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 신경숙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9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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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동안 TV가 없다가 이사를 하면서 다시 TV를 들여놓고 나는 하나의 습관을 들였다. 평소 밤 11시경이면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터라 TV앞에 앉아 있지 않는다. 그래서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한 프로그램이 두 가지 정도 있는데, '힐링 캠프'와  '라디오 스타'이다. 이 두 프로그램을 보며 실없이 웃기도 하곤 해서 시간이 날때면 다시보기로 해서 보는게 하나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사실 본방 할때부터 보려했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못보고, 신경숙 작가편을 다시 보았다. 작가가 조곤조곤하게 하는 말 중에서 그의 어린시절들의 이야기, 가족이야기, 배우고 싶었던 열망, 작가가 되어보라는 한 선생님의 말씀들을 했다.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작가에 대한 애정이 더 생기는 계기가 되었던 듯도 하다.

 

그러곤 이 책을 만났다.

책이 나왔던 해에 읽지 못하고 문학동네에서 20주년 기념으로 한국문학전집에 포함된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난  『외딴방』이 그녀의 십대 이야기, 공장을 다니며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녔던 시기의 이야기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른 소설들처럼 심연속 그녀의 생각들을 만날수 있겠다'라고 생각만 했다.

 

처음 작가의 책을 읽은게 『깊은 슬픔』이라는 책이었는데, 비슷한 느낌의 책일거라고만 생각을 했던 터라, 『외딴방』이 작가의 속내, 어쩌면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 너무 가슴이 아파 꼭꼭 숨겨두고 싶었던 날것의 감정들을 표현한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에서 작가의 마음속 깊은 슬픔을 엿본듯 했다. 아픈 시절, 아픈 사연을 꼭꼭 숨겨두고 싶었지만, 십여년이 지난뒤에 날것의 감정을 풀어놓기란 쉽지 않았을텐데도, 작가는 자신의 심연을 드러냈다. 꼭꼭 숨겨두었던 감정들을 '이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를' 글쓰기로 드러냈던 것이다.

 

글쓰기란 나에겐 집이었을까. 내 속을 뚫고 올라오는 문장들은, 그 순간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나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13페이지)

 

작가가 심연 속에 숨겨둔 외딴방에서의 일들을 꺼내게 한건 그 아픈 시절, 같이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녔던 한 친구의 확인 전화였다. 그때 그 애가 맞느냐고. 우리와 함께 다녔던 그 친구가 맞느냐고. 소설을 쓴다는게 너무 자랑스럽다는 그 친구의 말, 또한 왜 우리 이야기는 쓰지 않느냐는 친구의 말이 그저 목에 걸려 버렸다. 그 시절을 떠올린다는 건 그녀의 깊은 슬픔, 사람과의 관계맺기를 힘들어했던 그 시절의 아픔을 다시 꺼내놓는 일이기도 하므로 그녀는 아팠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누군가 떠올릴수밖에 없음을. 꼭꼭 숨겨두었던 자신의 아픔, 큰 상처를 꺼내는 일이므로 그녀는 오래도록 앓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적은 곳, 제주로 달려간 그녀는 다시 글쓰기에 매달린다.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녀는 열여섯 살의 시간속으로 들어간다. 학교에 가고 싶었던 열여섯 살 풋내기 소녀 시절로. 학교에 가고 싶어 오빠의 부름을 간절하게 기다렸던 것이다. 드디어 오빠의 편지를 받았다. 공장에 다니면서 학교에 다닐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 엄마와 외사촌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거대한 대우빌딩을 마주한 서울역, 오빠의 안내로 직업훈련원에서 교육받고 동남전기주식회사 라는 곳으로 가게 된다. 너무 학교가 가고 싶어 갔던 곳, 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노조가 새로 생기며 가입신청을 받았었고, 회사에서는 학교에 다니고 싶으면 노조 탈퇴를 하라고 압박을 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쓰려면 자신의 곁에 머물렀던 희재언니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서른일곱 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공단 근처의 외딴방. 그 외딴방의 한칸을 차지해 큰오빠와 외사촌과 주인공이 기거 했던 곳. 나중에는 셋째오빠까지 그 좁은방에서 웅크리고 자야 했던 외딴방. 그곳에서 아주 작은 방 하나에서 같은 학교의 교복을 빨고 있었던 희재 언니를 만났다. 세 살 많은 외사촌에게는 '너'라고 불렀으면서, 희재 언니에게는 꼬박꼬박 언니라고 불렀다.

 

주인공에게 희재언니는 그 시절의 모든 상징이었다.

함께 학교를 다니고, 언니의 흔적이 묻어 있던 곳. 과거 속에 깊이 숨겨둔 그곳을 십여 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가보질 못했다. 주인공은 그렇게 과거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녔던 일들을 떠올리며, 현재의 모습들을 마치 일기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연재글을 보고 연락해오는 이들, 흠모해 마지 않았던 오정희 선생님을 인터뷰 하던 일들을 담담하게 적어낸다. 아니, 담담하기보다는 가슴아픈 일들을 꺼내야만 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려면.

 

이제야 문체가 정해진다. 단문. 아주 단조롭게. 지나간 시간은 현재형으로, 지금의 시간은 과거형으로. 사진 찍듯. 선명하게. 외딴방이 닫히지 않게. 그때 방바닥을 쳐다보며 훈련원 대문을 향해 걸어가던 큰오빠의 고독을 문체 속에 끌어올 것.  (46페이지)

 

그냥 좋았어.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 금지된 것들을 꿈꿀 수가 있었지. 대체 그 꿈은 어디에서 흘러온 것일까. 나는 내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문학으로 인해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사회도 꿈을 꿀 수 있는 거 아니야?  (246페이지)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던 소설가인 주인공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외딴방에 꼭꼭 숨겨두었던 아픔을, 슬픔을, 두려움의 문을 서서히 열게 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는 일, 감추고 싶었고, 결코 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서 과거의 나, 과거 속의 희재 언니를 꺼내어 그 시간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서부터 진정한 자신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어쩌면 글쓰기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자신을 내보이는 일. 감추고 싶었던 일까지도 드러내야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일. 새로운 방법의 소설인것 같은데,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감동 속으로, 신경숙 작가가 말하는 그 시절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작가의 그 모든 감정들이 내 깊은 마음속 심연으로 이끌게 했다. 굉장한 수작이다. 이 아름다운 작품을 왜 이제야 만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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