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춘
시절을 함께 했던 음악은 뭐였을까, 생각해본다. 책을 많이 읽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불안한 마음을 음악으로 달래던 시절이기도 했다. 어느 누구
하나의 뮤지션을 몇년씩 좋아하기 보다는 아마 몇 개월씩 주구장창 그 뮤지션의 음악만 들었으니.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의 음악을 주구장창 들었을때, 당시 한방을 쓰던 여동생으로부터 '제발, 이제 그만 좀 듣자'고 할 정도로 오랜시간 듣기도 했었지. 또
누가 있었더라. 그때는 시디가 없었고 LP시대라 LP를 꽤 모았었다. 테이프로 녹음해 듣다가 뮤지션의 음반을 사기 위해 시내를 온통 돌아다니기도
했었던 때. 문득 이 글을 쓰는데 그 시절이 떠오른다. 아마도 박솔뫼 작가의 『도시의 시간』속에서 우나가 제니 준 스미스의 음악때문에 뉴욕을
그렸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이, 제니 준 스미스. 다. 그 다음이, 1954년에 태어남. 이고. 이 책은 제니 준 스미스로 시작해 재발매된 제니 준 스미스의 음악을
들으며 끝난다. 소설 속에 자리한 제니 준 스미스란 인물이 과연 존재하는 인물일까. 우나의 아버지가 들었던 곡을 우나가 들었고, 우나의 친구인
'내'가 들고 있었으니. 이 책은 우나의 이야기이고, 제니 준 스미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뭘 참 못했던 우나. 우나와 나, 배정, 우나의 동생
우미. 이들 넷은 늘 함께 움직이며, 우나의 집 근처를 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이들. 그나마 '나'와 배정은 학원을 다녔지만, 우나와
우미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우나의 방을
상상한다. '내'가 바라보았던 우나. 늘 집에서 준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좋아했고, 준이 살았다는 포틀랜드를 말했던 우나. 우나를 바라보는
'나', 우미와 배정을 바라보는 '나' 그들의 시간들은 늘 반복이었다. 제니 준 스미스 혹은 준의 이야기가 반복되어 나왔던 것처럼 이들의 시간도
반복되는 시간들이었다. 대구라는 도시에서. 우나가 살았던 그 골목을 거의 벗어나지 못했던 이들. 도시에서의 시간들은 늘 반복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불안한 청춘. 불안한 미래. 어느 누구의 관계에서도 확실함을 알수 없었던 젊음의 시간들. 이들의 시간은 모호함의 시간일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