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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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시종일관 우울함을 내비쳤다. 아버지 마동수를 간호했던 아들이 외출해 여자를 만나러 갔던 사이에 홀로 죽은 아버지.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이 안도였던가. 아, 끝났구나, 끝났어... 라고 한숨을 내쉬었으니. 귀대 날짜 이틀을 남겨두었던 안차세는 군대 당직사관에게 전화를 해 휴가를 더 며칠 받고, 멀리 괌에 있는 형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렸다. '니가 고생이 많겠구나' 라고 말한 형은 돈만 부쳐주었을 뿐 찾아오지 않았다.

 

마동수가 죽던 해에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죽었다. 마동수가 죽던 해가 1972년이었다. 마동수의 혼백이 빠져나갔다 다시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던 그 찰나의 시간에 물을 건너고 있었고, 너머에는 죽음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머물렀던 시간 속 눈 덮인 만주의 길림 혹은 상해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소설의 시간은 마동수와 차남인 마차세의 시간과 교차된다. 마차세가 휴가 나오기 전 GOP에서의 시간, 휴가 나오기 전 받았던 박상희로부터의 편지. 그 편지를 들고 박상희를 만나러 갔던 시간까지 흐른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대의 이야기들이다. 우리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걸어왔던 이야기.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고 저 밑바닥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광복이 되는 시점과 이어지는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북에서 피난을 가던 사람들은 부부 혹은 아이와도 단절되는 삶을 살았다. 한국전쟁 속 피난민들의 생활이야 뻔하다. 피묻은 군복을 빨거나 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죽지 못해 살았다고 해도 맞겠다.

 

 

대학을 다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복학을 하지 못했던 오차세와 베트남 전쟁시 파병되었던 오장세가 살기 위해 낙오된 장병을 사살했던 기억으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괌 근처를 떠돌았던 형제의 이야기는 질곡진 삶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멈춰있는 듯한 사람들의 삶. 그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 하나 크게 내지 못했다.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라고 했다. 어쩌면 작가의, 작가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작가가 들었던 이야기, 사진 자료, 신문 자료를 참고해 쓰여진 이야기는 우리의 어두운 현실을 나타냈다.

 

저자 김훈이 말했던 것처럼 그의 소설에서는 영웅이 나오지 않았다. 비루한 삶을 살고 있는 어느 거리의 골목길 안쪽, 그들의 다 내보여주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삶은 이들의 모습처럼 비루한 것일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버티고, 버티다보니 살게 되었다. 가슴속에 숨겨둔 감정들, 지난 기억들은 차라리 말하지 않는게 더 좋은. 아픈 기억이 떠올라 돌아가지 못하는 고국과 가족들.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했던 마장세나 그러한 형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감정의 갈래들을 글로 쓰고 작가는 마음을 내려놓았을까. 책에서 느껴지는 허무함이 작가의 감정인양 느껴졌다. 책 속에서의 감정들은 독자에게까지 전해져 왔고, 우리는 이 감정을 견디어가며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깊고 어두운 감정들의 갈래 앞에서 지난 날의 삶을 생각해본다. 우리 아버지들의 삶을. 아버지의 아버지의 삶이 조각조각 머리속을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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