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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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간의 삶 속에서 사랑이 이토록 큰 것이던가. 자신의 모든 생을 바쳐 사랑을 하고, 그 짧은 생이 너무 안타까워 마치 달이 차고 기울듯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싶었던가. 오로지 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소설 속에서는 가능하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일어날 것 같은 상황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종종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는 경우가 생기긴 하지만 우리의 상상일 뿐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처럼 소설에서 나타나는 걸 보면 우리 주변 누구에겐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조금쯤은 느끼겠다.

 

소설의 큰 얼개는 오래 전에 딸을 잃은 한 나이 든 남자와 일곱 살의 소녀, 그리고 소녀의 엄마가 호텔에서 만나 이야기는 하는 것이 첫 번째고, 그 이면에 한 남자를 사랑했던 한 여자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두 번째다. 먼저 소설의 처음에 등장하는 이야기. 오사나이 쓰요시에게는 고향의 고등학교 후배인 아내 후지미야 고즈에가 있고 둘 사이엔 루리라는 딸이 있다. 어느 날 루리가 일주일쯤 고열에 시달리다가 말끔히 나았던 이후로 이상한 행동들을 한다. 20여년 전의 노래를 하는 가 하면 일곱 살의 나이로는 알지 못할 한자들을 써보였다.

 

루리도 하리도 빛을 비추면 빛난다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는 문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장을 말하면 루리의 정체를 알아챘다. 왜 그토록 중요한 문장인가. 다른 이야기로 스무살의 미스미 아키히코는 어느 건물의 지하에 위치한 영화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다. 비오는 어느 날, 비디오대여점 앞에 젖어있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비를 피하고 있었다는 그녀에게 수건이 없어 티셔츠를 건네주었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렇게 헤어졌다. 그녀의 모습이 궁금해 그녀가 자주 다닌다는 영화관을 순례하다가 우연히 만난 날 둘은 하염없이 거리를 거닐었다. 단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루리. 루리는 자신의 이름을 '루리도 하리도 빛을 비추면 빛난다'라는 속담에서 따왔다며 아키히코에게 말했다.

 

루리는 달처럼 죽었다가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전설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달이 차고 기울 듯이 몇번이고 다시 죽고 태어나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루리는 환생을 거듭한다. 짧은 삶을 살다가 다시 태어나 아키히코에게 향한다. 삼십 대의 아키히코에게, 사십 대의 아키히코에게, 오십 대의 아키히코에게 향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루리라는 이름으로 태어나고, 아키히코를 찾는다. 그가 근무했던 비디오 대여점으로, 그가 근무하고 있는 건설회사 빌딩으로.

 

 

 

예전에 드라마 <도깨비>에서 나타났 듯 과거의 기억을 안고 있는 건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삶이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행복했던 기억이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루리는 아키히코만을 사랑했고, 아키히코를 만나기 위해 짧은 삶을 반복하게 되었다. 마사키 루리가 죽고 난 뒤 첫 번째였던 오사나이 루리와 고누마 노조미(루리), 미도리자카 루리에게 환생이 반복되었다.

 

아이를 임신한 사람이나 임신한 이의 가까운 사람은 종종 태몽을 꾸게 된다. 태몽으로 인해 누군가의 임신을 알아채고 자신에게 다가온 새생명을 끌어안는다. 만약 임신한 상태에서 딸이 나타나 자신의 이름을 루리라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을때 아이 엄마는 대부분 그 이름으로 딸을 부를 것이다. 아이의 전생을 알게 된 엄마들은 대부분 그 이야기를 믿어주었다. 어떻게든 미스미 아키히코에게 데려다 주려고 했으나 운명이 막았던 것일까. 그들의 생은 짧았다. 마치 마사키 루리의 짧은 생을 따라가듯 쉽게 아키히코에게 닿지 못했다.

