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빛나거나 미치거나 - 전2권
현고운 지음 / 테라스북(Terrace Boo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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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를 읽는 일은 역시 즐겁다. 내 사랑이 아니어도, 내가 못다한 사랑을 다시 하는 듯한 느낌을 갖기 때문에 한번씩 로맨스 소설을 읽어줘야 한다. 이런저런 일로 딱딱해진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일도 로맨스를 읽는 일이다. 로맨스 소설을 한 번씩 읽고 나야지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사랑 밖에 난 몰라가 되는 식이다.

 

현고운이 돌아왔다!

현고운 작가를 알게 된 것이 오래전 일요 아침 드라마로 방송되었던 『1%의 모든 것』이었다. 로맨스 소설을 드라마화한 것인데, 일요일 아침을 설레고 즐겁게 만들어 주어서 일요일 아침마다 기다렸던 드라마였다. 드라마가 재미있어 소설도 읽었고, 그 후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어왔다. 작가의 작품은 다 좋았다. 다만 몇 년전에 출간된 『아내를 구하는 4가지 방법』만은 예외였다. 현고운 작가 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여서 실망을 했었다. 하지만 고려시대의 역사물로 돌아온 현고운 작가의 신작을 읽으면서, 역시, 실력이 어디가지 않았구나, 다시 현고운 소설로 돌아왔구나 싶었다. 여전히 설레고, 여전히 미소지으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로 쓴 이야기는 역사물로 고려의 네 번째 황제인 광종(왕소)의 이야기이다. 광종에게 부인이 두 명 있으며, 두 명의 부인과의 혼인 모두 족내혼(대목황후는 이복누이, 경화궁부인은 조카)이었다. 광종과 대목황후에게는 혼인후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후에 태어난 아들(경종, 제5대 황제)이 있었다. 작가는 이 점에 착안하여 광종에게 좋아하는 여인이 따로 있었을 것이라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조선의 왕들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알지만, 고려의 왕들은 왕건 외에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신랑은 고려 왕들도 순서대로 다 외우고 있더라만). 잘 기억하지 못하는 고려의 왕들 중 광종, 즉 왕소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물론 역사적 사실외에 그의 개인적인 감정, 행보 등을 아는 일은 소설적 장치로써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 낸것과도 같았다. 책의 시작은 태조 왕건이 재위하고 있던 시절, 첫째 황자 왕무(혜정)에게 다음 황위를 물려주려 하는 와중에, 제국의 가장 위대한 황제가 될수도 있었을 왕소가 장자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며 왕소에게 조의선인의 수장으로서의 신물을 내린다. 조의선인을 움직일수 있는 수장의 신물인 흑패를 왕소에게 준건 다음 황제를 잘 보필해달라는 황제의 뜻이었다.

 

위나라때부터 수도였던 개봉의 한 상단. 중원에서도 이름난 상단의 양딸인 신율은 오라비 양규달이 왕야의 양딸을 건드려 오라비를 살려주는 조건으로 왕야의 부하인 곽장군과 혼인을 해야할 처지가 되었다. 신율은 혼인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려의 사내와 혼인을 먼저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에 신율을 보살펴 온 백묘 할멈은 저잣거리에서 신율 아가씨의 신랑감을 물색한다. 사내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납치라도 해야할 판이다. 상단에서 일하는 장백산과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신랑감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사내를 발견하고는 그를 납치하기에 이른다. 수면향으로 그를 납치해 와 그에게 혼례복을 입히고 잠에서 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숙부 왕식렴이 보낸 자가 아니란 것에 안도하고, 어린 소녀가 가짜 혼인을 해달라며 거래를 하려 한다. 가짜 혼인만 해주면 그가 원하는거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가족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어린 소녀가 자신처럼 외로운 사람처럼 보여 혼인을 하게 되었다. 혼례식이 끝난후 그는 신율에게 혼인은 계약 종료되었으니 자신을 잊으라 말하며 그녀의 입술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떠나는 그에게 신율은 행운의 부적이라며 작은 비단 주머니를 건넨다.

 

개경 정주의 한 저잣거리. 돈깨나 있어보이는 집안의 도령 행색으로 그곳을 지나던 신율에게 젖먹이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여인을 사라며 가격을 부른다. 노비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사람을 살고 파는 것을 싫어하지만 딱해보며 흥정을 하고 있을때, 역시 정주의 저잣거리를 자신의 흥정을 바라보는 한 사내를 발견했다. 개봉에서 그녀가 납치한 사내가 그곳에 있었다. 드디어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찾았다. 그들의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소설속에서 남장여자 나오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데, 이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독자들도 그런것 같다. 남장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커피 프린스 1호점』도 그렇고,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았나. 이 책에서는 다른 이들은 신율이 저잣거리를 다닐때는 남장하고 다닌다는 걸 다 알고 있지만, 왕소만 모르는 것이다. 왕소는 여자애처럼 볼이 발갛고, 하얗고 말간 얼굴을 한 신율이 당연히 남자라 여기고 신율과 닿았을때 가슴이 쿵쿵 뛰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왕소는 신율에게 의형제를 맺자며 형님이라 부르라 한다. 왕소가 오래전에 장난처럼 가짜 결혼식에 응해줬던 그 소녀라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말이다.

 

 

역사속 인물을 로맨스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에도 과하지 않았다. 마치 물 흐르듯 정쟁의 한복판에 서기도 하고, 혈육간의 황위를 위한 싸움에서도 고려를 원하는게 진정 어떤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련의 로맨스 소설에서의 결말은 해피앤딩이다. 그것도 결혼하고 아이낳고 잘 살았습니다, 같은. 물론 이 소설도 해피앤딩이지만, 소설속에서 신율은 그가 황자이므로, 황실의 사람이므로, 황실속에 속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저 그를 사랑하는 한 여인으로 남고 싶어 했다. 어쩌면 이럴수도 있었으므로

 

초기작의 느낌으로 다시 돌아온 현고운의 소설을 읽으며 고려의 제4대 황제인 광종과 그의 숨겨진 여인 신율에 대한 러브스토리를 읽으며 며칠동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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