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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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마니아 층을 거느리고 있는 감독 중 한 명이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한 번 이라도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반해버리는 작가 중의 한 명.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그의 작품이 상영될 때마다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 중의 하나에 나도 포함된다. 최근에 개봉한 「어느 가족」이란 작품도 그래서 챙겨본 영화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꽤 많은 영화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피로 이어져 있던 가족이든, 전혀 상관없는 가족이든 가족의 끈끈함과 애정에 대한 깊이있는 시선을 바라볼 수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가족을 고찰하는 그의 영화가 가진 특색이다. 문학을 전공한 작가라는 사실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영화를 먼저 만들고 소설을 나중에 쓴. 그래서 영화를 두 번 보는 느낌이랄까. 영화 속 사람들의 내면에 깊게 다가선 것이 이 소설이 가진 역할이었다.

 

한 가족이 있다. 할머니, 엄마, 아빠, 이모, 아들로 보이는 다섯 식구. 그런데 추레한 옷을 입은 아빠와 아들이 한 마트에 가서 특유의 손짓을 하고 아빠는 직원의 시선을 가리고 아들은 배낭에 물건을 떨어뜨려 담는다. 집으로 돌아와 샴푸가 없다는 이모와 맥주를 들이키는 할머니. 좁은 집에 여러 명이 모여살고 있다. 집에 오는 길 아빠와 아들은 추운 날씨에 밖에서 떨고 있는 여자 아이를 보았다. 아이가 안쓰러워 집에 데려와 음식을 먹이고 집에 데리고 갔으나 아이 엄마와 아빠로 보이는 사람들이 물건을 집어던지며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한테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퍼부으며 말이다.

 

 

아이를 데려다 주려고 했으나 그 장면을 목격한 엄마와 아빠는 여자애를 다시 업고 집으로 돌아온다. 말을 하지 않는 아이, 몸에 여기저기 멍을 달고 있는 아이였다. 부모가 싫다면야 굳이 데려다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아이를 거두기로 하고 유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때 그때 마트에 가서 집어 오고 옷은 대충 걸치고 다닌다. 유리에게 여자애다운 옷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옷가게에 가서 노란 수영복부터 차례대로 입혀 나올 정도로 좀도둑이 생활화된 가족이랄까. 일하기 싫은 핑계로 다리를 다친 아빠, 대형 세탁점에서 손님들의 물건을 슬쩍하는 엄마, 가슴을 흔들며 돈을 버는 이모, 아빠에게 물건을 훔치는 기술을 배운 아들, 그 오빠에게서 역시 물건을 훔치는 방법을 배우는 딸.

 

뭐 이런 가족이 다 있을까 싶다. 이들 가족은 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맺어진 가족이었다. 비록 새 옷을 마음껏 사주지 못하고 먹고 싶은 걸 마음껏 하지 못했으나 무엇보다 피로 이어진 가족보다 더한 끈끈함이 있었다.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들처럼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굳이 그 사람이 나쁘고 좋고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선택되었더라도 진짜 가족보다 더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면 된게 아닐까. 자기의 연금을 가로채려고 들어왔지만 그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에 갔을 때, 비록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고마웠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여느때처럼 익숙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진짜 가족보다도 더한 가족이 이들 가족이 아닐까. 가족이 와해되었을때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 안타까움을 내비쳤던 것처럼. 다시 이전처럼 돌아간 주리의 삶도 어쩌면 가짜 가족보다 못한 거였다.

 

고레에다 히로가즈의 가족을 바라보선 시선이 좋다.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지만 그 무엇보다 특별함을 나타낸 영화, 그에 속한 소설이었다. 감독은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은 다음 영화를 다시 한번 볼 것을 강조했다. 나 또한 영화를 먼저 보았고 소설을 읽었더니 다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울음을 삼켰던 나와 똑같은 소설을 읽으며 더한 눈물을 흘렸던 나는 이들 가족의 와해가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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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0 1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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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0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만과 편견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제인 오스틴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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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품을 몇 번이고 읽는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더불어 원작 영화가 있는 경우 영화와 함께 보면 시각적인 효과까지 있어 더욱 감동적인 작품이 된다. 내게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대부분 그런데 『오만과 편견』 같은 경우 영화와 함께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런 내게 위즈덤하우스에서 나온 일러스트 판본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읽지 않고는 못배긴다는 표현을 써도 될까.