 

인간은 세 번쯤 환생을 한다고 어디에선가 들었다. 한번 뿐인 생이지만 생과 사를 반복한다면 어쩌면 이런 환생을 꿈꿀수도 있겠다 싶다. 다른 한편으로 얼마나 사랑하면 이렇게나 생을 반복하는 것일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 생이 너무 짧아서, 제대로 사랑을 못해 이렇게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했던 것일까. 마치 운명의 굴레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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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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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잊고 싶은 과거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난후 돌이켜보면 그리운 법이다. 그 시절의 고통이 있었기에 현재가 있는 법.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임에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우리가 견뎌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픔도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되는 법. 우리는 지금도 미래의 역사를 쓰는지도 모른다.

 

터키 이스탄불의 한 소년. 그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보자를 판다. 시골인 아나톨리아에서 도시인 이스탄불로 나와 낮에는 중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아버지를 따라 보자를 판매한다. 여기에서 보자란 기장으로 만든 술에 가까운 터키의 전통 음료다. 짙은 노란색을 띤 음료로 약간의 알코올이 가미되어 있다. 우리의 단술 정도라고 보면 될까. 1969년부터 2012년까지 약 사십 년 간의 이스탄불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 거리를 누비는 노점상들. 소위 노동자 계층의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도 자기 집 한 칸 제대로 가질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닮았다.

 

많은 부분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보자 장사치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보오오자아아아~! 하고 외치는 소리는 우리의 과거와 닮았다. 찹쌀~떡!, 메밀~묵! 하고 외치던 소리 말이다. 때로는 집에 있는 손님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보자를 산다. 윗층에서 바구니를 내려 보내 보자를 사고 파는 모습은 정겹기까지 하다.

 

우리의 주인공 메블루트가 사촌 형 코르쿠트의 결혼식에서 형수인 웨디하의 여동생 중의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 눈동자에 반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수백 통의 편지를 쓴다. 코르쿠트의 동생 쉴레이만과 형수 웨디하의 도움으로 눈동자가 아름다운 '라이하'에게 3년간이나 편지를 썼다. 그녀의 얼굴도 보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쉴레이만의 도움으로 라이하와 도망치기로 했다. 일명 신부 납치. 터키에서 신부를 데려올때는 신부의 아버지에게 지참금을 주어야 한다. 돈이 없는 메블루트는 라이하의 마음을 얻어 도망치기로 했던 것이다. 

 

신부의 아버지가 쫓아올지도 몰라 쉴레이만의 도움으로 트럭을 타고 도망쳤다. 도망친 신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던 메블루트는 번개가 칠때 그녀의 얼굴을 보았고, 그녀가 자신이 그리워했던 그 소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때 느꼈던 낯선 감정이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았다.

 

지난 3년 간 편지를 썼던 소녀가 아내의 여동생이었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메블루트는 라이하에게 자신의 감정들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녀를 평생을 함께 할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메블루트의 과거로, 이스탄불로 오게 되는 과정들을, 라이하와 함께 이스탄불의 격동의 현대사가 시작되었다.

 

 

 

 

소설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거리를 누비는 하찮은 보자 장수 임에도 메블루트는 누군가를 속이려 들지 않는다. 그가 식당의 매니저로 일했을때 직원들을 감시해야 함에도 그들을 고자질하지 않은 것처럼. 그의 친구 페르하트가 전기검침원으로 일했을 때 불법으로 전기 쓰는 것을 봐주며 댓가를 챙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메블루트는 적발하지 않았다.

 

사람은 도시의 인파 속에서 외로울 수 있고, 도시를 도시이게 만드는 것도 어차피 군중 속에서 마음을 스치는 낯선 생각들을 감추는 데 있었다. (131페이지)

 

메블루트의 이야기는 3인칭 시점으로 그의 주변 사람들은 돌아가며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메블루트를 바라보는 감정들,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들을 그들의 이야기로 알 수 있다. 마치 독백처럼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터키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의 궁핍한 생활. 집을 짓고 나서 마을 이장에서 서류를 임시로 발급 받는 것하며, 그 증서가 곧 그들의 재산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 군부 쿠데타로 인해 서로를 적대시 했던 행동들. 도시화로 변해가는 이스탄불의 풍경은 재산을 다투는 모습까지 보인다.  

