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제목만 보면 이 책이 무슨 소설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들여다보면 사진과 그림이 실려
있다. 한층 책에 대한 호감이 상승하게 된다. 더군다나 작가가 한국화를 그린다. 해와 달이 있는 그림은 한편의 동화같다. 그런 작가의 에세이라
나는 즐겁게 책을 펼친다.
여행을 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이제는 한 곳에 머물면서 쉬기도 하고, 머무는 장소를
좀더 깊게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간 곳이지만 아름다운 베니스에서의 한 달간은 매우 기뻤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에세이의 처음은 작가가 동생에게 건네는 유서에서부터 시작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베니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지 못해 기나긴
시간이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같았을까.
작가는 베니스에서의 스튜디오, 한 달 동안의 매일을 일기처럼 적었다. 몇 장의 사진과 작가의 그림이
실려있는 건 기본이다. 작가가 머문 공간, 물론 몇 사람과 함께 지내는 쉐어룸이지만,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과 같이 먹을 쌀을 사고 음식 준비를
해 지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화가이자 요리사였다고 했다.
베니스는 운하의 도시다. 운하를 저어가는 곤돌라와 곤돌라에서 보이는 베니스의 풍경들. 이게
베니스를 대표하는 게 아닐까. 그곳에서 한달을 보내는 작가는 거의 집에서 칩거하다 시피한다. 특별히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싶어하지도 않고, 그저
스튜디오 자신의 공간에서 그림을 그릴 뿐이었다. 한지에 그림 그리기가 굉장히 어려울텐데, 작가는 스튜디오에 돗자리를 깔아 놓고 그 위에 한지를
올려놓은 다음 한지 위에 물감을 풀었다. 한지를 물들이기 위해. 색이 골고루 물들지 않아도 물들지 않은 대로 자연의 미를 강조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화구용품점에 가서 물감을 구하고 캔버스를 구매하는 대담함도 보였다. 다만
이탈리아의 물감이 우리나라처럼 제대로 물들지 않았다는 것 외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선'은, 또한
고요함입니다.
수평선과 지평선을 떠올리며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맞닿지 않았지만 맞닿은 것처럼 보이는,
많은 공기와 먼지가 응축되었을 것 같은 그
선은
나를 지나간 많은 것들에게 데려다줍니다.
(66~68페이지)
'해와 달이 있는 풍경'을 주로 그렸던 작가는 베니스에 한 달 동안 거주하면서 물고기 그림을
좀더 그리게 되었다고 했다. 스튜디오의 식탁 위에 있는 물고기 그림은 작가가 베니스에 머물 때 그린 그림이다. 베니스의 물빛 풍경이 작가를
변화시켰던 것 같다.
해와 달의 풍경은 어쩌면 동화 같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에서의 햇님과 달님. 이를 그림에 나타냈던
작가의 그림을 보라. 동화속 풍경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나타낸다. 작가는 꽤 정적인 사람 같았다. 누군가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고, 거리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베니스 본 섬으로 가서 스튜디오로 오는 버스를 탈 정도로 고지식한 면도 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장소에서만큼은 완벽을 기하는 사람 같았다. 정리정돈된 화구들 속에서 그런 느낌이 보였다.
시간이 되면 유럽 여행을 꼭 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물론 이탈리아도 가고 싶은 여행지에 포함되었던
건 당연했는데, 이 책을 읽고 베니스에는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베니스의 물빛 풍경은 아름다웠다. 작가가 느꼈을
아름다운 베니스의 풍경에 그만 반해버렸다. 베니스가 이토록 아름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