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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맨과 우렁각시
송여희 지음 / 청어람 / 2014년 12월
평점 :
나도 모르게 송여희 작가의 『십년지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풋풋함에서 우러나오는 로맨스를 기대했었다. 어렸을 때의 친구가 커서 자기들도 모르게 사랑하고 있었음을 나중에야 느끼는 그
풋풋한 로맨스를 즐기는 터다. 어렸을 때 만난 사람들은 서로에게 첫사랑일테고, 오랜시간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 책의 제목만
보고서는 셔터맨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약국 셔터를 닫는 사람? 아니면 한약방 셔터를 열고 내리는 사람? 이런 식으로 상상을 했다.
우렁각시라 하면 아무도 모르게 각시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건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내심 궁금했다.
일단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의 첫
느낌은 『은행나무에 걸린 장자』를 떠올리게 했다. 아흔아홉 칸의 고택, 종갓집의 손자가 주인공이니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아 내심 두근거렸다. 『은행나무에 걸린 장자』에서 남자 주인공 임위는 얼마나 진중했던가. 한문학자이니 더욱 그러했겠지만.
『셔터맨과 우렁각시』에서의 남자 주인공 김휴는 임위와 비교할 바가 못된다. 어릴때부터 장난끼 많은 건 둘째치고라도 여자주인공 향목을 못살게
굴었다. 외국으로 유학을 갔으면 공부나 열심히 하고 돌아오지,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채 돌아왔다. 그것도 스무 살도 안된 나이에
돌아왔다. 어릴때부터 백향목을
위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외국에서 돌아와서도 껄렁거리는 동네 친구들과 허송세월을 보내는 주인공 되시겠다.
무슨 남자 주인공이 이래? 라는
심정이었다. 멋진 구석도 없는 것 같고, 배움도 짧고, 하고 다니는 품새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고. 한약방을 하신 할아버지 김습의 손자라는 점
하나가 그나마 좀 봐준달까. 여자주인공 향목은 김습 할아버지가 탐낼만한 손자며느리였으며 향목이 가진 재능이 휴에 비해 아까웠다. 향목을 휴에게
주기 싫은 심정이었다.
이 책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로맨틱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 소년과 소녀의 성장담이라고 해야 더 맞겠다. 누군가 좋아하게 되면 느끼는 설렘, 두근거림들이
약했다. 대신 이 소설은 조그맣고 막힌 시골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다루었다. 물론 향목이 태어날때부터 김습 어르신의 베품을 받았다고 하지만,
자기 능력이 출중한데도 너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어렸을적의 빚을 갚겠다고 제사때마다 일해주는 사람들은 드물것이다. 그런 모습이
답답했지만, 오랜시간동안 조그만 시골에서 살아왔다면 이런 일들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현재는 이런 일들이 드물 것이기에 향목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향목이처럼 공부도 잘하고 한의대에 합격한 재원이
집에서 아이나 기른다고 생각하니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로맨스 소설에 비해 책이 좀
심심하다고 느꼈다. 내가 소년 소녀의 성장담이라고 한 이유와 같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이 작가의 할머니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조금 각색하여 소설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약간은 답답하고 소신껏 말하고 행동하지 못했던
향목이 우리보다 더 옛날 사람인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린 시절을 훌쩍 뛰어넘어 이십
대 중반쯤 다시 만났으면 이 소설의 인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더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김습 어르신의 욕심은
알겠지만, 휴와 향목이 결혼을 너무 빨리 해버렸단 말이지. 김습 할아버지는 욕심도 많으시지. 어디 휴를 향목이에게 대셨을까. 물론 철없던 휴가
점점 마음을 다잡고 오로지 향목만을 바라보았던 것은 마음에 들었다. 어린 신랑 신부의 행동들에 아흔아홉 칸 집이 들썩들썩했겠다. 로맨스 면에서
약간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