 

나뭇잎들이, 단어들이 말을 하며 움직였다. 마음의 의도와 말의 의도 사이에 놓인 다리는 물론 운명이었다. 사람은 어떤 의도를 두고 다른 것을 말할 수 있다. 운명은 이 두 가지를 합치할 수 있다. (중략) 하지만 마음의 언어와 말의 언어는 바람, 우연, 시간 같은 운명에 관련된 것들로 인해 실현된다. 라이하와 함께 발견한  행복은 메블루트의 인생에서 커다란 운명이었고, 그것에 존경을 표해야 한다. (534페이지)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수많은 낯선 감정을 만나게 된다. 메블루트가 라이하를 처음 만났을 때 반했던 소녀가 아니었음을, 딸 아이가 태어났을때 라이하가 아이만 바라보았을때 느꼈던 질투라는 낯선 감정들처럼. 그럼에도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일테다. 두려웠던 감정들을 뒤로 하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표지속에서 보였던 지게를 짊어진 소년의 삶의 무게가 지쳐보인다. 그럼에도 미래를 향해 나아갔던 행복을 위한 발걸음이었다는 걸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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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0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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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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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집은 더이상 집이 아니게 된다. 사랑했던 사람의 흔적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고통의 시간을 겪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 공간을 견디지 못한다. 추억이 배어있는 사진들, 물건들. 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일이 힘들어 사람들은 다른 공간으로 이주하거나 어딘가로 떠나게 된다. 나름의 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이다. 우리 또한 그러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지 않은가.

 

『파이 이야기』의 얀 마텔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구원의 길에 이르는 이야기를 한다.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각자 다른 이야기이면서도 전체의 맥락으로 보면 같은 이야기다. 시대를 달리해 고통의 시간을 겪는 사람들이 어떤 것으로 구원을 얻는가에 대한 이야기 였다.

 

1904년 포르투갈의 리스본, 고미술 박물관의 학예사 보조로 일하고 있는 토마스는 일주일 만에 아내와 아들, 아버지를 잃는다.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토마스는 신에 대한 반발로 뒤로 걷기 시작한다. 박물관에서 우연히 노예 무역이 활발하던 시대의 그들을 위했던 율리시스의 신부의 일기를 발견한다. 예수의 형상을 유인원처럼 만든 십자고상을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위치한 성당에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토마스는 17세기의 십자고 상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 부자인 숙부에게서 자동차를 빌려 많은 물건을 싣고 그곳으로 향한다.

 

1939년의 포르투갈의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 그가 하는 일은 시신을 부검하는 일이다. 늦은 밤 자신의 사무실에 있던 그는 아내 마리아의 방문을 받는다. 마리아와 에우제비우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무척 좋아했다. 그날 밤에도 마리아가 찾아와서는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가 존재의 서술이며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은 부재의 복음서라는 이야기를 한다. 마리아가 가고난 뒤 같은 이름의 마리아가 찾아와서 남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살펴달라고 한다. 마리아의 남편을 부검할 때 그의 곁을 지키고자 하는 마리아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1981년의 캐나다 상원의원인 피터. 아들의 이혼과 손녀의 반항기까지 겹친 그는 아내를 사별한지 6개월이 되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유인원 연구소에 방문했고, 그곳에서 침팬지 오도를 바라보게 되는데 이상한 끌림이 있었다. 불현듯 오도를 구입해 부모님이 살았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이주하게 된다. 

