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누아르 - 범죄의 기원 무블 시리즈 1
김탁환.이원태 지음 / 민음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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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범죄라 하면 법을 어기고 저지른 잘못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내가 직접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의 현상을 우리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혹은 TV나 인터넷 등을 이용해 보고 듣는다. 범죄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게 일반적인 우리에게 범죄를 다룬 영화나 책등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가령 범죄 영화를 보았을때,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때려죽여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지만, 만약 범죄자들이 주인공인 경우 우리는 범죄자의 편이 되어 다치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얼마전에 신문에서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있는 짧은 기사를 접했다. 배우 샤론 테이트를 죽인 희대의 살인마 찰슨 맨슨이 한 젊은 여자와 옥중 결혼식을 올린다는 기사였다. 사진을 보기만 해도 끔찍한 인물이었는데, 이런 인물에 열광하고 결혼까지 한다는 기사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간간히 일어나는 것도 같다. 범죄자가 희화화되어 옥중편지를 보내거나 한다는 기사를 접한 적도 있으니 뭐 할 말은 없다.

 

 

이런 것처럼 영화속에서나 소설속에서 범죄자가 주인공인 경우, 우리는 스스로 그 주인공이 되어 주인공의 이야기에 몰입될 수 밖에 없다. 사람의 목숨을 단칼에 베어도 이 사람은 내가 쫒는 주인공보다 더 나쁜 사람이야,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니 원. 김탁환 작가의 신작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책 속의 주인공 나용주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그러했다. 작가 김탁환은 연출가 이원태와 함께 영화같은 소설, 소설같은 영화로 이야기를 만드는 '무블' 시리즈를 기획했고,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는 그 첫 번째 소설이다.

 

 

'검을 잡기 전엔 무엇을 하셨는지요?' 라는 질문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현재는 조선 최고의 검계 중의 검계, 검계 중에서도 대두령이다. 사당패에서 탈을 쓰고 줄타기를 하던 자였다. 우연히 사당패의 꼭두쇠에게 검을 배우고, 그로 인해 마포 검계의 막내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마포 검계의 검계로, 무예별감 소속으로 있다가 호암군의 호위무사로, 다시 마포 검계의 대두령이 되는 이야기이다.

 

 

 

 

검을 잡을때는 탈을 쓰고 줄타기를 하듯 유연하고도 거침이 없이 했고, 호암군의 호위 무사로 있을때 호암군의 생명을 구했다는 이유로 호암군에게서 벗이라는 말을 듣는다. 곧 왕이 될 세자의 이복 형제인 호암군은 어느 누구도 믿을 자가 없었다. 세자 쪽에 있는 사람들은 호암군을 견제했고, 세자의 병세가 완연해지자 그의 목숨까지 노리는 자들이 많았다. 자신의 목숨을 살린 나용주를 호암군은 벗으로서 믿고싶었던 것이다.

 

 

검계의 눈과 귀는 강나루나 저자거리에만 깔린 것이 아니다. 조정이나 왕실 깊숙한 곳까지 낮말과 밤말을 줍는 이들이 숨어들었다. 매수당한 자들이 대부분이지만 검계의 일원으로 신분을 바꾸고 잠입한 자도 있었다. (73페이지)

 

 

위 73페이지에 있는 글을 보자니 영화배우 현빈이 주연했던 영화 「역린」이 떠올랐다. 이산을 죽이기 위해 반대파들이 이산 주변 곳곳에 숨겨놓았고, 결국엔 이산을 죽이려고까지 했잖은가. 세자가 갑자기 병사하자 세자로 옹립되었고, 왕이 갑자기 죽자 새로운 왕이 된 호암군의 모습은 어쩌면 영조 이금과도 비슷했다. 노론의 힘으로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금과 비슷하게 호암군 또한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로 을론에게는 지지로, 갑론의 견제를 받으며 왕이 된 모습이 그러했다.

 

책의 제목답게 조선시대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범죄는 있어왔을 것이고, 저자는 범죄의 기원을 조선시대부터 잡았다. 칼을 쥔 자들이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는데도 버젓이 밀주를 하고, 술을 파는 이득을 챙기기 위해 다른 검계와도 싸웠다. 또한 권력있는 자들과 손을 잡아 더 큰 이득을 위해 나쁜 일을 도모하기도 했다. 요즘과 다를 바 없다.

 

 

김탁환 작가의 글 답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영화적인 스토리에 재미있게 읽혔다. 스토리가 흥미롭고,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쉼없이, 아주 즐겁게 읽었다. 결국 선과 악은 종이 한 장의 차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었달까. 무언가 좀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선이라 자부하는데 악을 지지하는 이중적인 모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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