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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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과연 어떤 작품을 모티프로 쓴 것인가. 정유정의 『종의 기원』인가.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나왔는가. 우리는 종종 우리의 기원이 어디에서 왔는가 수많은 질문을 건네게 된다. 결국 부모에서 왔는가. 그 사람의 본질은 그 부모에게 왔으리라는 게 정설이다. 수많은 작품에서 나타난 바와 같다.

 

박지리의 소설이 궁금했다. 그토록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한 작가. 제목마저 의미심장한 소설이기에 꼭 읽어보고 싶었던게 크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을 말하는 것일까. 소설의 배경과 시기는 현재와는 동떨어졌다. 가상의 시대, 가상의 인물들. 그들의 이름 또한 외국식 이름이다.

 

열여섯 살의 소년 다윈 영, 프라임스쿨의 모범생이다. 그의 아버지 니스 영은 문교부 차관이며 죽은 친구의 추도식을 30년간 해주는 중이다. 그의 할아버지 러너는 12월의 폭동이후 9지구에서 1지구에 진입했다. 여기에서 프라임 스쿨은 거의 1지구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고, 1지구 아이들도 합격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 할 정도로 어렵다.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인 루미는 30년 전에 죽은 삼촌의 죽음을 파헤치는 중이다. 그리고 프라임스쿨의 문제아 레오가 있다.  

 

 

 

 

다윈 영은 아빠의 친구 제이 아저씨의 추도식에 다니면서 제이 아저씨의 조카 루미를 좋아하고 있다. 한 달에 한번 나가는 외출에서 이번 추도식에 쪽지를 전하지 못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추도식에서 루미를 찾다가 제이 아저씨의 방에 들어가 그녀가 말하는 제이 아저씨에 대해 듣는다. 루미의 할아버지가 찍은 12월의 폭동장면을 찍은 사진 앨범 중 빠진 사진에서 의문점을 찾은 것이다. 제이를 죽인 사람은 9지구의 후디들이 아니라 1지구의 제이 삼촌을 아는 자라 여겼다. 루미는 다윈에게 삼촌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9지구에 가자고 했고 거절을 못한 다윈은 루미를 따라 나선다.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제이를 누가 죽였는가 이다. 루미와 다윈은 제이를 죽인 자를 찾고, 그걸 덮으려는 자가 존재한다. 추리 소설이 아니기에 독자들은 이미 예상가능하다. 제이를 죽인 자가 예상된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가 왜 제이를 죽였느냐 이다. 이 또한 예상 가능하다. 그의 아버지의 출신이 어디였는지 알만하기 때문이다.

 

죄책감 때문에 누군가를 죽였다 하더라도 그 죄책감을 덜기 위해 오랜시간동안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다시 없는 친구라 말한다. 정부의 요직에 있다보니 그의 도움을 받기 때문일까. 그를 대하는 태도가 어쩐지 이상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소설은 현재 열여섯 살의 다윈과 루미, 레오의 삼각 구도가 있고, 그 전 세대 즉 그들의 아버지인 니스와 버즈, 제이 혹은 조이의 삼각 구도로 펼쳐진다. 다윈은 사랑받는 아이라 천진난만하고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루미는 끝없이 자신의 아빠 조이를 부정한다. 아빠의 직업, 엄마의 출신, 차라리 모든 게 완벽했던 삼촌 제이의 딸이고 싶었다. 그래서 루미는 외출할때 항상 프리메라스쿨의 교복을 입고 다닌다. 사람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부러움의 눈으로 쳐다보는 걸 즐긴다.

 

모든 부모가 완벽하지는 않다. 또한 자식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비밀이라고 하기 보다는 숨기고 있을 않을 뿐이다. 그걸 알기 전의 자식들은 부모를 존경하고 우러르지만 어떤 사실을 알았을 때는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충돌한다. 그것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다. '가족'이라는 딜레마다. '가족'이라는 딜레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진실의 가치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그것이 내가 믿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진실이다. (429페이지)

 

 

 

 

 

진실에 맞닥뜨렸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은 많지 않다. 죄를 달게 받게 하거나 진실을 아는 자를 죽이면 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고통을 겪고 난 후에야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다.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그에 대한 대가가 뒤따르는 건 당연하다.