 

아무래도 매튜 맥퍼딘과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의 잔상이 깊게 남아있는 내게 일러스트는 때로는 비슷하게 때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느껴졌다. 아마도 영화의 잔상 때문이리라. 특히 다아시 씨가 그런 경우인데,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상당히 멋질 캐릭터이긴 했다. 잘생긴 외모와 부를 거머쥔 오만한 남자를 표현하기에 딱 맞았다고 해야 할까.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에 탄생한 『오만과 편견』은 로맨스 소설의 고전으로 불린다. 여성들의 사랑과 결혼에 대하여 아주 시시콜콜할 정도로 묘사했는데, 결혼 상대자의 최고 조건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틀리지 않다. 오히려 꼭 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생긴 외모면 더욱 좋고, 재산을 어느 정도 가졌느냐에 따라 결혼 상대자로서의 최적의 조건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도 마찬가지였는데, 재산을 많이 가진 여자가 남자들의 결혼 상대자로서 우대를 받았다.

 

하트퍼드셔, 롱번의 베넷가에는 다섯 명의 딸이 있다. 아름다운 제인, 미모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현명하고 지혜로운 엘리자베스, 그리고 메리, 철이 없는 리디아와 키티가 그들이다. 속물적인 베넷 부인은 네더필드 저택이 빙리 씨가 임대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무도회를 열어 자신의 딸들 중 한명과의 결혼을 바랐다. 무도회가 열리는 날, 빙리는 제인을 마음에 들어 했고, 그의 친구인 다아시는 빙리 양과 춤을 추었을 뿐, 춤을 기다리는 다른 여자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무뚝뚝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빙리에게 엘리자베스에 대해 말하기를 '그럭저럭 봐줄만은 하지만 자기 마음에 들 정도로 매력적이지는 않다'고 했다. 그말을 들은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오만함에 그에게 호감을 느낄 수 없었고, 오랜 시간 동안 편견에 쌓여 있었다.  

 

 

 

좋은 가문과 많은 것을 가졌으나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말을 하지 않는 다아시의 오만함과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어머니와 다른 여동생들의 행동을 자기 친구의 결혼 상대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던 남자의 변화된 모습을 나타냈다. 또한 첫 만남의 편견으로 인해 다아시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않으려고 했다가 그가 하는 행동들, 저택 관리자 혹은 친구들에게 들었던 그에 대한 것들에서 분별력을 기르게 되어 호감을 갖기에 이르렀고 사랑을 깨닫게 되는 엘리자베스의 변화를 그린 작품이었다.

 

로맨스 소설의 모든 조건을 갖춘 작품이었다. 일단 빙리나 다아시의 조건을 보자. 연간 5천파운드와 만 파운드의 막대한 자산을 가졌기에 딸을 둔 많은 어머니들에게 사윗감으로, 여자들에게는 남편감으로 부족함이 없는 존재로 일컬어진다. 남자의 오만함이 여자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비춰지고 잘생긴 외모까지 갖춘 남자들이었다. 반면 소설 속에서 사랑받는 여자들은 아름답긴 하지만 많은 재산을 가지지 못했으나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오만함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고, 인간이란 지극히 오만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며, 실제로든 착각으로든 자기가 지닌 이런저런 장점에 대해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이야. (35페이지)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나는 특히 영화 속에서 무도회 장면을 좋아하는데, 여러번을 돌려봐도 늘 즐겁다. 음악과 함께 절도있는 동작으로 춤을 추는 장면은 압권이다. 드레스를 입고 어떤 남자가 자신에게 춤을 청할까. 춤을 추는 동안 다른 사람은 없고 둘만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 것도 아름답다. 초록이 물든 정원을 산책하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모습 또한 아름답다. 사랑을 깨닫는 순간의 그 표정들과 서로에게 고백하는 순간의 눈빛은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쥐게 한다. 물론 입가에는 미소를 담고 말이다.

 

일러스트가 삽입된 이 책을 읽고나서 다시 영화를 보았다. 다아시 역할의 매튜 맥퍼딘과 키이라 나이틀리, 제인으로 분한 로자먼드 파이크의 아름다움과 함께 여전히 설레는 영화라는 거였다.

