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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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강명 작가를 『한국이 싫어서』라는 작품으로 만났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나에게 말을 걸듯 건네는 듯한 문장들도 마음에 들었다. 장강명이라는 작가를 좀더 알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던차에 그의 신간을 접했다.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니.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할까.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이번 이야기에서 장강명은 고등학교때 학교 폭력으로 일진인 한 친구를 칼로 찔러 죽게 한 남자의 이야기를 했다. 그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고등학교때는 남자아이였고,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는 그저 남자로 불렸다. 그런 그 남자에게 여자가 있다. 출판사의 학습만화 편집자로 일하는 여자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남자의 응모작을 읽은 여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일이어서 그 작가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 글을 쓴 남자가 고등학교때의 그 아이였음을 알게 되었다.

 

  소설은 고등학교때의 일을 다룬 소설의 내용과 현재의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책을 읽으며 이게 사실일까 싶기도 하다. 남자는 교도소에서 9년을 있었고 정신병원에서도 몇년을 있었다. 직업을 가질수도 없었던 남자는 소설을 썼다. 소설을 쓸수 밖에 없었다. 과거의 일들, 사건이 일어났던 일들을 썼다. 그에게는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라는 한 아주머니가 있다. 자신이 죽인 아이의 엄마였다. 그 아주머니는 남자가 어딘가에 정착하려고 할때마다 나타나 그의 존재를 알린다. 아주머니는 그 남자때문에 자기 자식이 죽었다며 그의 주변에게 그가 살인자였음을 알리는 것. 그가 속하고자 하는 곳에 발을 못붙이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남자가 제대로 사는 걸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굴레에 빠진 남자. 그 남자의 곁을 맴도는 아주머니. 다행히 남자에게는 여자가 있었다. 이보람이라고 불리었던 여자. 보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세 명이나 되어 이름을 바꿨던 여자였다. 남자를 쫓아다니는 아주머니가 싫었던 여자.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남자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알고 있었다. 그믐달이 뜰 때 다가온 우주 알. 자신의 몸 속에 우주 알을 받아들이면 또다른 자아를 찾게 된다.

 

 

 

  소설에서는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물이 흐르는대로 지나가길 바랐을까. 한 개인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여러 개의 객체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주머니로만 불렸던 이들의 삶.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떤 관계의 의미가 그 끝에 달려 있는 거라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 끝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과정이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하다 하더라도? (87페이지)

 

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만 보는 사람이 더 유리할 때도 있어 여자가 말했다. 과거를 잊을 수 있으니까. 과거를 잊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 그러니까, 내가 널 지켜줄게. 과거로부터, 너를, 지켜줄게. (127~128페이지) 

 

  그믐달일 때, 달빛에 따라 바다가 움직이며 노래하는 패턴을 보았던 것처럼 바다는 패턴으로 가득차 있다고 했다. 남자가 쓴 「우주 알 이야기」때문에 서로 다시 만나게 된 여자는 남자를 지켜주고 싶어 했다. 남자를 쫓아다니는 아주머니로부터. 그의 과거로부터. 그가 과거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랐다. 그는 죗값을 치뤘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훨훨 날아가고 싶어. 나의 시간을 살고 싶어.

자유로워지고 싶어.  (162페이지)

 

  이토록 오랜시간동안 죗값을 치루듯 아주머니와 함께 하며 아주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남자의 삶이 불행해 보였다. 하지만 남자에게 여자가 있었기에 그나마 버틸수 있지 않았을까.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한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었기를, 좋은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바랐던 한 남자. 과거는 과거일뿐. 굴레처럼 끌고 갔던 한 남자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의 편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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