과를 제시하고자 함. 이러한 분석 방식은 작품 안에서 유기적으로 구성된 한 체계를 보여준다. 이는 언어학에서의 <구조>의 의미와 부합한다.

6) 이러한 언어학의 구조주의적 방식을 문학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언어학에서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은 자의적으로 결합되지만, 비평에서는 그 임의성을 배제하는 문체가 존재한다.

-언어학에서는 언어(langue)를,  비평에서는 언화(parole)를 연구대상으로 하므로 언어학의 연구 방법론을 언화에 적용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문학 작품의 형태는 작가를 발견하게 해 주며 비평가(독자)는 그 안에서 한 작품을 만나게 된다. 형태는 각 작품에 하나의 혹은 특수한 의미를 부여한다. 발레리는 "형태는 작품들 이전에 태어난다"고 말했으며, 들라크르와와 발자크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곧 작품의 "형태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형태는 예술가의 가장 내밀한 경험이자 동시에 인식과 행위의 도구이다.


  • 비평적 상황 / 레몽 쟝

-비평가에 대면한 작가의 상황.

1) 비평은 고친다(redresser) : 미학적 준거에 의거 혹은 이데올로기에 비춰 작품에 개입한다.

2) 비평은 모르고 있다(ignorer) : 작품의 심부에서 작품에 적중하여 분석하는 길을 모른다.

3) 비평은 덮어 씌운다(recouvrir) : 참다운 비평의 역할은 작품을 드러내보이거나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의미를) 덮어 씌우는 것이다.

ㄱ. 문제점 : 작품 자체를 대신하려 들때, 작품 고유의 영역에서 작품과 경쟁하고, 작품을 넘어뛰려 들때 작품을 압박하게 되지 않을까?

 ㄴ.해결책 : 작가가 암암리에 사용한 정신분석, 사회학, 언어학, 문체학, 마르크스 주의 등을 거꾸로 밟아나가면서 작품과  일치하고 거리를 두지 않는다.

4) 비평가의 의식 = 구조하는 의식(스타로벵스키) : 비평이 극도에 이르면 비평의 대상이 된 작품을 능가하고 더욱 풍부한 내용을 드러낸다. 문학작품을 한 시작점으로 보고 작품을 재구조함. 문학과 비평의 공생.

5) 문학의 형태화, 기호화 - 비평이 그 형태와 기호를 해석하도록 함. 작품의 진실을 밝혀 작품을 새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비평적 해설과 분리될 수 없음. 비평이 진보함에 따라 문학은 퇴보한다고도 볼 수 있으나 '창조문학과 비평문학 사이에 구분이 없어진다'고 보는 것이 낙관적.

6) 비평가와 작가의 관계 속에서 비평가에게 무게중심이 주어지는 '비평을 위한 문학'이 양산될 가능성도 있으나, 비평가들이 끌어들인 혁신과 풍요성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모험은 감행할 만 함.


  • 생트-뵈브와 비평적 경험 / 쟝-피에르 리샤르

*'사랑의 몽상들'의 시각에서 접근 - 액체의 메타포, 유동체의 상상, 사랑이 존재의 액체화로 몽상되고 있음. ㅡ> 호수의 테마

*호수 : 반대감정의 양립 - 육체적 융합의 표상/정신적 현실정의 직관 ㅡ> 욕망의 대상인 타인의 심혼

-루앙 부인 ㄱ. 호수의 표면 : 관능의 덩어리 ㄴ. 호수의 깊이의 모호성 : 유동성이 깊이 침잠되어 있음. 호수의 표면은 현기증 나는 동시에 나를 비추지 않는 닫혀진 거울.

-소설가/비평가로서의 생트-뵈브는 소설속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지 않고, 작가와 동화하려들지 않고, 표면에서 몽상한다.

*사물과의 관계 - 빈곤, 궁핍, 결여, 불충만, 무기력함. 욕망에 대하여 스스로를 열어주거나 자신을 내주려하지 않는다. 세계와의 접촉은 근본적으로 보람없다는 결론. 사물들의 침울함과 침묵에조차 열정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사물들의 부재성을 통하여 그 존재 중의 어떤 것이 마침내 우리에게 드러나는가를 기대함. 사물과의 접촉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포위하고, 스치고, 스며드는 것이다.

*색채 - 노랑 : 쇠퇴하고 병적인 노랑, 좌절의 형태, 약점과 좌절의 역설

*사물들(작품들)의 비밀을 고의적으로제한된 아주 피상적 파악에서 출발하여 밝힘.

*감각적 현실을 무기력과 폐쇄의 양태로 느끼듯, 예술의 양태는 천재라고 부르는 창조적이며 자연발생적으로 확산하는 힘의 작용에 의해 느껴진다. 천재의 작품은 약동력과 분출과 특수한 천부적 힘을 지닌다.

*비평적 이해는 포위 탐사하고, 밖으로부터 적시며 대상과 평행적이다.

*생트-뵈브 비평활동의 기법 - 인간과 작품 사이에 어떤 실질적인 분리도 정립될 수 없다. 인간이란 작품 속에서 이야기되는 자, 극도에 이르면 언어행위 자체, 그 작품의 개인적인 언어행위이다. 작품이란 빠롤(parole), 어떤 사람의 언어적 再?이다.

*포위(=비평)의 세 수준 : 표정, 글, 전기

*수법 : 문장의 특유한 진행. 문장이란 언어행위. 생트-뵈브는 '수법'에 중점. 따라서 문체를 두루 살펴보고 모사해야함.

*생트-뵈브가 만족해하는 문학형태란 그 속에 존재의 필연성의 현위와 그 토대를 느끼게끔 해주어야하며, 적재물이 실려있어야 한다. 반대로 불만족스런 문학형태는 딱딱하고, 과장되며, 불균질한 것이다. 형태는 흐르는 듯 하여야할 뿐만 아니라 충만해야만 한다. 생트-뵈브는 스스로 창조하는 동시에 비평한다.

*비평가와 대상 작가는 친자관계에 있다. 비평의 진술은 작품의 진술을 연장하며, 육체적으로 연대를 맺고 있어야 한다. 비평적 언어행위는 작품에서 출발하여, 그것에 의거하되(인용), 적용되기도 한다. 비평은 다른 감수성(비평가의 감수성)의 요구 앞에 의미를 불러내어 다른 구조속에서 되풀이하는 일이며, 그 의미를 "다른 한 형태 밑에" 존재하게끔 도발하게 하는 것이다.


  • 비평과 생존 / 세르즈 두브로브스키

문학이란 실존으로서는 언어행위(langage)이며, 말들로써 자기를 포괄적으로 파악하고 표현하려고 모색하는 인간의 진실이다. 오늘의 비평은 전폭적으로 작품의 절대적 우위성을 전제로 삼고, 글에 대한 독자적 이해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작품 안에서 말하는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면 그 목소리는 대체 어떤 것인가?

*작자라는 독특한 존재자는 문학에서 자취를 감춘다. 뤼시앙 골드만은 창조의 주체가 결코 한 개인이 아니고 한 집단임을 예고했다. 롤랑 바르트는 일체의 서명이 지워질 때 작품이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책의 출현은 작자의 소멸이다.

*비평가 역시 작가라면 비평에는 비평가의 소멸이 따른다. 롤랑 바르트는 "비평가는 작품의 기호를 해독되고 변형된 기호로 또 한번 재생산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제라르 쥬네트는 "진정한 관계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 있지 않고 글과 글읽기 사이에 있다. '글의 위상'과 '글읽기의 위상'은 시간의 순환적 작용의 움직임에 의해 서로 통하는 양면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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