 

가족이라는 딜레마에 갇힌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아버지에 이은 단죄. 그들의 뿌리에서부터 나온다. 이것을 과연 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떤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는 것 또한 이들을 응원하고 있기 때문인가. 상상의 세계를 그렸지만 현실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대를 이어 누군가를 단죄해야 비로소 내가 사는 길인지도 모른다. 어떤 하나의 것에 맞닥뜨려야 비로소 성큼 어른이 되는지도 모른다. 진화된 인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박지리라는 작가에게 열광하는지, 이 책 때문이었음을 알겠다. 벽돌 두께의 책이지만 책을 놓지 못하는 것, 인간의 본질은 비록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하게 피력한 작품이었다. 결국 우리는 매일 진화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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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항설백물어 - 상 -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8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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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를 읽은지 몇 년. 다시 읽는 『항설백물어』는 전설 속 이야기에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에도 시대의 화가 다케하라 슈운센의 괴담집 「회본백물어繪本百物語」에 등장하는 고전 설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고 인과응보의 결과를 나타내는 소설을 썼다. 『항설백물어』와 『속 항설백물어』에 이어 『후 항설백물어』 상권이며 앞으로 하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어렸을 때 이불 속에서 눈만 빼꼼히 내밀고 보았던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닮은 소설. 기묘한 이야기는 다시 우리를 과거로 향하게 하고 이야기들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만나볼 수 있는 소설이다. 이번 이야기는 세 가지를 담았다. 하룻밤 사이에 가라앉았다는 섬에 관한 이야기  「붉은 가오리」와 원인 모를 불 소동을 담은  「하늘불」, 뱀을 수호신으로 모신 사당에서 뱀에 물려 죽은 이야기  「상처입은 뱀」이 그것이다.

 

세 이야기 모두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던 이야기 같다. 아마도 일본과 우리나라의 거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붉은 가오리」 는 길이가 삼십 리를 넘어 등에 모래가 쌓이면 떨어 뜨리려고 바다위에 서게 되는데 배들이 지나가다가 섬 인줄 알고 이 등에 댄다는 것이다. 배를 등에 대면 이 물고기는 가라앉고 배는 좌초된다.

 

 

 

 

 

여기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 번 소속의 가신이었으나 지금은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요지로가 그 한 사람이고, 도쿄 경시청 일등 순사인 겐노신, 막부 중신의 둘째 아들인 쇼마, 요지로와 같은 번 출신이었으나 검술을 배운 소베가 있다. 하나의 사건이 생기면 이들은 요지로가 알던 잇파쿠 옹을 만나 그의 말을 듣는다.

 

나이 팔십이 넘은 잇파쿠 옹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사람 중 주요 인물이다. 겐노신이 사건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신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하는데 설화와 경험이 교묘히 섞여 있는 느낌이다. 잇파쿠 옹과 함께 거주하는 사요는 잇파쿠 옹 즉 모모스케는 사건의 결말 즉 진실을 교묘히 숨긴다. 겐노신이나 요지로 등에서 다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가 숨겼던 뒷이야기는 진실을 꿰뚫는 소요나 독자만 아는 사실이 된다.

 

이런 부분이 기묘한 이야기 임에도 추리소설처럼 비춰지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생기고 그 사건을 해결하려는 자가 경험이 많은 노인에게 의견을 구하고 그들은 다 해결되었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가는데, 항상 뒷 이야기를 남겨둔다는 사실이다.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 이야기를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던 우리는 어둠이 깊어지는 산을 거쳐가는 길을 건너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도깨비불이라는 게 있어서 그것에 홀리면 밤새도록 같은 장소를 맴돌았다고 했다. 그게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늘불」이었다.

