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고민상담소 - 독자 상담으로 본 근대의 성과 사랑
전봉관 지음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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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막론하고 청춘들의 성과 사랑은 고민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나고 보면 별일이 아니었는데도 그 시기를 지나는 청춘들은 성과 사랑이 그들의 모든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20대도 그러지 않았는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모든 것이었고, 그와 육체관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도 큰 화두였다. 나의 20대를 기억해봐도 그렇다. 여성은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킬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할 것인가에 아주 많은 고민을 했으니까.

 

그때의 우리 사회는 그랬다. 남자는 순결을 지키지 않으면서 순결을 잃은 여자들을 기피하고 결혼에까지 이르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자유연애를 외친 1930년대의 청춘들도 우리들의 20대와 다르지 않았다. 조혼 풍속 때문에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구여성인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고 보기 싫어 이혼을 원하는 남성들이 많았다. 구태의연하게 집안에서 살림만 하는 구여성보다는 자유연애를 표방한 신여성들이 매력있게 보여지기는 했을 것이다. 부모에 의해 강제로 사랑하지도 않은 여자와 결혼했지만, 나중에야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을 만났으니 이혼을 원하는 남성들도 많았고, 이혼하겠다며 신여성과의 동거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내가 있는 남자인줄 알면서도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첩이라는 용어보다는 '제2부인' 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나올 정도였다.

 

 

조혼이 야기된 외도, 축첩, 이혼, 가출, 살인, 자살 등의 숱한 사회적 병폐들을 고려하면, 부모라고 조혼이 자녀를 불행에 빠뜨릴 야만적인 폐습임을 몰랐을 리 없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불행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린 자녀를 혼인시키지 못해 조바심을 쳤던 셈이다. 유교가 지배 이념이었던 전근대 한국 사회에서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은 단순한 풍속을 넘은 일종의 종교적 가치였다. 조혼은 자손을 얻는 일에는 열성적이지만 그렇게 얻은 소중한 자손의 행복에는 무관심했던 전근대 한국 사회의 역설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인습이었다. (23페이지)

 

 

조혼의 폐해때문에 구여성과 신여성 모두 피해자가 되는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조혼의 폐습은 몽골 지배기 고려에서 시작된 공녀 진상과 조선 시대 왕실의 간택 때 반포된 금혼령에 있다고 한다. 조혼의 폐습으로 인해 고민하는 청춘들이 많았던지 신문에서 '어찌하리까'라는 신문 지면을 통해 고민하고 그에 때한 해답을 제시하는 기사를 내보이며 청춘들의 고민을 통해 사회, 문화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글이다. 부제도 '독자 상담으로 본 근대의 성과 사랑' 이라고 했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1930년대의 고민과 그에 따른 해답을 제시한 것을 보며 지금으로부터 80여년전인 청춘들의 고민이나 현재의 청춘들의 고민이나 시대적 배경만 조금 다를뿐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젊은 청춘들의 성과 사랑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방송이라는 이유때문에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하고, 청춘들의 가장 고민사항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직접 목소리로 듣고 그에 따른 답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성에 대한 이야기는 숨기는 거라고 알고 있었던 기성세대들에게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소재였다. 하지만 청춘들은 열광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딸아이에게 왜 보느냐는 말까지 했었지만 몇번 보았더니 이런 이야기야말로 터놓고 해야하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청춘들에게 그 프로그램이 인기 있었던 이유를 알수 있었다.

 

 

어쩌면 『경성 고민상담소』는 현대판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과 맥락을 같이 한다. '어찌하리까'라는 신문 지상에서 어느 한 사건에 대해 토론까지 벌였던 것을 보면 알수 있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하다보니 그 의견들에 대해 뜨거운 감성을 쏟아부었다.

 

상담 내용 중에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거나 성병에 걸린채 결혼한 여성이 존재했다는 것도 새로웠다. 유교사상이 아직 남아있었을 그 시기라고 생각했지만 봉건적 정조 관념이 서서히 해체되고 있었던 듯 하다. 상담 내용을 보면 기혼 여성이 직장에서 만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거나 미혼 여성이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며 어찌해야 되느냐는 상담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서로 사랑해 임신까지 하게 되었는데 남자가 연락이 끊어졌다는 등 아이는 어찌해야 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되느냐는 고민까지 아주 다양했다.

 

미혼 여성이 미혼 남성을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나를 그리 믿지 못하느냐'면서 만날때마다 그녀의 정조를 요구하는 남자때문에 고민하는 이에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냐면서 절대 허락하지 말라는 대답을 제시한 것을 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육체적 관계를 맺기 위해 여자들을 꾀는 남자들의 수법은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다는 저자의 글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지나온 20대의 성과 사랑, 현재 20대의 성과 사랑, 80년 전의 청춘들과 성과 사랑은 조금씩 방법과 시대적 배경만 다를 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느 시대나 성과 사랑은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을 안겨주는 화두인것 같았다. 우리가 역사를 보며 현재의 정치를 이야기하듯, 그 시대의 성과 사랑을 보며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시간이었다. 다가올 아이들의 성과 사랑도 훨씬 더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기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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