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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없는 사람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8월
평점 :
시를 읽기 좋은 계절.
원래는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이라고도 하지만,,, 책 중에서도 시를 읽기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이 된다. 날씨는 쌀쌀하고 얼마 뒤면 한 해가 다가오기 때문에 시간이 가고 있다는 아쉬움과 쓸쓸함 때문에 더 시詩가 더 마음에 들어오는 것 같다.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고 울적해지는 마음을 위로해 주는 시가 있어 그나마 가을을 잘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중을 긁적거리며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배 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 중 략 -
내가 사랑하는 여인:
3일, 5일, 6일, 9일 .....,
달력에 사랑의 날짜를 빼곡히 채우는 여인.
오전을 서둘러 끝내고 정오를 넘어 오후를 향해
내 그림자를 길게 끌어당기는 여인. 그녀를 사랑하기에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죽음,
기억 없는 죽음, 무의미한 죽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일랑 잊고서
인중을 긁적거리며
제발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요,
전생에서 후생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뿐인 청혼을 한다. (12~15페이지 중에서)
사랑은 나의 약점
- 중 략 -
그는 내게 말하는 듯했다.
시인이여, 노래해달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나의 머지않은 죽음이 아니라
누구도 모르는 나의 일생에 대해.
나의 슬픈 사랑과 아픈 좌절에 대해.
그러나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에 대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생존하여 바로 오늘
쪽동백나무 아래에서 당신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음에 대해.
나는 너무 많은 기억들을 어깨 위에 짊어지게 있는데
어찌하여 그 안에는 단 하나의 선율도 흐르지 않는가.
창가에 서 있는 시인이여,
나에 대해 노래해달라. 나의 지친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들에게는 없는 독특한 강점을 지녔노라고 제발 노래해달라. (129~130페이지 중에서)
눈앞에 없는 사람, 부재하는 연인에 대한 예찬자라고 하는 시인.
내게는 처음 만난 시인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어 더욱 감격스러웠던 시집이다.
9월부터 뒤적거리던 시집.
제목이 참 좋았다.
눈앞에 없는 사람,,,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이 배어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해본 사람이라면 이 마음들을 이해할 것이다. 그 간절함을 담은 글들을 읽었다. 아주 멀리 있어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사람, 옆에 없는 사람을 향한 그의 시를 마음속에 그리움을 담고 읽었다. 지금은 내 곁에 있지만 언젠가는 떠날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북받쳐 와 내 그런 슬픈 마음들을 조심조심 달래기도 했다.
내가 읽고 싶은 시집 몇 권을 또 체크해두고,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을때 읽어 보려고 한다.
가을은 시를 읽기 참 좋은 계절.
쓸쓸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 우리를 위로해 주는 시를 만나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