 

또한 구렁이는 집을 지키는 뱀이라고 해서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집에 사는 구렁이를 죽이면 그 집안이 망한다거나 좋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마도  「상처입은 뱀」도 이런 이야기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뱀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도 인간의 이런 감정을 노린 참살극이었음을 밝혔다.

 

그러고보면 인간이란 참 알수 없는 존재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부리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걸 개의치 않는다. 과감하게 누군가와 짜고 그를 죽게 만들어 이득을 취한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꼬집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어렸을 적에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들었던 이야기 같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 계속 조르게 되고 그걸 즐기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끝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다음 날에 조금씩 풀어놓는 식이다. 이야기에 목마른 우리처럼 요지로와 겐노신은 항상 잇파쿠 옹을 찾게 된다. 그들 스스로 이야기를 고전이나 기담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고쿠 나쓰히코가 이 소설을 계속 쓰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이야기에 목마른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역할. 작가가 하는 일이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후 항설백물어 』로 나오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용한 밤 이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밤은 훌쩍 지나고 아침이 찾아올 것이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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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12-0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이 나오면 바로 사서 읽었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잘 안 읽게 되더라구요. <후 항설백물어>는 읽어봐야겠다 싶네요^^

비연 2018-12-07 12:34   좋아요 0 | URL
지금 사왔어요! Breeze님 리뷰 읽고 정말 몇 년만에 교고쿠 나쓰히코 소설을 샀네요!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Breeze 2018-12-07 13:12   좋아요 0 | URL
앗, 정말요? 이래서 리뷰가 중요하군요. 하나의 리뷰가 구매로 이어지게 되니. 열심히 잘 써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년 봄 이 책의 리뷰를 쓰며 많은 위안을 받았었다. 아마 나에게 생소한 작가이며 또한 보노보노의 이야기 또한 처음이어서 그다지 기대를 안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보노보노의 짧은 만화를 보며 느꼈던 이런저런 감정들을 담은 저자의 에세이가 요란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왜  그 있잖나. 자분자분 건네는 말투. 그게 좋았다.

 

때로는 가만가만히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말이 더 가슴속 깊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작가의 글처럼.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에세이집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이었다. 아마 책이 출간되고 한동안 베스트셀러에도 올라와 있고, 이번 윈터 에디션을 읽으며 살펴보니 벌써 24쇄라고 하니 그 인기가 실감된다.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덕분에 우리나라 독자만을 위한 표지를 만들어  선물같은 윈터에디션을 선보였다.

 

벌써 크리스마스가 온것처럼 설레는 빨간색 표지다. 보노보노와 친구들도 모두 빨간색 모자를 써 겨울을 빛냈다. 무엇보다 한겨울의 크리스마스는 빨간색이 갑이라고 할 수 있잖나.

 

 

 

 

작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었는데, 역시나 비슷한 대목에서 감동을 했던지 포스트 잇을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나서 작년에 썼던 리뷰를 다시 훑어 보았다. 달라진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작년에 리뷰를 쓸때는 살아계셨던 엄마가 올해는 계시지 않는다는 거다. 포로리와 아빠는 매년 꽃구경을 갔다. 포로리 아빠가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느라 못갔던 꽃구경을 나중에야 가게 되었는데 노인네들과 하는 약속은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고 하며 젊은이들에게는 내일 혹은 내년이 있지만 노인네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나에게 다가올 줄이야. 리뷰를 쓴 뒤 몇개월 뒤에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어른들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잃은 뒤에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일까. 영원히 살아계실 것 같은 부모가 어느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사실이 가슴아프다. 비록 몇 컷의 만화로 이루어진 것이며 동물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새겨들을 말이 많다는 것이다.

