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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처네 (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12월
평점 :
처음 『누비처네』라는 책을 보았을때 그게 어떤 말인지 가늠하지 못해 제목이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비라는 말은 알겠는데, 누비처네라니 그 뜻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처네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어린 아이를 업을때 두르는 얇은 이불이라고도 한다. 아아, 그래서 표지도 아이 업은 여성을 그렸구나 싶었다. 그리고 「누비처네」부분을 읽다보니, 이 글의 제목으로 썼던 점, 지난 몇십 년의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저자의 수필이란 것이 마음에 들어왔다.
우리는 현재 에세이 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전엔 수필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지금도 수필이라고 하면 에세이와 조금 다른 느낌의 기분을 갖게 한다. 뭔가 더 원론적인 글이 숨어 있을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또한 작가의 생각이 들어있되 조금은 꾸며써도 될듯한 느낌도 갖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타계한 수필가 목성균의 수필을 읽었다.
전집으로 나온 꽤 두꺼운 책의 수필인데, 나는 이상하게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읽었다. 나와 시대가 너무 다른 분의 글이라 그렇게 느껴졌을수도 있고, 저자의 글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저자 목성균의 글의 화두는 어머니 인것 같다.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아이들, 때로는 나무들의 모든 것이 이 책의 화두이기도 했다. 지니간 시간은 우리를 추억으로 이끈다.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새록새록 떠오를때, 과거를 몰랐던 우리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누비처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아이를 낳은지 몇개월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에게 편지를 써 동봉해온 소액환때문에 누비처네를 사와 밤길에 아내와 함께 아이를 업고 처가를 다녀왔던 일을 떠올린 것이다. 아내는 그 시간들을 품어두고 싶은 것인지 40여년이 지난 누비처네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부부에게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우리'라는 하나된 마음으로 오래도록 이어져 온 것이 '누비처네'처럼 소중한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소중한 기억들을 한 편 한 편 꺼내든 느낌의 수필이었다.
저자의 글은 편안하게 읽힌다. 지나간 시절을 담담하게 글로 표현해 놓은 걸 읽다보면,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 장모님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것이다. 「장모님과 끽연을」편을 읽어봐도 그렇다. 신경성 만성 위염 때문에 병원에 다녀온 후 금연하라는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금연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던 저자는 아내 몰래 담배를 피우다 그만 들켜버렸다. 그것을 보았는지 같이 사는 장모님은 사위를 옥상으로 불러 담배 한 개비를 권하시는 것이다. 건강에 좋지 않으니 반만 피우라며. 그렇게 매일 옥상에서 장모님을 만나 담배 반 개비씩 피우던 일을 떠올려 쓴 글이다. 그곳에서도 장모님과 함께 한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저자의 마음이 보였다.
이 글을 읽으며 우리는 얼굴에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다.
그의 글에서 따스함이 전해져 온 탓이다. 임업직의 공무원으로 일하며 만난 아이의 글을 쓸때도 그러했다. 박지산 국유림내의 방화선 보수작업을 마치고 '육백마지기' 라고 부르는 고원을 내려올때 청노루 새끼같은 소년이 앞길을 막아 못가게 하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작업 때문에 며칠을 함께 지내던 아이인데, '내 년 봄에 꼭 올게'라고 다짐을 했지만 다른 지방으로 발령나는 바람에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마음을 「약속」에서 표현하고 있었다. 아직도 호각을 불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것만 같아서 그길을 못내 머뭇거렸던 속내를 말했던 것이다.
이외에도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단원 김홍도가 연풍 현감을 지냈던 곳, 저자의 고향 연풍군을 묘사한 장면도 그렇다. 그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자신이 쓴 수필의 근원은 그처럼 돈독했던 풍경에 있다고도 말했다. 또한 팔도를 아내와 함께 유람하며 쓴 글들도 그 시절만이 가지는 풍경과 아내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 알수 있었다. 또한 부모를 바라보았던 것과는 반대로 손자에 대한 내리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도 압권이었다. 할아버지가 좋다고 그렇게 따라다니던 손자가 어느새 학교에 입학을 하고, 할아버지 보다는 친구가 더 좋다는 손자를 보며 서운한 마음을 가졌던 일들도 말하고 있었다.
당신의 수필은 사실을 적되, 어느 상황을 표현하는 글에서, 예를 들면 아버지와 피난을 가야했던 강을 건너는 장면에서 약간의 문학적인 조치를 표현하고 싶어 세한도에서 늙은 소나무를 표현하듯 늙은 버드나무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 글을 읽으며 생전 표현하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을 본것 같아 괜시리 눈시울을 붉혔었다.
이처럼 수필을 새롭게 읽는 느낌이었다.
오래전에 교과서에 실렸던 피천득의 수필 「인연」을 읽는 그런 느낌이었달까. 잔잔하면서도 울림을 주는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