 

세 가지 이야기 속 인물들인 토마스, 에우제비우, 피터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다. 슬픔을 견디기 힘든 그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신을 찾는다. 부모님의 살았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위치한 집에서 피터는 비로소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그에게 침팬지 오도는 인간보다도 더 큰 위로를 주게 된다. 토마스 또한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한 아이를 차에 치어 죽이게 되고 유인원의 형상을 띤 십자고 상을 바라보며 슬픔의 오열을 하며 신을 찾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내의 죽음과 같은 이름의 마리아의 남편을 부검하며 구원이라는 과정을 겪는다. 마치 하나의 선물처럼 다가온 것들이다. 마음의 안식을 얻으며 고통의 시간들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1부, 2부, 3부의 소제목처럼 우리는 결국 집을 찾기 위한 여정을 했던가. 집을 잃고, 집으로 향하는 길 또한 결국 집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안식의 집, 구원의 집. 비록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서, 그에게서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 조차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들로 인해 고통스럽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곳이 토마스와 피터에게 포트투갈의 높은 산이었으며 안식의 장소였다는 것을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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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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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와이오밍 주, 수렵감시관으로 일하는 조 피킷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오픈 시즌』은 우리가 여태 읽어왔던 추리소설의 범주를 벗어났다. 독특한 직업, 여타의 추리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가정적인 남자. 수렵감시관으로 근무하고 있음에도 조준을 해 쏘는 총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남자다. 그렇다고 수렵감시관으로서 완벽한 남자도 아닌 것 같다. 글쎄 사냥 시즌이 아닌 때 사냥을 하는 남자를 붙잡았다가 그만 총을 뺏기고 만 남자다. 총도 제대로 못 쏴, 이래가지고 수렵감시관으로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한 일로 조 피킷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조만간 정직될지도 몰랐다.

 

조 피킷의 큰 딸 셰리든이 밤새 괴물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악몽을 꾸었다며 본격적인 소설이 시작된다. 셰리든이 꾸었던 꿈이 꿈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었다. 조가 총을 빼앗겼던 남자가 자신의 집 장작더미 옆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몸에 피를 흘린 채. 그는 아이스박스를 한 개 가지고 있었으며, 아이스박스 안에는 동물의 분비물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셰리든은 장작더미 옆에서 동물들 몇 마리를 발견하고, 가족에게 아무말 하지 않고 자신의 애완동물로 키우고자 한다. 먹을 것을 부모 몰래 남겨 이름을 지어준 애완동물들에게 가져다 주었고, 동생과 둘이서만 알게 된 비밀이 되었다.

 

 

조 피킷은 오티 킬리의 죽음이 의심스러워 조사에 임하게 되고, 그와 함께 수렵감시관 일을 배웠던 웨이시와 바넘 보안관의 지휘 아래 보안관 대리와 함께 캠프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총에 맞은 클라이드를 발견하고 무슨 일에 연루되었음을 직감한다. 나름의 방법대로 조사를 시작하는 조. 수렵감시관이 살인 사건의 전말을 조사해도 되나 싶지만, 바넘 보안관은 크게 저지하지 않는다.

 

캠프에서 왜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가 조사를 시작한 조 피킷은 사냥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스치듯 말을 듣는다. 멸종 위기종의 동물이 발견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만약 멸종 위기종의 동물이 발견된다면 사냥은 금지될 것이다. 이로써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누군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일을 벌였단 말인가.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가 중요한 관건이다.

 

 

 

 

C.J. 복스는 그러한 독자의 허를 찌른다.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 지 몰랐던 수렵감시관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사건의 중심에 가까이 서게 만든다. 또한 조 피킷의 가족이 타깃이 되어 피해를 입는다. 약간은 어수룩하게 보였던 가정적인 남자 조 피킷에게서 동물적인 수사 감각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았으랴.