 

 

 

 

매일 쓸데없는 짓만 벌이는 것 같은 보노보노와 친구들에게도 그들만의 관계 유지의 기술이 있다. 그건 상대라는 존재를 '그러려니'하는 마음이다. (31~32페이지)

 

때로 우리는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고 그가 없을 때 뒷말을 하고 이해할 수 없어한다. 하지만 사람이란 건 자기만의 고유한 행동이나 생각이 있지 않나. 하물며 가족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는데 다른 사람이야 오죽할까. 너부리의 괴팍함이나 보노보노의 소심함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것 또한 그를 아끼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을 바꿀 수는 없다. 그 또한 아무리 변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게 있는 것처럼.

 

 

 

 

각설하고, 이 책을 아직 안보신 분이 있다면 윈터 에디션을 구매해서 보셔도 좋을 듯 싶다. 흰색 바탕에 보노보노가 그려진 표지보다는 윈터에디션이 훨씬 사랑스러우므로. 문득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판본별로 소유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똑같은 내용의 책을 왜 몇 권씩이나 사는가. 단지 표지가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책을 그렇게 판본별로 구매해본 사람만이 가지는 즐거움 혹은 행복감이 있다. 소유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리고 받았을 때의 기분을 즐기는 것이다. 다시 읽어도 좋은 김신회 작가의 글이었다. 특별한 선물같은 책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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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1-2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까 윈터 에디션이 나오는 책들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이 책도 처음 표지도 좋았지만, 이 표지가 더 예쁜 것 같아요.
breeze님,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Breeze 2018-11-29 14: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사랑받는 책이 있으면 여러 판본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싶은게 출판사의 전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
 
블러드맨 모중석 스릴러 클럽 45
로버트 포비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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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는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는 데 있다. 주인공에게 강하게 이입되어 왜 살인을 저질렀는가, 무작위인가 아니면 원한 관계에 있는가가 관건이다. 하지만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이유를 찾지 못할 때 답답하다. 대개는 독자는 살인자를 알지만 살인범을 찾는 형사나 탐정은 모르는 경우도 있고, 미묘하게 살인자를 감춰 독자를 더 긴장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작가의 첫소설이라는 이 작품에서는 살인자가 누구인지 쉽게 추리하지 못하는 장치를 두었다. 혹시나 하고 의심을 했지만 결말은 처참하다.

 

삼십여 년만에 찾아온 아버지 집. 알츠하이머인 아버지 제이콥 콜리지는 집에 불을 질렀고 화가로서 그림을 그릴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 정리되어 있지 않은 작업실과 침실은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문을 닫아 걸었고, 아버지는 핏빛이 만연한 회색의 그림자를 그려두었다. 그리고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한 여성과 아이로 보이는 시체가 발견되었다.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진 처참한 광경이었다. FBI 특별수사관 제이크 콜은 직관적 기억력이 뛰어나 사진처럼 완벽하게 기억한다. 사건 현장을 보면 범인이 남긴 미세한 특징을 잡아내고 그들의 시그니처를 해독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살인 현장에서 맞딱드린 광경은 처참했다. 과거 삼십여 년전의 사건을 떠올렸다. 자신의 어머니 또한 같은 방법으로 살해되었다. 살갗을 도려내어 그저 한때 사람이었던 핏빛 물체가 된 처참한 광경이었다. 살인자의 말이 들리는 듯 했다. 그 놈이 나타나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버지는 왜 불을 질렀을까. 그가 삼십여 년동안 그린 그림은 어머니를 죽인 '그 놈'의 얼굴을 가리켰다. 사람의 형체를 지녔으나 얼굴이 없는 그림이었다. 아버지와 말을 하지 않고 지냈지만 그가 왜 그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답답한 것은 아버지는 왜 제이크에게 쪽지나 편지로 말하지 않았는가 이다. 수수께끼 안에 수수께끼를 감춰 둔 형국이랄까.

