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사는 동네 1
공살루 M. 타바리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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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이 사는 동네라고 해서 한 동네에 사는 작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곳은 그저 '작가들이 각자 살아가는 동네'일뿐. 한 사람의 작가들의 생활, 사색,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작가가 직접 그림을 그렸나 싶을 만큼 작가의 생활, 작가가 그려준 그림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 책은 타바리스가 쓴 열 편의 연작을 두 권의 책으로 묶은 것으로써, 이 책에서는 모두 열 명의 작가들이 등장한다. 타바리스가 쓴 작가들을 살펴 볼까. 폴 발레리, 이탈로 칼비노, 로베르트 발저, 칼 크라우스, 앙드레 브르통, 베리톨트 브레히트, 로베르토 후아로스, 앙리 미쇼, 에마누엘 스베덴보리, T. S. 엘리엇 이렇게 모두 열 명의 작가이다. 

 

  열 명의 작가들을 만나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한 명의 작가를 말할 때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작가들의 특색에 맞추어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가 직접 쓴 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들의 이야기를 한참 읽다가 '아, 이 책이 타바리스의 소설이었지.' 하고 느끼는 식이었다. 이처럼 각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 그 작가만의 특색을 살려 직접 작가들의 동네를 둘러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이를테면 '발레리 씨의 논리', '칼비노 씨와 산책', 발저 씨와 숲', '크라우스 씨와 정치', '브르통 씨와 인터뷰' 이렇게 소제목을 붙였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각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며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작가의 이면들을 느낄수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산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면, 마치 목덜미에 차가운 손이라도 닿은 것처럼 칼비노 씨의 온몸으로 전율이 흘렀다. (1권, 111페이지, 「칼비노 씨와 산책」 중에서)

 

좋은 시에는 어떤 내력이나 예언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한 순간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에요. 그렇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도 결코 사라지지 않죠. (1권, 288페이지, 「브르통 씨와 인터뷰」중에서)

 

  칼 크라우스 편에서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에서 보면 '입만 열면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라는 부분이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정치인들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에 혼자서 실소했다. 발저 편에서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집을 지었으나 여기저기 다시 손봐야 하는 상황에서 새집에서의 첫날밤에 대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설렘을 담은 글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새집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실망도 큰 법. 제대로 손보지 않은 집은 말썽이 생기게 마련. 집을 고치러 온 사람들과 결국 새집에서의 첫날밤을 보내는 발저 씨였다.  

 

 

 

내 몸에는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어. 그런데 마음에도 눈이 달린 것같단 말이야. 그 마음의 눈이 얼굴에 달린 눈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게 분명해. (2권, 113페이지, 「앙리 씨와 백과사전」중에서 )

 

사실 어떤 시라도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려면 명료한 면과 애매한 측면이 올바른 비율로 섞여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적절한 비율에 이르지 못한 시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죠(.......). 사람들과 제대로 관계를 이루지 못하면 당연히 시는 자기를 쓴 사람의 손에만 머물러 있게 되겠죠. 그래서는 절대로 훌륭한 시가 될 수 없습니다. (2권, 268페이지, 「엘리엇 씨와 강연」중에서)

 

  브레히트 씨 편에서 '처자식 딸린 실업자'에 대한 슬픈 이야기가 있었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실업자가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한쪽 손과 반대편 손, 결국에는 머리까지 잘라야 했던 부분이었다. 일자리를 위해 머리까지 내놓아야하는 절박했던 사람에 대해 말한 글이었다. 또한 '과부' 에서는 남편의 시신의 길이가 점점 줄어들어 나중에는 구두와 머리만 남아 커다란 나무관을 구입하는데 써버린 돈 생각에 장례식날 나무관을 분잡고 오열을 터뜨렸던 과부라니. 이처럼 짧은 단상들을 모아놓은 브레히트 씨의 이야기에서 작가의 위트, 풍자, 유머를 만날 수 있었다. 우화같은 느낌이었달까.

 

  후아로스 씨는 서랍을 빈 것으로 채우고 싶어 했다. 부족한 공간에서 서랍이 비어있는 걸 발견한 작가의 아내가 빈 서랍을 채우려고 하자 서랍을 온통 비우고 싶어했던 작가의 마음을 엿볼수 있었다. 때로는 서랍도 사색의 한 공간임을 일깨워주었다. 비움의 미학이었다. 서랍을 비워놓은 채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즐기면서 사색을 즐기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압생트를 즐겨 마셨던 '앙리 미쇼'를 보며 고흐를 생각했다. 또한 스베덴보리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는데 기호학을 적용한 독특한 이론도 만날수 있었다. 기호로 표현한 사람의 내면과의 상관관계 혹은 사랑의 언어, 언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사랑도 하나의 언어가 된다고 말한 것등 재미있는 표현이었다. 닫혀진 삼각형에서 한쪽 끝이 열리고, 삼각형에 가해지는 힘때문에 점점 열려 직선이 되고 마는 삼각형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아주 간단한 논리로 삶의 철학을 엿보는 느낌이었다.

 

 한 작품씩 연작으로 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쓴 탓에 각자 따로 읽어도 재미있고, 같이 이어서 읽어도 재미있었다. 앞서 말했지만 타바로스라는 작가가 쓴 글이 아닌 열 명의 작가들이 쓴 작품을 모아놓은 느낌이었다. 새로운 형식의 소설. 타바로스라는 작가의 이름을 머릿속에 깊게 새겨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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