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꿈길
진양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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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산이나 거리엔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곳에서는 단풍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그럴 줄 뻔히 알면서도 단풍이 예쁘게 물든 곳이 궁금한 건 왜인지 모르겠다. 발갛게 물든 단풍잎 길을 걸으면서 계절의 상념에 빠진다. 내가 걷고 있는 길,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길. 좋은 사람과 함께 걷는 길은 행복의 길임에 틀림이 없다. 그 어떤 고난이 닥쳐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길이 꽃길처럼 여겨질지도 모르는 일. 고로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나는 시대물보다는 현대물을 더 좋아해, 라고 해보지만, 글 쓰는 이에 따라 그 소설이 좋은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아닌 소설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개인적 취향으로 시대물보다는 현대물 쪽이 더 맞다고 생각했는데, 이처럼 시대물이면서 판타지물인 소설이 재미있을 경우, 자꾸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현실의 인물이 아님에도 믿고 싶어하는 우리 마음속의 판타지를 건드리는 소설로 인해 책을 읽는 시간들이 즐거워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진양의 소설은 시대물이면서 판타지다. 우리의 상상속의 산물인 돗가비(도깨비)가 나오는 소설이다. 얼마전 배우 김수현과 전지현의 출연작인 「별에서 온 그대」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외모를 가지거나, 불로장생하며 신통묘술하기까지 한 인물이 나온다면 인간들은 혹할 수밖에 없다. 부러워하면서도 가지지 못했기에 두려워하는 식이다.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돗가비는 장난꾸러기처럼 여겨진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되,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인물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는 나 뿐만 아닌 듯, 작가는 돗가비 정지후를 장난을 위해서라면 뭐든 가리지 않는 인물로 묘사했다. 물론 인간들의 세상에서 오래 살다보니 인간들과 친해지고,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인간에게 마음 주는 일도 생기기 마련. 그가 신묘한 꽃물을 이용해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게 했으니 그의 마음 또한 어지럽혀지는 건 어쩔 수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 꽃물이란게 눈에 바르면 눈을 떴을때 처음 마주한 사람을 보면 가슴이 뛰고 온 몸이 뜨거워지게 하는 신비의 물이었다. 그 첫번째 장난이 청하관의 주인 백녀이고, 두번째가 목석공자 주명현이었다. 청하관의 주인 백녀는 사람으로 변한 정지후의 방맹이를 눈을 뜬후 처음으로 보았고, 주명현의 눈 앞에는 은복이 있었던 것이다. 주명현이 누구던가. 가문의 복수를 위해 태자를 죽여야하는 운명이었고, 은복은 태자 연의 호위무사로서 태자를 지켜야 했다. 돗가비 정지후의 짓궂은 장난이 초래할 일이 생겼으니, 상대를 잘못 택했던 것이다.

 

사람을 홀리는 꽃물이라고 해도, 과연 꽃물 때문에 처음 눈앞에 보이는 사람을 연모하게 될까? 그게 맞다고 해도 부정하고 싶지 않을지로 모른다. 아무리 복수때문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자기가 연모하는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꽃물 때문이라고 해도. 복수를 위해 14년을 기다려 온 남자와 14년전 아버지의 죽음후 황궁에 의탁해왔던 은복의 사랑이 위태위태했다.

 

근데 말이지, 온 고려에 목석 공자라고 소문난 주명현도 은복을 위해서는 저절로 마음이 풀어지더라. 은복이 물에 빠졌을 때도 구하려 차가운 물속에 뛰어들고, 불이 난 배에도 뛰어드는 게 주명현이었다. 사랑앞에서는 그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다.

 

오랜만의 쓴 소설이라고 했다. 작가의 전유물은 현대물도 아니고 시대물이며 판타지물인데, 읽힘에 전혀 문제가 없다. 더군다나 재미있기까지 하다. 물흐르듯 유려하게 흘러간다. 사랑에 빠져 복수 따위 잊어버리지도 않을 뿐더러, 사랑하는 사람때문에 호위무사로의 직분을 버리지도 않는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할 뿐이었다.

 

이제 주명현과 은복의 사랑이야기를 읽었으니, 돗가비 정지후가 궁금하잖나. 조선시대에서의 정지후가 마음 둘 이 하나 없을까. 장난을 치며 꽃물을 누군가의 눈에 바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꽃물을 바른 이가 맨처음 눈을 떴을때 정지후를 만나면 어떨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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