 

 

언제 봐도 사랑스러운 영화. 언제 읽어도 사랑스러운 작품이 『오만과 편견』이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품은 이유가 있다. 언제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하며, 여러 번 읽어도 설렘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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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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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관련 영화가 우리나라에 많은데 비해(물론 내가 일본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경찰 소설은 일본에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내가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의 차이일 수도 있다. 미스테리 소설이라고 하면 한국 추리문학 보다는 일본문학 혹은 유럽, 영미 문학을 더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밝혀두고 싶다.

 

제목부터가 고독한 형사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책 속 표지는 여성의 모습이 아련해 보이지만, 이 소설 속 내용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다고 본다. 다르게 생각하면 어울릴수도 있겠다. 내가 크게 관심갖지 않고 보았던 어떤 관계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거.  

 

구레하라 동부경찰서 폭력단계 신참 형사 히오카가 새로 왔다. 그의 선임은 오가미 형사. 폭력단계에서 잔뼈가 굵은 경찰서 내에서도 함부로 건들수 없는 형사다. 또한 야쿠자로부터 돈을 받아 수사비로 쓴다는 비리 형사로 찍히기도 했다. 그와 함께 야쿠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 게 이 소설의 골자다. 우리나라도 오래전에 폭력단체를 대대적으로 일망타진한 적이 있었다. 1990년대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 을 선포했던 것 같은데 이 소설 또한 비슷한 시기다. 1988년 우리나라로 치면 88 올림픽이 일어나던 해의 폭력단과의 전쟁을 다뤘다.

 

야쿠자를 일망타진하려면 야쿠자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구조를 알아야 하고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즉 형사들은 기억력이 좋아야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가미를 따라 다니며 수사 방법을 배우는 히오카. 부당한 수사 방법을 사용하지만 문제 제기를 할 수 없었다.

 

야쿠자 산하의 대부업체 직원이 실종 신고 되고, 그가 소속된 구레하라 금융을 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거대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 중간에서 그들을 상대로 자유자재로 어느 누구를 치게 하고, 어느 누구를 지키게 하려는 오가미의 행동이 마치 본인이 야쿠자에 소속된 듯 하다. 우리나라 형사들도 폭력배의 뒷배를 봐주기도 하고, 그곳에 정보원을 심어 두고 정보를 캔다고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형사 또한 다르지 않다.

 

어떤 야쿠자의 부두목 같은 경우는 학교 친구인 적도 있어 야쿠자의 돈을 받는 듯한 장면을 포착한 히오카의 의심을 사게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히오카를 자신의 수제자처럼 데리고 다니며 형사로서의 모든 수사 기법등을 알려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와중에 14년 전 미결 사건의 용의자로 오가미를 지목하는 투서가 날아들고 신문사의 기자가 오가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소설은 새로운 급물살을 타게 된다. 오가미가 아키코의 남편을 죽인 가네무라를 죽인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가네무라를 죽인 것인가. 우리나라 같은 경우 폭력단이 쇠파이프를 가지고 세력 다툼을 하는 걸로 나와 있는 데, 소설 속 일본 야쿠자들은 총을 휴대하고 있다가 발포를 하기도 했다. 사람 죽이는 걸 우습게 알며 두목을 위해 아랫사람이 감옥에 가는 걸 영광으로 아는 건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나왔던 '범죄와의 전쟁'의 일본 버젼 같기도 했다. 물론 그들을 일망타진하려는 경찰들의 이야기라는 게 다르다는 것일 뿐. 소설 중간에 히오카의 사건 일지가 챕터별로 삽입되어 있는데, 이는 소설의 결말 부분에 가서야 일지의 향방이 드러난다. 생각지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소설은 다시 시작되고 있음을 알렸다. 고독한 늑대 시리즈의 탄생이랄까. 고독한 늑대 이야기가 계속 될 것이고 그는 또 폭력단계에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꽤 탄탄한 경찰소설이었다. 경찰 소설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사사키 조의 경관 시리즈를 보는 느낌이었다. 여성 작가인데 남성 작가처럼 여겨지는 글을 썼다.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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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첸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최정윤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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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화를 사랑한다. 그저그런 스토리를 가졌음에도 전체적으로 음악이 흐른다면 지겹지않게 볼 수 있는 게 음악 영화다. 음악이 가진 힘을 알기에 그럴 것이다. 얼마전에 본 「맘마미아!」 또한 진부한 스토리지만 추억의 아바의 음악으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고, 엄마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던 배우의 열연으로 눈이 즐겁지 않았는가. 셰어와 앤디 가르시아가 부르는 '페르난도' 또한 굉장히 좋아 음원까지 받았을 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영화 원작을 읽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 또한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란 영화의 원작이다. 책을 보기 전 그 느낌을 먼저 알고 싶어 영화를 찾았으나 구하기 힘들었고, 아주 짧은 예고편 동영상만 만났을 뿐이었다. 책을 읽으며 귓가에 어른거렸던 음악을 만나는 그 완성이 영화를 보는 것인데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세계를 떠도는 버지니아 호에서 대니 부드먼이라는 선원의 눈에 띈 아이 하나. 아메리카!라고 외치며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났을 때 배에서 낳은 아이는 이처럼 버려지는 수가 있다. 대니 부드먼은 그 아이를 주웠고 자신의 이름을 붙여 주었으며 뭔가 멋진 이름을 붙여 주고 싶어 대니 부드먼 T. D. 레몬 노베첸토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노베첸토는 20세기를 가리키는 말로 레몬 노베첸토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 이름이었다.

