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야 세트 - 전2권
진주 지음 / 신영미디어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사랑이란 거 참 묘하지. 그토록 죽이고 싶다고 한 사람을, 원수의 자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어느덧 사랑이었다는 걸 깨달아버리면 복수의 일념이라는 거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지. 죽이지 못해서 안달인 사람. 죽이기 위해 유혹한 사람을 사랑해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소설이란 것이 아니 그 마음이라는 것이 내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저 속절없이 빠져버리고 마는게 사랑이라는 거지.

 

  오래전부터 작가의 소설을 읽어왔다. 내가 읽었던 첫 작품에서부터 현재 이 작품까지. 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사랑안에 더한 이야기가 있는 것. 그것이 그녀의 작품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의 작품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에서 우리의 주인공 도도남 이현 씨와 남우와 함께 영미시를 음미하게 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아픈 과거, 일제시대,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로 있었던 아픈 역사와 함께 했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게 참 치욕스럽고 아픈 과거라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문학 작품에서는 그 시대에서도 사랑이 있었다는 것. 여전히 청년들은 숨쉬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많은 작품들 속에서 그 시대를 이야기했다.

 

  아픈 우리의 역사속에서 일어난 사랑이야기라서 일까. 이 작품은 시종일관 차분하다.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하듯, 고통을 꾹꾹 참고 아픔을 감추듯 그렇게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고통속에 침잠하듯 그렇게 작가는 우리를 일제시대로 이끌었다.

 

  우에노 아키,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명. 명은 이치카와 류타라는 남자를 유혹해야 했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었던 혈육, 오라비를 죽인 자와 그의 아들이므로. 이치카와 부자에 대한 암살 계획을 세웠고, 명은 그들을 암살로 이끌어야 하기에 시선을 류타에게로 향했다. 자신을 유혹하려는 여자의 어설픈 몸짓이 뻔히 보이지만, 어느 것에도 열정을 두지 않고 그저 삶을 살아가는 지루한 생에 호기심이 생겼다. 어설픈 그녀로 인해. 뻔히 보이는 몸짓. 붉게 달아오르는 볼언저리. 그녀에게서 한줄기 위안이라도 받고 싶었던 것일까.

 

이 하늘 아래 어디에도, 그는 갈 곳이 없다.

이 하늘 아래 어디로도, 그는 가고 싶지 않다.

적당히 일신의 안위를 차리며 살다 죽으면 그뿐. 다만 갈망한다. 이 지루한 생이, 부디 견디기 버거울 만큼 길지는 않기를.  (1권, 121페이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도 기다림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신이라서. 당신을 그리워하여서. 당신이 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여서.  (2권, 133페이지)

 

  현실적으로 보자면 일제시대에 한 사람은 일본인으로 한 사람은 조선인으로 만났다면, 그들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게 숨길수 밖에 없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감추고자 해도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면 드러나고 마는게 그들의 모습. 류타의 마음을 훔치고 어느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던 그의 마음이 자신에게로 돌아섰을때 그들 부자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했던 명. 그를 떠나 부산에서 숨어 지냈던 명은 동네 아낙처럼 허름한 차림으로 다녔다. 그녀가 사라진지 3년.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그녀가 미웠고, 찾아서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죽이겠다고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어느새 그렇게 되었다. 자신을 죽이려했던 그녀를 사랑하고 만 것이다.  

 

  암울한 시대였던 만큼 이들의 사랑은 시종일관 조용하면서 강렬했다. 말이 없으면서도 가슴속에는 서로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사실 이들이 나눈 대화는 그리 많지 않다. 이들을 바라보는 이가 독백을 하듯 이들의 상황, 마음속 깊은 곳의 널뛰는 감정.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드러나게 되고마는 눈짓. 바라보는 시선. 연애소설이면서도 오랜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깊은 의미를 두었다. 이들이 아플 수 밖에 없던 역사 때문인지 서리처럼 차게, 마음속은 심연속으로 침잠했다.

 

  어쩌면 작가는 명과 류타가 사랑을 나눌때에도 얼굴이 붉어지기보다는 시린 역사처럼 차가운 감성을 유지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나눈 사랑에도 아픔이 느껴졌으니까. 어쩔수 없는 현실, 아픈 역사와 함께 하는 그들의 상황을 말하고 싶었던 듯 했다. 이 글을 쓰며 작가도 많이 아파했으리라. 그들의 앞에 놓인 상황과 역사에 대한 아픔을 어떻게든 함께 느꼈을 것이므로.

 

  워낙에 작가의 글을 좋아했지만, 이 작품은 정말 좋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의 마음을 표현한 문장들이 무척 좋았다. 주인공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그녀의 문장을 읽는 즐거움이 컸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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