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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지음 / 달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하게 이병률 시인의 시詩보다는 산문을 먼저 만났다. 그의 산문을 두 권쯤 읽고나서 시집을 읽을
정도로 나에게 이병률 시인은 여행작가라고 해도 무방했다.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수록된 글은 마음을 다독이기에 충분했다. 그의
산문 『끌림』이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라는 두 작품 모두 즐겁게 읽었다. 나는 산문보다는 소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인데 작가의 산문이
나올때면 늘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 작가 중 한 명이 이병률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참 감성이 풍부한 시인같다. 시를 쓰는 시인이어서
일까. 그의 글은 시처럼 다정하고 쓸쓸하고 때로는 외로운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기도 한다. 홀로 여행을 하다보면 외로움과 쓸쓸함이 공존하듯
다가오기 마련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그런 감성이 좋게 느껴진다.
이번에 새로 나온 그의 여행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 또한 예약판매한다고 할 때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책이 도착하자 읽으려고 읽던 책을 정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의 사진집을 폈다. 내가 읽은 두 권의
산문집이 이국의 풍경을 담았다면 이번에 낸 작품은 국내의 풍경들을 담았다. 이국의 풍경들을 담은 사진에서 해맑은 아이들, 쓸쓸함이 내비치는
풍경이었다면 이번에는 쓸쓸해 보이지 않는, 왠지 다정함마저 묻어나오는 풍경들을 담아냈다. 사진에서 전해오는게 다정함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작가가
성숙을 했던지, 아님 마음의 짐을 많이 내려놨던지 편안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사진에서도 이렇게 느껴지는 게 있구나, 그런 만큼 그의 변화가
조금은 반가웠달까.
사진들은 한국의 사람들, 주로 남여 커플의 사진들이 보였다. 다정하게 함께 걷는 모습, 여자
혼자서 걷는 모습 등이 보인 것이다. 사진과 함께 작가의 글도 여유로워졌다. 사람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보다는 따스함이 묻어났다. 훈내가
피어오르듯 그가 말하는 사랑이 외로워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가 얼마를 더 살게 될 것인지를 셈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이고 우리가 관여할 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온 날들 중에, 좋은 날은 얼마나 많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감히 그 힘으로 살아도 될 그런 날들이, 그 힘으로 더 좋은 것들을 자꾸 부르는 그런 날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내가 나에게 도달하는 순간, 눈빛은 살아나게 하니까. 자신의 인생에 겉돌지 않겠다는 다짐은
눈빛을 살아나게 하니까, 생의 애착을 담은 눈빛은 명료한 빛과도 같아서 절망 속에서도 우리를 연명하게 한다. 눈에 낀 뭔가를 거둬내고 이제는
눈빛을 바꿔야겠는데, 눈빛은 유리창도 아니고 자동차 바퀴도 아니며 더더군다나 시들면 뽑아버리면 그만인 꽃도 아니니 이것참 큰일이다.
이병률의 산문집은 페이지가 없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부담없이 읽을수 있는 여행 산문집이라
그럴 것이다. 책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마음에 드는 사진을 펼치고 사진을 들여다보고 글을 읽으면 된다. 앞페이지든 뒷페이지이든 중간에 있는
페이지든 아무 페이지고 펼쳐도 사진과 함께 그의 진솔한 글들이 숨어있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요.
내가 사람으로 행복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얼만큼의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것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
여행길에서 만났던 사람의 개인사에도 무시하지 못하는 그의 마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래전
흑산도에서 만났던 소년에게 쏟았던 애정과 염려. 여행중에 만난 사과 과수원을 짓던 할아버지의 부음소식. 영화에 대한 깨달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던 여자를 향한 조급했던 마음들까지. 우리는 내 감정과 갖지 않다고 해서 마음을 저버리면 안된다는 것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행하며 만났던 사람들, 함께 여행했던 곳에서의 풍경들.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아도 그 풍경만으로도
좋은 게 여행이 아닐까도 싶다. 사랑도 어쩌면 여행과도 같은 게 아닐까. 누군가 왔다가 떠나가고 또 새로운 사람이 오기도 하는. 이별이라도 하게
되면 훗날 문득 생각나는 것처럼. 함께 했던 일들. 함께 했던 곳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가슴속에 영원히 그림처럼 남아있는 것. 사랑은
어쩌면 여행과도 같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