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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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장을 가본적이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맥주를 잘 마시지도 못할때 맥주 공장 견학 가본적이 있었다. 기계식으로 맥주병이 하나씩 정리되어서 나오는데 무척 신기했었고, 맥주잔으로 한잔 반이 나오는 맥주 한 병씩을 나누어 주었었다. 그땐 맥주 마시지도 못했는데, 그 맥주를 어떻게 했을까. 같이 간 나이 든 사람에게 나눠주었을까 싶다. 지금 맥주공장 견학간다면 엄청 맛나게 마실텐데. 오히려 몇개 더 달라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후배 남편이 맥주 회사를 다닌다. 우리끼리 모임을 하고 있다가도 그집 신랑이 오면 혹시 다른 맥주일경우 당황해서 숨길 정도이다. 집에서 마시는 맥주도 후배의 신랑때문에 맥주 회사를 바꿨을 정도다. 그래서인가, 가끔씩 후배의 집에 갈때면 맥주 한 박스 씩을 챙겨준다. 맥주 맛을 잘 알지 못하지만 마셔보지 못한 맥주 맛을 보고 싶은 호기심이 왕성하여 후배 몰래 세계 맥주를 사서 마시기도 하지만, 우리집 맥주는 후배 남편이 다시는 회사의 맥주이다. 김중혁 작가의 공장 산책기중 내가 좋아하는 맥주 공장 산책기를 보고 갑자기 맥주 생각이 나는 건 나 뿐일까?

 

 

맥주가 없었다면 힘든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어색한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소주가 서로를 위로하는 술이라면, 맥주는 서로를 격려하는 술일 것이다. 나는 맥주가 가진 시원한 힘을 믿는 편이다. (222페이지)

 

 

김중혁 작가의 글을 참 좋아하는데, 그의 에세이는 더 좋아한다. 그의 사인은 또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에 사인본에 눈을 밝히기도 한다. 김중혁 작가가 한겨레 신문에 일년동안 연재한 공장 산책기를 책으로 엮어 나온 책이 『메이드 인 공장』이다. 작가 답게 그는 제지 공장부터 다녀왔고, 콘돔이며 브래지어, 맥주에서 라면 공장까지 총 14개의 공장과 자신이 책을 만드는 과정인 김중혁 글 공장 산책기까지 들어 있어, 작가가 바라본 각각의 공장에 대한 생각과 공장에 얽힌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아래 사진에서처럼 그의 일러스트까지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수많은 종이를 써야 하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직업 때문에, 혹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호기심 때문에, 그는 제지 공장을 먼저 다녀왔다. 나도 종이 책이 좋기 때문에, 종이에 들어 있는 글을 사랑하기 때문에 작가가 종이에 대한 생각을 담은 제지 공장 산책기를 읽는데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읽게 되었다.

 

 

  종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덜 현명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덜 낭만적인 사람이었을 것이고, 덜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덜 사랑하는 사람이었을것이다. (27페이지) 이 부분을 읽는데 나도 종이를 사랑하는 낭만적인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보다 종이를 사랑하는 사람이고싶고, 종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종이 뿐만 아니다. 내가 이십대 때나 더 어렸을때 성에 대해 얘기하는 걸 쉬쉬 했었다. 작가도 책에서 말했지만 어디 콘돔을 제대로 살수나 있었나 말이다. 작가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전의 영화(요즘 새로 리메이크 된 작품이기도 하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박중훈이 약국에 콘돔을 사러갔다가 '콘'자만 열심히 발음하다가 못사고 나왔던 시절이기도 했다. 콘돔 공장에 방문해 콘돔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 부분을 보면서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요즘엔 과일 냄새나는 콘돔도 있고, 크기에 다른 여러 모양의 콘돔도 있다고 하니, 사실 콘돔 공장을 구경해 보면 굉장히 재미있을거란 생각도 했다.

 

 

 

아마 여자들에게는 콘돔 공장이 얼굴 붉힐 일이고, 남자들에게는 브래지어 공장이 얼굴이 빨개질 일이 아닐까. 작가가 브래지어 공장을 방문했을때, 브래지어를 만지작거리며 설명하는 남자 사장님을 보며 얼굴이 빨개진 작가를 만나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었다. 후크를 끌러보기만 했었던 남자 작가의 브래지어에 대한 호기심, 말할 때마다 괄호 열고 '흐으음' 거리는 추임새도 즐거웠다.

 

 

여러 공장을 방문했지만, 자신의 글을 만드는 김중혁 글 공장 산책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위 오른쪽 사진에서처럼 글감 분류실, 숙성 공장, 소설 공장, 수필 공장, 그림 공장 등 다섯 개의 작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작업장의 크기는 작지만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 수필 공장이며, 생산량과 수익성이 높은 곳도 수필 공장이라고 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의 인건비가 비싸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로 공장이 이전해 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건비 때문에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사람들은 점점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기계가 대신하는 공장에서도 사람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물건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도 알겠다. 김중혁 작가의 공장 산책기를 읽으며, 우리가 잊고 있었던 물건들(예를 들면, 엘피 레코드 등)에 대한 애착도 다시 갖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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