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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 비채 / 2015년 4월
평점 :
시를 읽기 즐겨하고 시를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만 나의 시읽기는 편협한 시읽기 였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 시집은 오래전 외국의 유명한 시인들이 쓴 시만 읽었고, 요즘에 읽는 시는 한국의 시들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 그러고보면 현대시들은
한국의 작가들의 시만 읽어온 것 같다. 이렇게 편협할 수가.
그런 의미에서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집은 내게 큰 의미가 생겼다. 내가 현재 살아있는 외국 작가의
시를 읽는다는 것. 이처럼 외국 시인의 시를 읽는다는게 굉장히 새로운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 시인의 시라니. 비채 아니었으면 읽을
생각도 하지 못했으리라.
표지에서부터 동화적인 느낌이 강했다. 오래전 아이들이 어렸을때에 하루에 수십번 읽어주었던 '사과가
쿵'이란 표지와 비슷하다. 누군가 한 입 베어먹은 사과가 초록색 바탕위에 놓여있는 동화적인 표지다. 표지에서처럼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도 동화적인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 시인들과는 좀더 다른 느낌이랄까. 가까운 나라이지만 감성은 조금씩 다른듯도 하다.
그러나 네로
곧 다시 여름이 온다
새롭고 한없이 넓은 여름이
온다
그리고
나는 역시 걸어갈
것이다
새 여름을 가을을 겨울을
맞이하고
봄을 맞이하고 더 새로운 여름을
기대하면서
모든 새것을 알기
위해
그리고
내 모든 질문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 (15페이지,
「네로 - 사랑받은 작은 개에서」 중에서)
죽은 개 네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시다. 네로가 머물렀던 여름이 아닌 다른 여름, 같은
여름인데도 늘 다르게 느껴졌던 네로가 없는 여름에 대한 시였다. 한 사람을 잃고 힘들어하듯 시인은 사랑하는 개 네로에 대해 이처럼 오래도록
슬픔을 잊지 못했나 보다.
대답할 수는 없다, 사과다. 물어볼 수는 없다, 사과다. 말할
수는 없다, 결국 사과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여전히 ........ (35페이지, 「사과에 대한 고집」중에서)
사과에 대한 본질, 그 어느 것도, 그 무엇도 아닌 사과에 대한 본질을 담은 시였다. 사과 속에
숨은 내용까지는 내가 알지 못하겠지만, 내가 느낀 것은 그저 사과에 대해 말하지 않았나 싶다.
고구마 먹고 푸
밤 먹고 푸
안 그런 척 헤
미안해요 파
목욕하는 뽀
남 몰래 스
당황해서 뿌
둘이 같이 뿡 (39페이지, 「방귀
노래」전문)
무심코 시를 읽는데 굉장히 재미있어서 나도 몰래 소리내어 읽고 있었다. 방귀를 끼는 사람, 방귀
소리에 대한 것들을 시어로 나타내니 저절로 즐거워졌다. 「방귀 노래」라는 시에서 그의 동심을 느낄수 있었다. 시인은 우리가 즐겨보았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우주소년 아톰》의 주제가를 작사한 작가라고도 하니 왠지 친숙하게도 느껴졌다.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시인이라고 한다.
여러 편의 시와 산문도 실려 있었는데, 산문 또한 '조금 더 긴 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엿보이는 글도 있었고, 시와 산문에 대한 생각들도 엿볼수 있었다. 직업란에 시인으로 할수 없었던 일들에 대한 글도
만날 수 있어, 시인은 하나의 직업이라고 하긴 그렇겠구나 하는것도 느낄수 있었다. 하이쿠 외에 일본인이 쓴 시를 처음 읽었는데 괜찮았다.
시는 노래도 그림도 논리도 시시함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리고 말이
되지 않는 '시'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그리고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 있어요. 시는 지구에 있는 숱한 언어들의 차이를 초월해서 우리 의식에
바람구멍을 뚫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부는 바람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바람일지도 몰라요. (128~129페이지, 산문
「바람 구멍을 뚫다」중에서)
* 이 시집의 특별한 점은 일본인이 번역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