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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 조선 화가들의 붓끝에서 되살아난 삶
이일수 지음 / 시공아트 / 2014년 4월
평점 :
미술관련 서적을
좋아해 자주 찾아 읽고는 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이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마음의 위로를 얻으려 그림을 보고 그에 관련된 책을 읽고는 한다.
그림에서 우리는 한 시대의 삶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생활상, 그림이 그린 이의 생각, 그림이 나타내는 뜻을 알게 된다.
그림이 나타내는 것을 알게 되면 그림에 대한 사랑이 더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옛 그림에서 인생을 만나는 책을 읽었다. 저자 이일수의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라는 제목으로 '조선 화가들의 붓끝에서 되살아난 삶' 이란 부제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 책에서 조선
화가들이 그림을 보며 조선 사람의 인생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조선 화가들이 그린
그림은 내가 다른 책에서도 거의 만난 책이다. 저자마다 그림을 소개하는 성격이 다른데, 저자 이일수는 책에서 조선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루었다. 그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우리가 알기 쉽도록 했고, 그림에 대한 애정,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역사적 사실과 풍속 등을
알 수 있었다.
저자가 처음 소개하는 그림은 신윤복이 그린 것이라고 알려진 「기다림」이란 그림이다.
그냥 무심코 볼 수 있는 그림이지만, 저자는 여자가 들고 있는 모자가 스님들이 쓰고 다녔던 모자고, 아마도 그녀는 불가에 귀의한 스님을
좋아했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녀의 기다림은 꽤 길어 보인다. 누군가를 기다려 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알 것이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무작정 기다린 다는 것, 그 기다림은 길고 애타는 일이다. 그림에서도 애타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엿보여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만든다.
신윤복, 「기다림」
저자는 18명의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조선의 생활, 평민들의 삶을 엿볼수 있다.
그림이 아닌 글씨의 사진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같다. 신윤복의 「기다림」을
설명하며 덧붙여 아래 <원이 엄마의 편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원이 엄마의 편지>는 경북 안동시에서 이름모를 무덤을
이장하던 중에 유물이 발견되어 알려진 것인데, 죽은 남편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편지지가 모자라 빈 여백을 채워 넣은 글씨로
편지를 읽고 있으면 울컥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조선 시대의 남편과 아내, 사랑하기 보다는 다른 이유때문에 맺어진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토록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렸다.
「원이 엄마의 편지」
책에서는 김홍도의 여러 「풍속화첩」들을 소개하며 행상이나 씨름하는 장면, 자리짜기 등을 담은
그림들을 소개해 조선의 사회를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했다. 양반이지만 형편이 어려워 어쩔수 없이 자리짜기를 하는 남편과 능숙한 손길로 물레를
돌리는 아내의 얼굴도 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스스로 눈을 찌른 화가 최북의 그림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아래의 그림은 금강산 여행중에 그 아름다움에 취해 못에 뛰어들어 죽을 뻔한 기행을 일삼은
최북의 「금강산 표훈사도」다. 가보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금강산의 빼어난 풍광을 그렸던 최북의 아래 그림과 함께 한쪽 눈을 찔러 눈을 감은
작자미상의 최북을 그린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최북, 「금강산 표훈사도」
아래의 그림들은 신사임당과 윤덕희의 그림들이다.
신사임당의 뜻그림을 볼 수 있는데, 예로부터 백로와 연밥을 함께 그리는 것은 소과와 대과에
연달아 급제하라는 뜻을 담아 그렸다. 가족의 과거 급제라는 염원을 담아 그린 그림인 것이다. 예나지금이나 부모의 마음은 이처럼 어쩔수가 없는 것
같다.
또한 저자는 조선 화가의 그림 중에서 책 읽는 그림을 발견할 수 없는데, 아버지 윤두서의
그림을 이어받은 윤덕희의 「책 읽는 여인」이라는 귀한 그림을 소개했다. 다른 책에서도 이 그림을 접했지만 서양화의 책 읽는 그림과는 다른
멋스러움이 있다. 책은 거의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 왔는데 이 책에서 보니 조선의 여성들이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가
쓴 글에서도 '여자들이 집안일과 길쌈을 게을리하며 소설을 돈 주고 빌려다 읽는다. 여기에 빠지고 혹하기를
마지않아 한 집안의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까지 있다.' (283페이지) 라고도 했다. 그만큼 소설 읽기를 좋아하니 당시의
지식인들이었던 이덕무와 채제공 까지도 여자들의 책 읽는 것을 염려하였던 듯 하다.
좌, 신사임당, 「노연도」, 윤덕희,「책 읽는 여인」
책
읽는 여인의 모습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만큼이나 싱그럽다. 책 한 권을 통해 다른 세계로 젖어 드는 눈빛과 그 세계를 점점 넓혀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마치 내가 책을 읽는 것처럼 감동적이다. 특히 조선 시대이기에 더욱 그렇다. (282페이지)
내게 익숙한 그림들이 많았지만, 그 그림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여러번 읽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그림과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을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 것이다. 주로 전시 기획일을 많이 하는 저자 이일수의 다양한 그림과 설명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조선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들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