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 정호승 시선집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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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전 수선화 화분 한 개를 사와 발코니에 두었었다. 노랗게 핀 수선화는 집안에서 봄을 알리는 꽃이었다. 꽃이 지고 해가 지나기 전에 큰 화분에 옮겨 심었더니 그 다음해 수줍게 꽃망울을 터트려 '봄이 왔구나' 하고 느꼈다. 하얀색 꽃을 피우는 히아신스랑 같이 꽃을 피우고 난뒤 텃밭에 옮겨 심었다. 텃밭에 옮겨 심은지 2년. 올해 텃밭에 가보지 않았지만, 신랑 휴대폰에 있는 사진속에서 새싹이 올라온 걸 발견했다. 봄은 그렇구나.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달이라고 하더니 정말 새싹이 올라왔구나. 지금쯤 꽃을 피웠을 것이다. 기온이 낮은 곳이어서 어쩌면 아직 꽃이 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중에서야 노랗게 꽃을 피운 수선화를 사진으로 확인했다.

 

  봄엔 달달한 소설도 좋지만 제목처럼 이쁜 시도 좋구나. 정호승 시인의 시선집이 비채에서 출간되었다. 표지도 어쩌면 이렇게 예쁜지. 책을 받아들고 기분이 좋아, 어딘가 외출할 때마다 챙겨가지고 다녔다. 정호승 시인의 빛나는 시들과 박항률 화가의 예쁜 그림들이 모여 어여쁜 시선집이 되었다. 글 속의 시는 또 얼마나 좋은지. 사랑에 관한 시들을 읽으며 봄날, 꽃이 피어 화사하게 비치는 봄날에 마음을 적시었다. 시인의 시를 읽으며 지나간 사랑을, 오래전에 꿈꾸었던 사랑을 그렸다. 사랑에 관한 시를 노트에 적어 보고, 그 시를 가만히 외워보았다. 사랑이 마치 내 가까이 온 것처럼 마음이 차올랐다.  

 

 

 

  책의 첫머리에 시인의 「풍경 달다」라는 육필로 되어 있는 시가 있었다. 시인의 육필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화순 운주사의 와불을 기억했다. 한참을 올라가 바라본 와불. 몇 번을 다녔었지만, 누군가의 책에서 와불에 대한 글을 보고 일부러 찾아갔던 길. 사진에 다 담기도 버거웠던 커다란 와불상에 그만 눈을 감았었다. 천 개의 불상을 보고 내려왔던 길을 기억나게 하는 시였다. 그곳의 풍경소리마저 그리운 시였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모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87페이지,  「수선화에게」 전문)

 

 

 

 

 

그대 빈 들에

비 오는 사람

 

술도 집도 없이

배고픈 사람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 위하여

떠나가는 사람들의

옷 적시는 사람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더니

 

빈 집에 새벽부터

비 오는 사람    (41페이지, 「비 오는  사람」 전문)

 

  시집을 자주 읽지 못하지만 이처럼 시를 읽는 일은 사색에 잠기게 하는 일이기도 한다. 행간에 깃든 글들의 의미를 파악하느라, 행간의 느낌을 알기 위해 가만히 생각에 잠기게 하는게 시를 읽는 일이다.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을까. 어떠한 것을 나타내려는 것일까. 내가 느끼는 것과 시인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기도 하는 것. 시를 읽는 읽은 그런 것이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한 그루 리기다소나무 같았지요

푸른 리기다소나무 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던 바다의 눈부신 물결 같았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자마자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솔방울이 되길 원했지요

보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솔가지가 되어

가장 부드러운 솔잎이 되길 원했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 비로소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알았지요

사랑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지요

                                                        (145페이지, 「리기디소나무」 전문)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가 봄이 되면 일제히 꽃부터 피우는 봄꽃때문에 봄은 행복하다. 그저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것. 매화, 벚꽃, 복숭아꽃, 살구꽃, 산에서 피는 분홍색 진달래, 노란 개나리. 봄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계절. 봄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박항률 화가의 그림과 함께 있는 시선집  『수선화에게』를 읽는 일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봄을 더 느끼게 해주며, 사랑에 대한 감정으로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도, 삶의 고통도 한 편의 시에 녹아들 수 있는 것. 봄에도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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