 

대니 부드먼이 죽은 후 선장은 비로소 그를 배에서 내리기로 결심하고 당국에 신고했으나 노베첸토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손님들 사이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의 나이 11살 즈음이었다.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어도 자신만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이 노베첸토였다.

 

그는 일급 피아니스트였다. 우리는 음악을 연주했고, 그는 어딘가 달랐다. 그가 연주한 것은 .... 그가 연주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어디에도 없는 그런 것. (23페이지)

  

그는 존재하지 않은 자였다. 그 어디에도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는 육지에 절대 내리지 않았고 오로지 배 안에서만 연주를 했다. 1등실, 혹은 2등실, 3등실에서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주었고, 행복하게 해주었다. 

 

 

 

 

이러한 노베첸토의 소문이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영혼을 울리는 그의 연주를 들은 사람은 하나같이 그를 칭찬했을 것이므로. 그의 소식을 들은 재즈의 창시자 젤리 롤 모턴은 그의 실력이 궁금했을 것이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버지니아 호에 올랐다. 노베첸토와 대결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재즈의 창시자와 일급 피아니스트의 대결, 누가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까. 그와 대결을 펼치고 싶지 않은 노베첸토는 화음이 맞지 않은 듯한 연주를 했고 사람들은 야유를 했다. 그러면 그렇지 라는 마음으로 그를 노려보던 젤리 롤은 다시 연주를 시작했고, 노베첸토는 그의 연주를 가리켜 '아름답기 그지없더라' 라고 했다.

 

하지만 노베첸토가 누구던가. 불을 붙이지 않는 담배를 피아노에 올려 두고 연주를 시작하는데 청중은 숨죽이고 그의 연주를 들었다. 넋을 잃고 그의 연주를 지켜보았고, 젤리 롤은 배가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선실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훌륭한 연주란 그런 것이다. 어느 곳에도 적을 두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노베첸토였다. 다른 연주자들과 연주해도 자신만의 연주를 하기에 오죽하면 지휘자가 정상적인 음악을 연주하라고 했을까. 그는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였다.

 