 

그러고보면 여자들은 사람에 대한 아주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것 같다. 조 피킷의 아내 메리베스가 사람을 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조 피킷이 주변 인물들과 꽤 가깝게 지냈었는데 그 중의 몇몇 인물들에게는 눈쌀을 찌푸렸으니 말이다. 물론 소설 속 여자들이 메리베스처럼 지혜롭거나 현명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사냥에 대해 관심이 없기에 초반엔 조 피킷의 매력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휘몰아치듯 사건이 진행되는 바람에 소설에 쏙 빠지게 되었다. 아울러 다른 사람에게는 볼 수 없는 조 피킷 만의 사건 해결법에 빠졌달까. 동물에게 조용히 다가서듯 사건을 해결했다. 그것도 통쾌하게. 아마 그가 보안관이 아닌 수렵감시관이었기에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조 피킷의 다음 행보가 기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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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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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여성으로서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그래왔으니까,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조남주 작가가 조목조목 따지는데, 여태 감춰두었던 감정들이 솟구쳤다. 여성으로서 차별받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 책을 읽은 여성들은 깊이 공감하며 분개하는데, 정작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남성들은 불편한 감정을 갖는 모양이다. 공감할 수도 없으며 재미도 없다고 여기는 듯 하다. 어쩌면 당연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본인들은 그런 차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테니까. 

 

『82년생 김지영』 소설에 이어 페미니즘 소설이 출간되었다. 일곱 명의 여성 작가들이 모여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소설이다. 내가 한두 번쯤은 읽어왔던 작가들이 쓴 소설이라 반가움이 앞섰다. 구병모 작가의 출간된 소설은 거의 다 읽었으니 그 기대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조남주, 구병모 작가 뿐만 아니라 최은영, 김이설, 최정화, 손보미, 김성중 작가까지 가세해 소설집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었다.

 

「현남 오빠에게」같은 경우 지방에서 살다가 대학을 위해 서울로 온 여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던 선배가 사실은 자기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던 것을 깨닫게 되며 청혼 거절을 하는 편지 형식의 내용이다. 아마도 이 작품이 소설집의 첫 편에 있었기에 이 소설의 주제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고, 앞으로 이어질 소설에 대한 예감을 했었다.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 또한 우리와 우리 어머니 세대에 대한 통찰을 담은 글이었다.

 

유진의 엄마 정순은 마치 엄마를 보는 듯 했다. 치매에 걸린 시할머니를 모셨던 엄마, 그렇다고 아빠한테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했다. 새로 결혼할 아들과 며느리에게 그 한을 풀어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기 속내를 딸에게 말했으나 딸 조차 그런 엄마를 피하는 형식이다. 주변에서 많이 보기도 하고 들어왔던 일들이라 공감이 더 컸다. 이외에 중학생 아들을 둔 갱년기에 접어든 한 여자의 이야기 또한 묵직한 울림을 준다. 엄마의 소원대로 의대에 가겠다는 아이가 여자애들과 성관계하는 걸로 공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소위 다른 엄마들처럼 내 자식만 챙기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서로 합의하에 했다지만 여자 아이들이 아들을 좋아했으면 어쩌려나 걱정을 했다. 여자 아이들을 만나볼까. 보통의 엄마인 아들을 걱정하기 보다 오히려 여자애들을 걱정하는 점이 특별했다.

 

 

 

아들과 잔 여자 아이는 공부도 못하는 애들일 것이며 내 딸은 절대 그런 애가 아니라는 이중잣대를 재는 것들을 꼬집었다. 부모가 범하기 쉬운 오류가 내 자식은 그럴 애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여자 아이에 대한 편견은 그릇된 행위다. 그러한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여성 차별은 존재한다. 현재의 내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할 우리 자식들의 세상엔 여성 차별이 없었으면 싶지만, 모를 일이다. 차별을 받았던 사람이 아이를 키우며 자신도 모르게 차별하며 키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작가 노트에서 읽었던 말이 떠오른다. 무심코 남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게 더 쉬웠다는 생각들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자니 걸리는게 있었다는.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여자 형사는 섹시해서도 안되며 여성적이어서도 안된다는 우리의 편견을 꼬집었다.

 

여기서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여자 작가가 쓴 어떤 장르에 관한 소설은 남자 작가가 쓴 것보다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여자이면서도 말이다. 페미니즘 소설을 읽었다고 해서 단번에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조금씩 변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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