 

 

 

블러드맨이라는 존재는 제이크의 아들에게도 나타난다. 마룻바닥의 남자가 되어 자신과 관계되는 사람들을 죽여 나간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가 안타까워 아내인 케이와 아들이 찾아와 그 놈이 자기의 아들과 아내에게도 해를 가할까봐 두렵다. 그리고 몬탁 섬에는 1938년도에 찾아왔던 허리케인 딜런이 당도할 예정이었다. 허리케인의 눈이 몬탁을 향하고 있었고, 몬탁 주민들은 내륙으로 거의 대피한 상황이었다.

 

블러드맨은 누구를 죽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연습삼아 죽였던가.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의 간호사와 그를 위해 픽셀단위로 그려진 그림 사진을 동영상으로 보고 퍼즐을 맞추어낸 소녀와 그 엄마까지도 살해당했다. 블러드맨은 제이크를 옥죄어 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누구를 그리려고 했던가.

 

소설이 결말을 향해 갈수록 추악한 진실이 드러난다. 그러고보면 소설 곳곳에 독자들이 눈치챌 수도 있는 장치를 심어 두었다. 깊이 생각해보면 알수도 있는 단서를 놓치는 수가 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이윽고 드러나는 진실은 추악하다.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소설의 소개처럼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사이코 패스적 성향을 지닌 살인범, 그를 가리키는 수많은 단서들. 드러난 충격적인 진실은 그저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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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손톱과 밤
마치다 나오코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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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고양이에게, 개를 키우는 사람은 개에 관한 글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밖에서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할 때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게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내가 그렇다. 고양이의 행동 하나, 울음소리에도 반응을 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상대방은 조금쯤 지겨워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림책을 받아들고 기쁜 마음에 책장을 넘겨 보았다. 유치원생들이 봐도 좋을 몇 문장 되지 않은 책이다. 그림 또한 아주 단순하며 스토리 또한 짧다. 한 달에 한 번씩 고양이 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수많은 고양이들이 어두운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린다. 드디어 구름이 걷히고 드러난 건 하늘의 조각달이다. 사람에게는 조각달, 수많은 고양이들에게는 밤하늘에 떠 있는 그들의 손톱모양이다. 조각달의 모습을 그들의 손톱 모양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기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본다.

 

 

 

 

고양이를 직접 키우는 작가는 고양이 모습을 그대로 그렸다. 마치 사진처럼 선명한 그림이다. 고양이의 동작 하나도 그저 반갑다. 발톱을 혀로 핥는 모습을 사진 찍으려고 했더니 벌써 다른 행동을 하는 고양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만이 느끼는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키우다 보니 길고양이들에게도 관심이 간다. 이 추운 겨울날을 어찌 버틸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날이 추워지면 고양이는 방금 들어온 차량의 본네트 위에 앉았다가 열이 남아있는 엔진 쪽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모르고 차량을 출발했다가 차량 밑에서 죽은 고양이를 발견한다고도 한다. 안쓰러울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키워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안타깝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하늘에 떠 있는 조각 달의 모습을 그들의 손톱 모양으로 보는 작가의 시선에 동감을 표한다. 나이가 들수록 잠이 늘어나 늘 누워있다가 어슬렁 거리며 다가와 자기의 꼬리를 사람에게 치는 행동을 하는 고양이. 겨울철 극세사 잠옷을 입고 극세사 이불에 누워있으면 사람의 몸에 올라와 끊임없이 꾹꾹이를 하는 모습에서 더한 애정과 어미 젖을 빨던 습관적인 행동에 애잔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꾹꾹이를 하는 고양이. 침대 발치에 가로로 대자로 누워 우리의 잠을 설치게 하는 고양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사랑스러운 고양이 그림책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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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8-11-19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양이를 키우다보니, 고양이 관련 책은 더 반가워요. 그전에도 고양이 책은 많이 봤는데. 이 책도 읽어야겠네요. 사진속에 고양이가 breeze님의 고양이 인가요?

Breeze 2018-11-19 21:18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털 알레르기 있었는데 그것도 사라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