책을 읽는내내 노베첸토가 연주하는 음악이 귓가에 어른거렸다. 온갖 피아노 곡이 머릿속에 떠다녔는데 아마도 내가 듣지 못한 음악이었으리라. 어떠한 곡을 연주했다고 나오지 않으니 나 또한 어떠한 음악을 상상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영화 예고편 속에 나왔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그나마 내가 상상했던 것과 비슷했다. 영화 예고편을 먼저 보았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음악을 연주하는 노베첸토의 여정을 따라가는 모놀로그 형식으로 소설을 그렸다. 그래서 한편으로 무대위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관객을 바라보며 말하는 트럼펫 연주자의 목소리, 무대 위를 흐르는 노베첸토의 피아노 연주가 있는 극의 형태. 한 배우와 감독의 극을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했는데, 이 소설은 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생애가 들어 있는 수작이었다. 짧은 소설이지만 그 감동은 커다란 소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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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의 소설은 『위안의 서』로 먼저 만났다. 작가가 건네는 묵직함에 이름을 기억했다.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가볍지 않은 글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 신작 또한 얇은 책임에도 책 속의 내용에 깊이 스며들었다. 누군가는 과거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뱉어내고 누군가는 과거는 아예 존재하지 않은양 입을 닫는다. 그 어떤 것도 내보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참이다. 그 기억들을 꺼내면 자기가 무너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꼭꼭 숨겨두었다.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도 아이도 들어올 수 없는 방. 오로지 자신만 그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방문밖에서 아이가 아무리 울어도 열어주지 않을 정도로 자신에게 침잠했다. 어떤 기억들을 떠올리기 힘겨워서일까. 기억들을 떠올리면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였을까. 오로지 발레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얻은 타이틀. 성공한 무용가였다. 

 

자기 나이 또래의 많은 무용가들이 이미 은퇴를 한 상태였다. 제인은 은퇴를 미루고 다시한번 재기를 노렸다. 한참 뜨는 안무가 텐의 러브콜을 받았다. 정석대로 해온 자신의 무용스타일과 맞지 않다고 여겼지만 텐이 원한건 제인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나던 날 자신을 아는 것 처럼 이야기 해 제인은 놀랐고, 일부러 제인의 반응을 지켜보고자 했던 텐의 의도가 통했다. 

 

텐이 무대에 올리고자 하는 춤은 과거 그녀의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것이었다. 세 사람이 눈을 가리고 어둠을 향해 발을 내딛었던, 로프를 몸에 감고 갈망의 몸짓을 했던 기억이었다. 텐이 그 춤을 어떻게 알았을까. 한 학년 후배라고 말했지만 그의 이름과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앨범 뒷편에 수록된 사진에서 발견했다. 맥스의 옆에 서 있는 허약한 소년의 모습으로. 레이라는 이름이었다.

 

 

소설은 제인의 시점으로 쓰이다가 결말 부분에서 텐의 시점으로 쓰였다. 제인의 입장에서 바라 본 텐의 정체가 궁금했었고, 텐의 입장에서 본 제인은 또다른 이야기였다. 전혀 접점이 없었을 거라는 예상을 뛰어 넘었다. 어느 순간이 조금 의심스러웠는데 그게 텐이었다. 사실을 조작하고, 두 사람을 수렁에 빠뜨렸고 혼자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건 살아남은 게 아니었다. 대외적으로는 성공한 무용가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래전의 숲 속으로 늘 돌아갔다. 갈망에 찬 몸부림.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의 방에 스스로 갇혀 있었다. 그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는 방이었다.

 

소설의 배경이 우리나라가 아닌 싱가포르이다. 적도의 섬. 그 어느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버려진 섬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치 제인과 복수를 꿈꾸었던 텐처럼. 엄마의 마음을 다치기 위한 행동을 서슴치 않은 레나처럼.

 

제인, 지금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하겠지만 그렇지 않아. 오히려 지금부터는 네가 보고 싶은 것들을 볼 수 있는 거야. (127페이지) 

 

 

이해할 수 있겠니? 어둠 속에서 추는 춤만이 진정한 춤이라는 걸. 그런 춤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그런 춤을 춰야지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는 걸.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마. 오직 너의 춤을 춰. 제인. (155페이지)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제인이 입양된 아이였다는 것이다. 엄마의 친딸과 제일 닮았다는 이유로. 또한 친 딸이 발레를 했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레를 시작했다. 엄마의 마음에 들겠다는 이유로. 아마 그래서였을수도 있다. 애써 숲속에서 추었던 춤을 기억 저편으로 보낸 것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았던 것도 엄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버려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녀를 그토록 침잠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어야만 해결될 일이었다. 그녀가 기억속에 묻어두었던 불온한 숨. 자신만의 춤을 출 수 있었던 희열도 그 숲속에서였다는 걸 깨닫는 일일 것이다. 비로소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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