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 컬리넌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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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배우들 때문에도, 영화가 가진 스토리 때문에도 이 영화가 궁금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4년의 미국. 한 소녀가 허밍을 하며 숲속을 걸어간다. 고요한 숲속에서 들리는 건 소녀의 숨소리뿐. 옆구리에 낀 바구니에 버섯을 따는 깡마른 소녀. 누군가 나타날 것만 같다. 그리고 무언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소녀는 한 젊은 군인을 발견한다. 남부 연합에 속한 버지니아 주에 북군의 옷을 입었다. 다리를 다친 그를 부축해 소녀가 머물고 있는 마사 판즈워스 신학교로 온다. 마사 판즈워스 신학교에는 여자 교장과 한 명의 교사, 여학생 다섯 명이 머물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마사 교장은 북부 연방군의 존 맥버니 상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치료한다. 여자들만 있는 곳이었을까. 여자들만 있는 공간에 남자가 들어오니 여자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맥버니에게 잘 보이려 미소를 건네고 그가 괜찮은지 자주 살펴보러 다닌다. 존은 모든 여자들에게 친절하다. 단 둘이 있을때 네가 제일 예쁘다며 그녀들의 환심을 산다. 저녁 식사에 존 맥버니를 초대했을 때 그녀들이 입었던 드레스는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선택했다. 열살에서 열일곱 살, 아니 마사 교장까지 그에게 예뻐보이기 위해 그들의 숨죽인 설렘이 엿보인다.

 

 

그들이 짓던 미소, 존을 향한 눈빛, 그것은 숨죽인 욕망과도 같았다. 식탁에서의 모든 여자들은 존을 향해 있었다. 그들 모두를 매혹시켰던 존 맥버니. 그는 유달리 에드위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모두를 매혹시켰으나 그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에드위나인 것 같았다. 그러나 다른 여학생의 방으로 숨어들었던 존. 그리고 이어지는 사고. 영화의 마지막까지 쉼없이 달린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매혹적인 영화.

 

1971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그리고 2017년 니콜 키드먼 주연,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원작이기도 한 소설이 궁금한 건 당연했다. 책을 읽기까지 숨죽이는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영화와 책은 어떻게 다를까. 영화에서 느꼈던 그 감정들이 그대로 전해질까. 이런 마음에 두근두근했던 것 같다. 일단 영화와 다른 인물이 에드위나 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교사로 나왔지만, 소설 속에서는 열일곱 살의 학생이다. 아마 감독은 마사의 동생이자 교사인 해리엇 판즈워스와 여학생인 에드위나를 에드위나라는 하나의 인물로 그렸던 것 같다.

 

 

고립된 장소에 있다보면 평소와는 다른 행동, 다른 감정을 갖게 된다. 남북 전쟁이 한창이던 여자 신학교에서 남자 하나 없이 여자들만 있다보면 남자에 대한 호기심은 극도에 다다를지 모른다. 존의 말 중에 나이가 많건 적건 모든 여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되겠다는 부분이 있다. 모두들 숨죽이며 자신의 병상에 찾아오고,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는 것에 대해 그가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저 그들의 친절에 보답하는 길은 그것 뿐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의 친절함, 그가 건네는 미소, 자신의 말을 들어주며 예쁘다고 칭찬하니 모든 여학생들, 심지어 마사 교장의 마음까지 훔치게 되었던 것이다. 즉 모두의 마음을 훔쳤다.

 

그는 다정하고 솔직했다.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 순수함 이면에 교활함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교활함이 소년의 장난기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134페이지) 

 

 

소설 속 인물들이 돌아가며 자신이 바라보는 존 맥버니를 이야기한다. 자신과 얘기했던 존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친절함을 베푸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원래 여자들이 '네가 제일 예쁘다'라는 말에 약한 건 알지만, 그럼에도 그가 하는 말이 거짓말처럼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토록 그들 모두를 매혹시켰지만, 사랑이 아니라고 여겼을때는 가차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여자들이다. 존 맥버니는 그걸 몰랐던 듯 하다. 그가 힘이 세고, 모든 여성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여겼지만, 그 기한이 언제까지일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소설 또한 무척 매혹적이다. 고립된 공간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무척 매혹적이다. 인물 하나하나에 부여한 각자의 이야기들이 그 사람의 행동을 말해준다. 영화 속에서 왜 그렇게 말했을까, 행동했을까에 대한 답이 소설에 있다. 영화에서 하나의 행동으로 묘사되었던 그들의 삶들이 그 한마디의 말에 내재되어 있었다.

 

소설을 읽고 났더니 영화속 인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행동했었는지,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숨겨진 섹슈얼한 이미지마저 온전히 이해되는 느낌이었달까. 니콜 키드먼의 매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에드위나 역할을 맡았던 커스틴 던스트라는 인물의 매력에 빠졌다. 콜린 파렐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삼십대 초반 정도가 아닐까 했던 존 맥버니가 고작 스물한 살이었다는 게 약간 아쉽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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