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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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처럼 아픈 일이다.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데, 상대방은 다른 이를 바라보고 있다면 더욱 아픈 일이다. 하물며 마주 보는 사랑이어도 상대방의 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해 아픈 법인데, 좋아하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이란, 더구나 마주보지 못하는 사이면 더욱 그렇다.

 

은희경 작가의 작품을 몇 작품 읽었지만, 위 제목의 책은 제목이 너무 아름다웠다. 동화처럼, 사랑에 대한 떨림이 전해져 와 못내 읽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라는 제목이라니. 이 제목을 보고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아름다운 이 제목은 사이토 마리코의 「눈보라」에서 그대로 따온 제목이다. 이 제목의 책을 짧게 줄여 '눈송이'라고 불러보면, 눈송이가 나에게 다가와 사르르 녹는 느낌이 든다. 눈송이의 무늬를 본적 있는지? 어렸을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내릴때 그저 함박눈이 내린다고 생각만 했었지, 눈의 모양을 제대로 본적이 없었다. 눈은 어떻게 생겼나 하고 하나의 눈송이를 받아 모양을 살펴봤을때, 그 아름다움에 놀랬었다. 이어 받아본 눈송이도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었고, 같은 모양의 눈송이는 몇개 없을 정도였다. 꽃처럼 생긴 눈송이, 손에 내려놓았을때 사르르 녹아버리는 눈송이처럼, 여섯 편의 단편은 모두 아련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들을 담았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속에는 두 여고생이 있다. 이들은 성당에서 처음 만났고, 남쪽 바닷가가 있는 곳에 살고 있었다. 이둘의 이름은 안나와 루시아. 아주 어릴때 만나, 고등학교까지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십대의 마지막, 입시를 앞두고 마지막 총정리를 위해 서울입시학원을 다녀야 하는 그들. 안나가 서울에 도착해서 느낀 것은 '춥다'라는 것이었다. 나 또한 겨울에 서울가면 느끼는 건 늘 춥다라는 것이었다. 바람이 뼛속까지 들이친다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서울의 바람은 시렸다. 멋진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하는 그들. 같은 학원에 다니는 남학생중 요한이라는 남자아이를 안나는 마음에 담지만, 요한은 결국엔 루시아의 남자친구가 되었다. 사랑은 이처럼, 서울의 겨울바람처럼 시린것이다.  

 

 

서울 외곽의 신도시 K시에 살고 있는 엄마를 말하는 뱃속의 아이가 있다. 「프랑스어 초급과정」이라는 단편이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이곳 K시로 남편과 왔다. 바쁜 남편을 뒤로하고 그녀만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뜨개질을 열번쯤 풀었다가 다시 하기도 하고, 보랏빛 바이올렛 화분을 여러개 키우고 있다. 바이올렛 잎을 면도칼로 잘라 물에 담가 놓으면 실처럼 뿌리가 내리는 걸 보며 그곳 K시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스페인 도둑」이나 「T 아일랜드 여름 잔디밭 」은 모두 우리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뿌리내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스페인 도둑」에서는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남자애와 반 아이들이 그 아이 집으로 몰려가 월드컵 축구 경기를 관람했고, 그 아이가 있었던 곳에서 괜시리 그때 보았던, 승부차기에서 우리나라를 승리로 이끌게 했던 스페인 선수의 이름을 기억하려 한다. 만날 여행계획을 짜고 있었던 그녀에게 스페인 여행에의 계획을 다시 세운다. 그곳에서 엽서를 보내겠다 생각한 것이다.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와「금성녀 」라는 작품도 있는데, 이들 모두는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소년 소녀 시절에 있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한때 어떻게 살았고,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은희경의 여섯 편의 단편들은 모든 작품이 연작 단편소설처럼 엮여져 있다.

마치 씨실과 날실이 엮인 것처럼 하나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다른 작품 속의 엄마 였다가, 먼 친척이었다가 하는 식으로 단단하에 엮여 있는 것이다. 전제 작품을 다 읽고 다시 앞으로 가 다시 읽다보면 그 관계를 더 정확하게 알수 있다. 사실 장편소설을 재미있어 하는 이유가 몇 명의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많고,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을 숨겨놓고 하나씩 알려주는 쾌감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짧은 글에서 글의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찾는 것보다, 쉽게 설명해주는 글을 더 선호하는 수가 있다.

 

최근에 단편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졌는데, 이 또한 단편만이 가진 매력을 발견하고 있어서이다.

단편도 등장 인물의 에피소드가 다음 편에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면 굉장히 반가움을 느끼는 것 때문인지, 은희경 작가의 단편들속에서 만나는 다른 작품의 인물들이 반갑게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보면 어두움과 슬픔을 간직한 소설 같지만, 내가 받아들인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랑의 슬픔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아련함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지나간 사랑, 소년소녀시절, 더 젊었던 시절의 그 감정들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하나의 눈송이가 여러 갈래의 눈송이로 갈라져 다른 이야기들을 전해준 것이다. 여섯 편의 단편들은 모두 여섯 개의 눈송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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