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아픈 사람을 보살펴야 하고, 개인의 생활은 없을 정도가 되어 간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병명이 불치병이든, 불치병이 아니든 오랜 병원 생활이 이어지다 보면, 누군가가 아프다고 말하면 짜증까지 일어날 태세다. 병원에 입원하다보면 자주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엔 자주 방문하게 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방문하는 기간이 띄엄띄엄 해진다. 마음은 자주 다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다른 일로 바빠지게 된다. 한쪽 마음으로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지만, 좀처럼 시간내기가 힘들어진다. 아마 이렇게 행동하는 것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리라.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내 아내에 대하여』는 불치병에 걸린 이를 돌보는 가족에 대한 모든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책 속의 주인공 셰퍼드는 '복막중피종'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아내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된다. '복막중피종'이라는 병은 복막을 감싸고 있는 미세한 막에 종양이 생긴 경우다. 중피종은 석면이 원인이 되는 병이기도 하다.
셰퍼드는 늘 '제2의 인생'을 꿈꾸었다. 적은 돈으로도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는 곳, 천국같은 그곳에서 자신의 제2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으로 구두쇠처럼 돈을 쓰며 돈을 모아왔다. 드디어 떠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표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 아들의 표도 구입했다. 왕복이 아닌 편도로 끊었다. 드디어 아내에게 말하기로 결심한 날, 아내가 가지 않는다고 해도, 혼자서라도 출발하고 말겠다고 결심하고 아내에게 말을 했건만, 아내는 더 충격의 말을 한 것이다. 자신은 따라가지 못한다고. 암이 걸려서 남편의 의료보험을 사용해야 겠다고 말한 것이다.
몇달 전에 미국에 사시는 시댁 큰집 시누이가 한국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미국은 민간 의료보험이라 의료비가 너무 비싸고, 유명하다는 의사는 만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래서 한국에 와 진찰을 하고 수술 받기로 했다며, 한국이 의료비가 저렴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의료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이런 것처럼 셰퍼드의 말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와 희귀병으로 인해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의료제도를 고발하고 있었다.
책의 한 장이 시작될 때마다 셰퍼드의 은행 잔고의 순자산가치가 나오는데, 셰퍼드의 아내 글리니스가 치료를 받을때마다 그들의 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보여준다. 셰퍼드가 속해 있는 회사의 의료보험 회사와 수술을 위해 찾아간 병원과 제휴된 게 아니라면 그 병원비는 셰퍼드에게 청구서가 다 날아오게 되는 것이다.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그의 잔고는 1년여만에 100만달러에 가까운 돈에서 3천달러 정도만 남은 파산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에게는 초기때부터 함께 일해온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잭슨이 있다.
잭슨에게도 아픈 딸이 있었다. 열일곱 살의 플리카는 FD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고, 잭슨의 아내 캐럴의 삶은 모든 것이 플리카에게 맞춰져 있었다. 잭슨의 의료보험으로는 딸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의료보험 회사가 좋은 IBM에 취직해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내고 있는 건강보험이 정작 보험 적용이 안되는 게 너무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 처럼 개혁안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암수술을 받고 나면 5년까지 병원비에 대해 많은 혜택이 있다고 들었다. 완치 판정이 나는 5년이 지나면 혜택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이처럼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더 좋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내 아내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고, 사실 찔리는 부분도 많았다. 가족 중에 한 분이 말기 위암에 걸려 돌아가셨는데, 몇번 찾아뵙지 못하게 보내드린 것 같아 무척 마음이 좋지 않았었다. 만날때마다 당신은 괜찮다고 하시는데 흑빛으로 변해가는 얼굴색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비슷한 말의 안부전화 드리기도 어려워했었던게 생각이 났다.
책에서는 글리니스가 암에 걸리고, 가족들, 친구들이 처음엔 안부 전화도 자주하고, 찾아오면서 입에 발린 소리를 하더니, 글리니스의 병이 깊어질수록 전화를 거는 횟수도, 시간도 짧아지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뜸해져 마음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셰퍼드의 생각을 통해 전해주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아픈 사람을 배려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아픈 사람에게는 몇마디의 위로가 크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찾아오지 않는 가족들과 친구들때문에 상처받게 된다는 이야기까지 건네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책은 이런 모든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아픈 사람의 화를 내는 감정,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가족들의 감정, 아픈 가족을 살리고싶은 마음과는 별도로 결국엔 돈이 문제라는 점, 돈이 없으면 치료를 못받을수 밖에 없는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들 말이다.
예전의 우리나라 같은 경우 암에 걸린 이에게 병명을 알려주지 않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건넸는데, 이번에 셰퍼드의 생각들을 보면 본인에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졌다. 본인이 살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죽음에 대해 준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헤어질때도 제대로 이별을 말하지 못한다는게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채 한달도 남지 않은 삶을 병원에서 있기 보다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이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말, 그리고 결말을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지만, 만약 죽음이 정해졌다면, 죽음에 대해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게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왜 나여야만 했는지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결국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더 편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도 하게 되지 않을까. 비극적인 이야기이지만, 왠지 긍정적인 마무리처럼 보여진다. 아마도 셰퍼드가 최선을 다해 글리니스를 돌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셰퍼드의 염원인 셰퍼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어서 그렇게 느껴졌을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