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람이 바다를 지날 때
진주 지음 / 로코코 / 2014년 1월
평점 :
사랑이란 그렇다. 어느 순간 바람처럼 다가와 온 마음에 스미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미처 사랑을 깨닫기도 전에 함께 하며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이의 사랑이 어떻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러고보면 사랑은 참 비슷한 모습이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내가 해왔던 사랑도 그렇고 다른 이의 사랑을 보아도 사랑은 참 간단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고보면 진주 작가의 작품 속 사랑은 잔잔함을 가장한 격랑을 품고 있다.
사랑이 어떻게 잔잔하기만 할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상대방의 모든 것에 모든 감각이 향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아픔을 품고 있어도 사랑으로 그 아픔과 상처가 치유될 수도 있다. 진주 작가의 작품 속 여자주인공 들은 하나 같이 아픔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아픔을 가진 주인공이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들의 사랑은 격랑을 헤쳐나가 잔잔한 파도를 탈때까지 무심하고도 격정적인 사랑을 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의 남우도 그렇고, 『꽃송아리』의 연이도 그랬다. 아픔을 지니고 있는 주인공들이었지만, 오롯한 사랑을 받음으로 인해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지 않았던가.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은연중에 작가의 작품속 주인공들의 비슷한 모습을 기다려왔던가. 그렇게 많은 인물이 아닌데도 그렇게 느끼고 말았으니.
사람마다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는데, 『바람이 바다를 지날 때』속의 수안도 아픔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에서 많이 보아왔지만, 실제로 좀 산다는 사람들에게서는 많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한 일. 아름다운 배우였지만 욕심이 많았던 엄마때문에, 또는 엄마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모든 죄를 대신 집어 쓰고, 집안에서 죄인처럼 살아가는 이가 수안이다. 자신의 다른 삶일 결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사랑을 위해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집안의 이익을 위해 결혼시키려는 할머니의 뜻을 거절하지 못한다. 수안은 그게 자신이 살아가는 방법이었고, 조금이나마 엄마의 죄를 씻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이 어디 그렇던가.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과의 정략결혼전에, 자꾸 눈길이 가는 사람과 불타는 사랑을 해야겠다 하는데, 그 사람과의 마지막을 무 자르듯 자를 수 있냐 말이다. 한번 사랑에 빠져버리면, 그 사람의 다정함을 알아버렸는데 그 사랑을 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수안에게 깊이 빠져버린 체이스를, 체이스에게 빠져버린 수안은 이제 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순전히 자신 스스로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갓 태어난 인간은 형태 없는 찰흙 덩이에 불과하다. 어떻게 만져지느냐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란 아이는 올곧은 인간이 되고, 늑대의 무리에 섞여 자란 아이는 늑대가 된다. 그건 내재된 본성과는 무관한, 단지 처한 환경의 상이함이 만들어 낸 차이에 불과하다. 들판에 뿌리 내린 씨앗은 메꽃이 되고, 해변에 뿌리 내린 씨앗은 갯메꽃이 되는 것처럼. 그래서 생명은 위대하고, 또한 그래서 생명은 나약하다. (330페이지)
사실 『바람이 바다를 지날 때』의 스토리는 아주 사랑스럽지만은 않다. 사랑을 시작할 때의 그 가슴떨리는 설렘도 부족한 듯도 하다. 하지만 수안의 체이스를 향한 마음, 체이스가 수안을 향하는 마음을 표현한 문장들이 정말 좋다. 윗 글에서의 갯메꽃의 표현도 좋고, 문학 작품을 사랑하는 작가의 모든 마음들이 수안에게 투영되어 있다.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려 바다가 내다보이는 큰 창을 만든 도서관 속에서 마음의 위로를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도서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문학 작품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던 그 마음들이 보였다.
진주 작가의 글은 심연 속을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깊게 침잠한 심연 속에서 작가가 말하는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그저 마음이 저려온다. 남해의 햇살에 반짝이던 짙푸른 바다가 생각났다. 반짝이는 빛에 반사된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남해 냄새가 나던 곳, 햇살마져 남해 만의 햇살이 비추던 그 곳, 바다가 생각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