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7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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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승우 작가를 알게 된 건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였다.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진행자들의 입담에 꽤 즐겁게 듣곤 하는데, 어느날엔 이승우 작가의 『지상의 노래』를 소개했다. 두 진행자가 말하길, 서로에게 너무도 좋은 작품이었음을 말해 꼭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다른 책들에 밀려 읽지 못하고 있다가, 한국문학을 좀더 읽고 싶어 이승우 작가의 『식물들의 사생활』이란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분명 소설인데 식물관련 서적이 아닐까 싶은 제목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 장부터 식물들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며 읽게 되었는데, 자동차를 끌고 여자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한 남자가 나오는 이야기였다. 첫 문장에서부터 마음에 와 닿았다. 첫문장, 첫 장을 읽어보면 작품의 느낌이 전해져 오는데,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군더더기 없는 유려한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왔다.

 

『식물들의 사생활』속에서는 사랑의 두 가지 모습이 보인다.

먼저 대학생이었던 형과 형의 여자친구 순미, 그리고 '나' 기현이 있다. 삼수생인 기현은 형의 여자친구를 보고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순미가 집으로 찾아와 형의 방에서 이야기를 하고, 형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을 엿들었다. 형이 외출이라도 하는 날에는 순미의 냄새가 배어있는 형의 방으로 몰래 들어가 무언가를 훔치고, 형을 위해 불러주었던 노래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훔치기도 했다. 사랑에 관한한 거칠것이 없었던 기현은 순미네 집으로 찾아가 하루종일 기다려 순미를 당황스럽게도 했다. 그리고 형의 전부였던 카메라를 훔쳐 가출을 해버렸다.

 

 

또다른 사랑을 볼까. 여태 몰랐던 엄마의 사랑이 있다. 어머니가 스물한 살때 사랑했던 남자였다. 권력을 가진 아내를 둔 남편이었으나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남자였다. 둘만의 낙원이었던 남천에서 며칠을 머물렀고 원치 않는 이유로 헤어졌다. 그런 어머니를 사랑한 사람이 아버지였다. 집안에서 어느 누구와도 말도 잘 건네지 않은 아버지가 그런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식물들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식물들은 감각을 뛰어넘는 놀라운 지각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중략) 식물도 감정을 가진 생명이다. 고통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고 행복도 느낀다. 사람이 거짓말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식물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거짓 사랑은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식물과 교감하기 위해서도 진실해야 한다. (137페이지)

 

이들의 사랑을 보자면 한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고, 한 남자가 그여자의 뒷모습마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형 우현을 사랑하는 순미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기현이 그랬고, 삼십 년이 지나도록 한 남자를 마음에 품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봐야 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그랬다. 이들은 모두 사랑을 했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사랑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나무가 되고 싶어요. 내 품에 안겨서 그 말을 되풀이했다. 나무가 되고 싶어요 ...... 나는 말해줬다. 너는 이미 나무다. 나무를 꿈꾸는 사람은 나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고, 나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이미 나무인 것이다. (251페이지)

 

 

나무가 되고 싶었다는 형은 숲 속의 소나무와 소나무를 친친 감고있는 때죽나무의 부드러운 가지를 자신과 순미의 모습처럼 보았고 스스로 자신이 그 소나무가 되길 바랐다. 어머니와 어머니의 그 사람의 나무로 비춰졌던 야자나무는 또 어떤가. 우리나라의 토양에서 절대 자랄수 없을 야자나무가 버젓이 살아 큰 가지를 만들어 이국적인 정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밤마다 바다를 향해 가지를 뻗어 사랑하는 이를 어루만졌던 나무의 이야기는 어쩌면 신화처럼 보인다. 이 소설에서 나무는 사람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스스로 나무가 되고자 했던, 나무로 승화된 사랑이었다. 식물과 교감하며 식물과 사랑의 의미 또는 식물로 인해 사랑의 완성, 화합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아, 책이 정말 좋구나!

이승우 작가의 글에 반해버렸다. 작가의 책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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