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 모두는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이는 스스로 슬픔으로 침잠하며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지내다 어느 순간 불쑥 갇힌 공간에서 나오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이들과 마음속 이야기를 건네며 풀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여행을 하며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장소에서 머물면서 슬픔을 극복하기도 한다.
나는 어떤가. 아마 위의 과정을 지나오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만든 방에 스스로 갇혀 침잠하다가 어느 순간에 문을 열고 나와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지 않을까. 여행이라도 떠나면서 슬픔의 시간에서 빠져나오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익숙한 사람보다는 나의 사정을 전혀 모르느 낯선 이와 지내는 시간이 우리에게 치유의 시간이 될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 그 대상이 사랑하는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낯선 이라도 괜찮다.
이 자매들을 보라.
이들 또한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싱싱한 회를 급히 배달하는 트럭에 치여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들은 아이가 없는 이모님 댁에서 몇 년을 지내온다. 이들을 양녀로 삼아 의사와 결혼시키려는 이모님 부부의 말에 이모 집을 나오게 되고 연락을 끊고 살았던 할아버지 집에 기거를 하게 되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들은 또 둘이 되었다.
말이 없었던 할아버지였지만, 몇 년을 함께 보냈던 할아버지와 시간이 굉장히 소중했음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집에서 나가지 않고 이곳에서 생활을 해보기로 한 자매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도토리 자매'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열어 낯모르는 이들의 이메일에 마음을 담아 답장을 보낸다. 부모는 언니에게는 '돈코'라는 이름을, 동생에게는 '구리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이들의 이름 돈구리는 도토리라는 뜻을 가졌다.
한 편지를 받고 동생인 구리코는 아주 오래전 고등학교때 조금 좋아했던 남자애를 추억한다. 특별하게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아이도 자신을 좋아했고, 자신도 조금은 좋아했던 아이였다. 오래전의 일들이, 혹은 있었음직한 일들을 꿈을 꾸게 되고 오랜만에 구리코는 그 아이, 무기가 좋아했던 바다에 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 남자 친구랑 한국으로 여행을 갔던 언니 돈코의 편지를 받는다.
한국의 도시 서울에서 삼계탕과 간장게장을 먹고, 친절한 사람들과 활기차고 열정에 차 있는 한국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언젠가 들은 말에 우울할때 재래시장을 걸어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오래전에 퇴근길에 시장을 거쳐 가는 길목이 있으면 일부러 시장길을 거쳐 걸어가곤 했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물건을 파는 사람들, 그 활기찬 시장속 소음에 내가 살아있구나, 이렇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구나 싶었던 적이 있었다.
언니 돈코는 서울의 그런 활기찬 사람들의 발걸음에, 맛있는 음식들을 구리코에게 보이고 싶었고, 생명력이 넘치는 서울의 발걸음에 함께 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부모와 할아버지의 죽음에 오랜시간동안 침잠했던 동생에게도 치유의 시간을 주고 싶었으리라. 또한 낯선 이들에게 마음을 담아 답장을 써주는 일들이 마음을 다스리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낯선 이들의 편지에 위로의 답글을 쓰는 일들이 치유의 한 방법임을 그들은 알게 되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은 치유를 다루는 글들이 많다.
『도토리 자매』또한 글을 매개로, 여행을 떠난 언니의 글들이 치유를 위한 글이었음을 나타내는 글이었다.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글들이었다. 치유에 있어 요시모토 바나나만큼 빛나는 글도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