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 향기 흐드러지면 - 연연불망
지연희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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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서 잊지 못하다'라는 말을 연연불망(戀緣不忘)이라고 한다. 사랑을 함에 있어 사랑하다 헤어지면 미워하는 마음이 더 클것 같지만 사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좋았던 추억만 기억난다. 어딘가를 갔던 때, 어떤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그림처럼 떠오른다. 서로 혹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도 좋았던 감정들이 생각나는데, 만약 한 사람을 죽음으로 이별했다면 그 그리움의 감정은 오죽할까. 죽어서도 잊지 못하고, 그리움이 사무치겠지.

 

연연불망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데, 시종일관 불안했다. 왜냐면 역사서에 있는 인물의 이야기를 말하기 때문이었다. 고려말 조선초의 인물, 태조 이성계의 두번째 부인 강씨의 소생 경순 공주와 공주의 남편 이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비록 공주나 왕비라도 여자의 이름에 대한 기록이 없는 관계로 소설에서 경순 공주는 유화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이제는 그의 이름 제로 불렀다.

 

역사서를 읽는 사람은 고려 말의 상황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성계에 의해 우왕이 폐위되고 어린 나이로 창왕이 즉위했으며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 때엔 이성계가 실질적인 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 조선의 왕이 되고, 야망이 컸던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그때 이방원에 의해 죽게된 인물이 이제다. 소설속에서 이제는 이방원과 두 살 차이가 나는 오랜 벗이었고, 이방원과 함께 포은 정몽주를 제거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성계 즉 중결은 권문세족인 유화의 어머니 강씨와 다시 혼인하고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낳았다. 강씨의 딸인 유화는 어렸을 때부터 외롭게 자랐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라버니 유덕(방원)을 유달리 좋아해 그의 마음에 들고자 따랐으나 유덕은 유화를 차갑게 내쳤다. 그런 유화를 안타깝게 지켜 본 제는 유화에게 친 오라버니처럼 챙겨주고 아꼈다. 어린 소녀였던 유화는 어느새 혼인할 나이가 된 소녀로 자라게 되었고, 제는 유화를, 유화는 제를 마음에 담았다.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은 오라버니 유덕보다 늘 다정하게 보아주는 제에게 마음을 주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다정하지만 조정의 일이 바쁜 아버지, 아버지를 보좌하는 어머니보다 다정한 이가 멀리서 보내오는 서신, 가끔씩 찾아와 마음을 달래주는 이였기에 어느새 그를 연모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랑에 있어 당돌하고 거침이 없었던 유화였기에 제는 그녀의 사랑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 속 인물 이야기는 대부분 결말이 정해져 있다. 실제 인물의 이야기는 더더욱 끝이 정해져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데 안타까웠다. 이들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서. 죽음이 이들을 갈라놓기 전에는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커플이랄까.

 

작가는 시종일관 담담하게 이들의 풍경을 그렸다. 사랑할 때는 애틋하였고, 역사 속 상황이 나올때면 거침이 없었다. 역사 속 인물이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따르는 아주 어린 소녀로, 엄마의 잔정이 그리운 아이로, 사랑에 목말라하는 어린 소녀가 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그 풍경 속에 있었다. 애틋하고 그리운 감정들이 살아있는 잔잔하게 읽히는 소설이었다. 연연불망 시리즈가 한 권이 나왔고, 또 한 권이 나올 예정이라는데 꽤 궁금하다. 그만큼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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