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호랑이가 온다
피오나 맥팔레인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나이가 들어 노부부가 서로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건 커다란 행복인것 같다. 공원을 걸을때나 길을 걸을때 노부부가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걸 보면 참 좋아보이는 것이 그런 이유이기도 할것이다. 칠순이 넘은 시부모님은 시골에서 생활하시는데, 그나마 부부가 같이 계시니까 며느리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안심할 수가 있다. 하지만 만약 혼자 살고 계신다면, 건강은 괜찮으신지 자주 전화도 드려야 하고, 자주 찾아 뵈어야 할 일이다.

 

 

처음 『밤, 호랑이가 온다』라는 제목을 보았을때, 추리소설이 아닌가 했다. 칠십이 넘은 노인이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호랑이가 거실을 걷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꿈이려니 했지만 주인공이 느끼는 것은 꿈이 아니었고, 실제 거실에 호랑이가 있었던 느낌이 들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호랑이가 나타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타났을때, 호랑이가 더 자주 보인다는 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뭔가를 노리고 온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었다. 호기롭게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을 읽어갈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편해져 왔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생길수도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루스는 칠십이 넘은 할머니로 바닷가의 별장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자식들은 아들 둘이 있지만,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어느 날 밤, 잠을 자다가 호랑이 소리를 듣고, 아들 제프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다가 깬듯한 목소리였고,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루스의 말에 꿈을 꾼게 아니냐고 말을 건넸다. 제프리의 행동은 어쩌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들이기도 했다. 밤에 잠을 자다가 전화벨소리가 울리면 나이 드신 부모님들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깨게 된다. 어딘가라도 아프시나 하고 귀기울여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지만, 호랑이가 나왔다는 어머니의 말에 아마도 꿈을 꾼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게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프리다라 불리우는 덩치가 큰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정부에서 보낸 요양사라고 하며 매일 오전 두 시간씩 루스 곁에 머물며 루스의 삶을 뒤흔들어 놓는다. 루스가 느끼는 프리다는 다정했고, 집안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깔끔하게 청소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외로웠던 루스는 프리다의 다정함이 마음에 들었고, 매일 그녀를 방문해 곁에 머무는 것이 좋았다. 프리다가 루스의 집에 왔어도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정글의 냄새와 킁킁거림, 정글의 열기는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점점 기억들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토록 깔끔했던 루스는 어느날엔가 머리가 가렵다는 것을 느끼고 몇 주일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에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던 프리다가 사실은 둘째 아들 필립의 방에서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프리다에게 자신의 집에서 나가라고 하지만, 프리다는 루스가 그녀의 집에서 머물도록 허락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 없고, 프리다도 믿을수 없어졌다. 하지만 어느샌가 자신의 모든 기억들이 뒤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프리다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나이 먹은 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벗이라고 한다. 외로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말벗 만큼 그들이 덜 외롭게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시골에서 혼자 사는 노인분들에게 사기를 쳐도 그분들이 자꾸 사기를 당하는 것은 알고도 그러는 것이라고 할 정도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마음을 훔쳐 물건을 강매하고가도, 외롭기 때문에, 물건을 팔기 위해 애교를 부리고 웃음 짓고, 노래를 불러주는 게 싫지 않다고 한다.

 

 

이처럼 루스도 외로움을 견디기에 프리다가 싫지 않아 그녀를 곁에 머물게 했을 것이다. 루스에게 일어난 일들이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어쩌면 어딘가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외로운 노인 곁에 머물면서, 노인을 도와주는 척 하며 마음을 훔쳐 또는 다른 것을 훔쳐 달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멀리서 안부 전화만 했던 자식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전화로 나누는 말 속에서 별일 없으려니 하는 건 자식들의 생각뿐일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한동안 멍해 있었다.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고, 어쩌면 이러한 결말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했지만, 오래도록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아직 젊은 작가인데도, 모호해지는 기억들 속의 파편들,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이에 대한 노년의 마음을 정교하게 표현해 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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