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에 읽은 이승우 작가의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고 작가의 문장, 이야기를 풀어가는 글쓰기에 반했다. 그의 작품을 다 찾아 읽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식물들의 사생활』에서 하나는 소나무와 때죽나무의 사랑이길 바랬던 형의 사랑이 있었고, 우리나라의 토양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야자나무가 살아갈 수 있는 엄마의 숨겨진 사랑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많은 문장들이 가슴속에 들어와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면서 읽었던 책이라 이번에 읽게 된 『지상의 노래』또한 상당히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다시 한번 가슴 벅차오름을 느낄수 있을까에 대한 설렘이 있었다.

 

 

작품에 대한 설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승우 작가의 『지상의 노래』는 욕망과 죄의식을 근원적으로 파헤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요 무대는 천산 수도원이며, 천산 수도원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욕망 혹은 죄의식을 말하는 이야기였다. 천산 수도원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볼까.

 

 

그 맨처음엔 강상훈이 있다. 투병중에 죽은 형이 남긴 원고를 보고 미완성인 천산 수도원의 벽서를 완결해 「당신이 가보지 않은, 가 볼 만한」이라는 유고집을 펴냈다. 책은 잘 팔리지 않았지만, 강상훈은 형이 아파서 투병할때 외국의 직장에서 일부러 돌아오지 않았던 것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라도 유고집의 마지막 문장을 완결했다. 또 하나는 강영훈의 책을 읽고 천산 수도원의 벽서를 송아지 피지에 기록된 「켈스의 책」과 비견할만 하다는 글을 쓴 젊은 교회사 강사 차동연의 이야기가 있다. 또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장은 오래전에 죄의식처럼 남아있던 이야기를 차동연에게 들려주고, 장의 이야기 속의 한정효는 충성을 다해 장군을 도왔지만 그로부터 버림을 받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으면서 죽은 아내에 대한 죄의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후의 이야기가 있다.

 

 

후는 오래전 자신이 라면만 얻어먹지 않았어도 연희 누나가 사라지지는 않았을 거라며 죄의식 때문에 박중위에게 칼을 휘두르고 천산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새벽마다 벽을 보며 기도하고 성경을 필사하는 생활을 했다. 그리고 군인들로 인해 헤브론 성이라 부르는 천산 수도원에서 나오게 되었고, 그는 연희 누나를 찾는 순례자의 길을 걷는다. 연희 누나를 찾아내어 어떻게든 죄의식을 덜고 싶었고, 용서를 바랐다. 후의 이야기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가 연희 누나에 대한 속죄하는 과정이었고, 그가 죽을만큼 아파 길에서 머리를 짓찧을때 만난 남자로 인해 그는 자신이 머물러야 할 곳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뭐라고 할까. 세상의 조건과 질서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 같은 그의 얼굴에서 나는 '저 너머'를 보았어.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 얼굴은 하얗고 눈빛은 고요하고 걸음걸이는 반듯했어. 내 속으로 서서히 번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내가 그에게 기대한 것이 그런 모습이었다는 걸 깨닫게 했어. 다른 모습이었으면 실망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다 들었지. (211페이지)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들이 한 행동들은 장은 차동연에게 죽기전 비밀을 말함으로써 자신이 지은 죄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연희를 찾으려 길을 헤매고 다녔던 후와 역시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순례길이라고 했던 한정효의 행동도 의미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성경이 있었다. 성경 구절을 읽고, 기도하고, 성경을 필사하며 이들은 자신의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 모든 죄의식과 욕망들이 결국에는 천산 수도원으로 돌아와 이들을 품었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부정되었지만, 그전에 세상은 그들에 의해 부정되었다. 세상은 그들을 버렸지만, 그전에 그들은 세상을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버려지는 것이 그들이 세상을 버리는 방법이었다. 세상은 더 이상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간섭하지 않았다. (346페이지)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모든 말이 다 들어있다. 역사적 사실을 뒤로 하고 그들의 권력이 천산 공동체의 카타콤으로 만들었던 이야기를. 권력이 이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그들의 강한 믿음과 염원이 그곳에 함께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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