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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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때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내가 생각했던 『차남들의 세계사』가 그랬다. 내가 생각했던 『차남들의 세계사』는 1980년 광주의 한복판, 군사정권에 의해 수배당한 한 남자의 이야기, 그 와중에 장남이 아닌 차남의 역할을 하는 이야기인가 했다. 책을 읽으면서 차남으로서 느끼는 주인공의 감정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책 속의 주인공은 원주에 사는 외동이었고, 그나마 어머니에 의해 고아원에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란 남자였다.

 

 

이 남자, 나복만 씨는 어떻게 되는 걸까.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했지만, 글을 쓰지도, 글을 읽지도 못하는, 신입 택시기사가 어떤 잘못을 했기에 수배까지 당하게 되었던 걸까. 못내 궁금했다. 작가 이기호는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예를들면 '이것을 들어보아라' 에서 '자, 이것을 허리를 뒤로 활처럼 꺾어 스트레칭 한 번 한 다음, 계속 들어보아라', 또는 '자, 이것을 각자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며 들어 보아라'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우리는 작가가 이끄는 대로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들을수 밖에 없다.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었을까, 싶지만 그때 1980년대의 군사정권은 충분히 이랬을수도 있었겠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지내왔구나 싶다. 30년 전의 역사가 내게는 과거에 있었던 일로 여겨지는게 사실이었지만, 만약 나복만 씨처럼 이런 일을 당한다면, 이 일은 평생 가슴속에 품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가슴속에서 지우지 못할 일인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수사하다가 대통령이 된 전두환 대통령을 가리켜 작가는 누아르의 주인공이라 칭했다. 누아르의 주인공에게 잘보이기 위해 없는 사건도 각색을 해 만드는 과잉 충성을 했던 그들 속에, 피해자 나복만이 있었다. 거리에서 욕이라도 한마디 했다가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 일쑤였고,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간 사람은 제대로 나오지 못했던 그 시절, 그 모든 것들 속에 누아르의 주인공에게 과잉충성을 해 빛을 보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어떤 한 남자를 태우고 택시 운전을 하던중 차가 말을 듣지 않아 전진을 못했고, 자진 신고하고자 갔던 경찰서에서 글을 읽지 못하는 나복만은 하필이면 정보과로 갔던 것이다. 그곳엔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의 한복판에 있는 곳이었다. 당시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은 문부식, 김은숙, 유승렬 등 부산 지역 대학생 여섯 명이 플라스틱 물통 네 개와 휘발유 30리터, 나무젓가락 두 개 등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건물을 잿더미로 만든 사건이었다. 방화범 중 네 명의 학생이 체포되었고, 방화범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문부식, 김은숙이 도피 중 원주 카톨릭 문화관에서 담당 신부인 최기식 신부의 권유로 자수를 했다. 주범들이 검거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건들이 해결되는듯 싶지만, 그들을 숨겨주었던 신부, 카톨릭 문화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하고 그들 스스로 죄를 지었다고 없는 죄를 말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런 것들이 통했던 시대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팠고, 고통스러웠다. 진실은 따로 있음에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고, 소설처럼 쓰여진 각본에 의해 죄를 짓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작가는 어느 한 부분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며 들어 보아라'고 말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백 번쯤 읽은 안기부 정과장이 각색한 나복만의 새로운 삶을 말하는 부분에서이다. 갖은 고문에 무조건 자신의 삶을 외울수 밖에 없었던, 또한 그 극본을 자필로 쓸수 밖에 없었던 과정들이 나오는데, 우리는 죄 없는 자를 안타깝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내면은 어떤가. 내면의 목소리에서는 한직에 밀려난 정과장이 제발 그만해줬으면 하고 바랬다. 어쩔수 없는 현실이지만 꼭 그렇게 해야 했을까. 나중에 느낄 죄책감이나 자괴감을 어떻게 견디려고 그럴까. 이처럼 아픈 이야기임에도 소설을 그다지 가슴아파하지 않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 클 것이다. 그는 독자들의 마음을 조율했다. 죽일것처럼 미운 사람에게도, 한 박자 쉬어가듯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아라는 문장을 써 나갔기 때문이다. 그 문장들 때문에 욱 하지 않고 작가가 들려주는 말에 귀 기울였다.

 

『차남들의 세계사』를 읽는 일은 작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일이었다. 작가는 글을 읽지 말고 귀 기울여 들으라고 했다. 그의 말에 귀 기울여 듣고, 안타까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들이 지금은 편해졌을까?

 

그러니가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것도 읽을 수도 없는 세계, 눈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 버리는 세계, 그것을 조장하는 세계(전문 용어로 '눈먼 상태'되시겠다.) 그것은 어쩌면 '차남들의 세계'라고 말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17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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