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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평점 :
2006년,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뉴스 하나가 한국인 중 첫 우주인의 탄생이었다. 한국우주인배출사업에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최종 선발된 우주인이 고산이라는 인물이었다. 유출이 금지된 자료를 반출했다는 이유로 우주인에서 예비 우주인이 되었던 소식이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무언가 말했던게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그가 좌절하고 여성인 김소연이 첫 우주인이 되었다는 소식이 한동안 들끓었다. 한동안 강연도 활발히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소설은 그때의 일들을 떠올리게 했다. 작가 또한 2006년 우주인 선발 대회에 직접 나서 취재했던 경험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물론 탈락자의 소식에 안타까움도 있었으리라.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의 시선으로 써서 그런지 꽤 사실적인 소설이었다.
치열한 선발 과정을 통해 최종 선발된 네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훈련을 받는지, 네 사람과는 어떤 관계에서 출발하는지 그들의 육성을 통해 우주인이 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가장 크게 자리했던 건 누가 우주선에 탑승을 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그에 따른 질투의 감정을 담았다.
최종 선발된 사람들을 보자. 생태보호연구원의 식물연구원인 이진우가 그 첫 번째다. 그는 연구를 하다 옥상에 올라 우주를 떠올리면 심장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우주인 선발을 하는 공고문을 보고 당연하게 도전했다. 또 한 사람의 인물은 우주인이 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고더드 세너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인 김태우다. 그는 우주 마니아다. 우주인에 관해서라면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투어리스트'라는 벤처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우성이 있고, 유일한 여성 후보이며 마이크로로봇연구원인 김유진이 그들이다.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기억하지만 두 번째 우주인이자 지구를 열일곱 바퀴나 돈 게르만 티토프는 존재감이 없다.' 라는 내용이 소설 전체에 흐른다. 무엇이든 첫 번째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첫 번째는 기억하지만 두 번째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첫 번째가 되기 위해 애쓴다. 소설에서 네 사람의 우주인 들도 모두 첫 번째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했던 것이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희망을 안고 훈련했다.
누가 다음 발사 때 탑승 우주인으로 정해질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두 명씩 조를 나눠 활동했고 서로 도와 탑승자가 되길 바랐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관대한 편이라서 모두들 자기가 탑승자가 되길 기대했다. 드디어 탑승자가 정해졌다. 탑승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실망했고, 탑승자로 선발된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 했다. 감기만 걸려도 탑승하지 못하고 백업이 탑승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그러니까 탑승자가 어떠한 사건에 휘말렸을 때, 누군가의 이름을 말해야 할때 탑승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이름을 밝혀야 하지만, 여태 그와 함께 해 온 노력과 우정을 생각하면 밝힐 수 없다. 그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중력을 탓하며 쓰러지지만 중력은 나에게 관심조차 없으리라. 하지만 지금 중력은 누구에게나 힘을 미친다. 누구나 똑같이 바닥에 닿게 하고, 서든 눕든 제 무게를 되살려준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고, 태양도 지녔지만 티끌도 가졌다. 그래서 중력은 모든 것이 제가끔 움직이고 저마다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조건이고 운명이다. (152페이지)
삶은 고민의 연속이다. 이진우가 다니고 있는 연구원에서 대기반으로 발령이 나 우주인 탑승자로 선발되지 않으면 그의 거취는 어떻게 될 것인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건 가족이며, 함께 동거동락해온 우주인 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누군가는 패자가 되는 현실이다. 선의의 노력을 해온 자들의 삶의 방법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그때 우주인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 궁금해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우주인이 되기 위한 훈련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에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제조업을 하는 벤처 사업을 하고 있는 사진도 만날 수 있었다. 작가는 우주인이 되는 과정을 취재하며 느꼈던 것들을 이렇게 소설에서 다시 한번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주인이 되는 훈련 과정이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음을. 경쟁 관계였지만 서로 돕고 함께 노력해 왔던 과정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승자가 아니라도 좋았다. 승자보다 더 승자다운 것, 승자의 됨됨이를 지니는 것, 그래서 미더움을 주고 소박한 정을 나누는 것이 더 소중했다. (394~395페이지)
너는 끝까지 가보았으니까. 그 말이 마치 성큼 걸음을 내딛듯이 나에게로 들어왔다. 너는 끝까지 가보았으니까…… 꿈이 스러져가도 최대치를 다했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442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