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서 온 아이
에오윈 아이비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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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아이를 묻은 노부부가 눈사람을 만든다. 다정한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않았던 부부였다. 아내는 눈을 둥글게 굴려 눈사람의 머리를, 남편은 아내보다 눈덩이를 크게 뭉쳐 눈사람의 몸을 만들었다. 눈사람을 만들어 자작나뭇가지를 가져와 팔을 만들었다가, 이내 여자 아이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래쪽은 치마를 입듯 옆으로 펼치고 눈과 입, 그리고 머리카락을 만들었다. 입술엔 크랜베리 즙을 짜 칠해주었더니 영락없이 소녀 눈사람이 되었다. 눈사람이 추울까봐 목도리를 매어주고 장갑이 달린 파란 끈을 눈 소녀의 등 뒤로 늘어 놓았다. 진짜 여자 아이 같았따. 그날밤 부부는 마치 여자아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눈 소녀를 바라보았고 오랜만에 행복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새벽 눈더미는 무너졌고 파란 장갑과 목도리는 사라졌다. 그리고 한 어린 소녀가 그들에게로 왔다.

 

매일이 고통스러운 메이블은 알래스카에서 외롭고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과거 자신의 아이의 흔적을 하나라도 남겨둘 걸. 이름도 지어주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알래스카의 겨울 눈과 함께 한 소녀가 찾아와 주었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그들 곁으로 왔다. 소녀는 자신들이 눈 소녀에게 걸어준 목도리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어린 소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빨간 여우와 함께 다니는 소녀는 그들 부부에게 크랜베리를 한 바구니 가져다 주기도 하고 죽은 토끼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메이블과 남편 잭은 그런 소녀를 자신의 딸처럼 여겼다. 소녀를 애타게 기다렸고, 소녀가 매일 와주기를 바랐다. 우울했던 메이블은 이제 소녀를 기다리느라 우울할 틈이 없었고, 창문 밖으로 소녀가 찾아 오는지 간절하게 기다렸다. 

 

소녀는 아주 작은 발자국을 가졌을 뿐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빨간 여우와 함께 숲 속에서 머무는 소녀. 소녀는 누구의 보살핌을 받는 것일까. 아이의 부모는 누구일까. 읍내 사람들에게 숲 속에 다른 가족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소녀는 누구의 아이일까. 자신들의 집에 머물렀으면 좋겠지만 소녀는 머물지 않았다. 가끔씩 먹을 것을 들고 찾아와 음식을 함께 먹었을 뿐, 눈이 쌓인 숲으로 가버렸다. 어쩌면 그 아이는 외로움과 절박감이 만들어낸 상상속의 아이 인지도 모른다. 메이블의 아버지가 사다 준 동화책에서처럼. 상상속의 눈 소녀인지도 모른다. 소녀는 눈이 오기 시작하는 때부터 완연한 봄이 오기까지만 머물렀고, 그들의 집에 찾아 왔다. 하지만 봄이 되면 아무리 기다려도 소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소녀가 없는 봄과 여름, 가을은 그들에게 또다시 우울의 시간이었다. 

 

 

에오윈 아이비는 러시아 설화 스네구로치카의 「눈 소녀」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노부부에게 간절한 아이. 작은 눈 소녀를 만들어 아이가 사람으로 변하면 자신의 딸로 삼았다는 동화처럼 메이블과 잭에게도 눈 소녀가 찾아 왔던 것이다. 겨울이면 나타났다가 봄이면 사라져 다시 눈이 오는 겨울이 되면 찾아오는 아이. 자신들에게 찾아온 작은 소녀때문에 집안에 생기가 돌고 부부 사이도 더 다정해졌다. 동화에서처럼 사랑한다는 핑계로 모닥풀을 피워 눈 소녀를 녹아버리게 될 것인지, 물로 변해 사라져버릴 것인지 불안했다.

 

기적을 믿기 위해 기적을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메이블은 반대로 생각했다. 믿으려면 우선 이해하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고, 그 작은 것이 물이 되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기 전에 최대한 오래 쥐고 있어야 한다고.  (283페이지)

 

봄이 되어 겨울이 될 때까지 페이나를 기다리며 메이블은 바느질을 했다. 소녀의 눈처럼 파란 색의 겨울 외투를 만들었고, 소녀가 좋아했던 눈의 결정체를 만들어 파란색 외투에 다는 일을 계속했다. 소녀를 기다리는 일이 즐거움이 되었다. 비록 동화에서처럼 소녀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르지만 메이블은 소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파이나는 겨울이 되어 찾아올때마다 훌쩍 자랐다.  

 

두려워 말아요, 메이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삶은 언제나 우리를 이리저리 내던지죠. 거기서 모험이 시작돼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을지는 알 수 없어요. 삶은 수수께끼이고, 그걸 부정하는 건 스스로를 속이는 짓이랍니다. 말해봐요. 당신은 언제 살아 있다고 느끼죠? (356페이지)

 

동화는 동화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하지만, 어디 사람 일이라는 게 그럴까. 눈 앞에서 사라질까봐 불안하고, 늘 자신의 곁에 머물렀으면 하는게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메이블이 그랬던 것처럼. 개렛이 그랬던 것처럼. 사랑하는 딸이자 소녀가 자신의 곁에서 영원히 머물렀으면 했다. 한 편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이래서 동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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