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지도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1
아베 고보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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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내 인생의 지도는 몇 장이나 될까.

책 속의 의뢰인의 동생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필요한 지도는 한 장이면 충분할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내 인생에 필요한 지도를 갖게 되는 것, 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그려왔던 자신만의 지도에서 빠져 나가고 싶은, 도망쳐버리고 싶은 생각을 한다. 일탈을 꿈꾸고, 실제로 소설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찾아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을 만나왔다.

 

보통의 생각이라면, 남아있는 가족들은 생각하지 않느냐고 생각했지만, 막상 자신의 인생에 새로 지도가 필요했을때 현재의 삶을 박차고 나가는 삶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겠다. 우리 또한 가끔씩 지금 현재의 삶에서 일탈을 꿈꾸지 않는가 말이다. 그럴때는 그의 인생에서 새 지도가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한 남자가 실종된 지 6개월이 넘었다.

실종된 남자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남자의 아내를 찾아간 주인공 '나'는 남자의 아내 행동이 이상하다. 실제로 찾아달라는 건지, 다른 것을 원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갑자기 소멸해버리듯 사라진 남편, 남편을 찾는 아내는 남편이 왜 집을 나갔는지, 남편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지 못한다. 다만 남동생한테 물어보라고 하고, 남동생이 찾고 있었다고만 말한다.

 

주인공인 탐정 '나'는 처음 의뢰인의 집에 갔을때 아내에게 느껴지는 모습이 자못 황당하다. 그리고 건네준 성냥갑 하나. 성냥갑에 적혀진 찻집의 '동백'이란 곳에 들렀지만, 사라져버린 남자의 정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던 의뢰인의 남동생을 그곳에서 우연처럼 만나, 사라진 남자의 행방을 찾지만 제대로 된 흔적하나 없었다.

 

남자가 다녔던 회사에도 가보지만, 어쩐지 그를 대하는 모습들이 호의적이지 않다.

다만 다시로라는 직원 하나가 사라진 남자의 사진이었다며 수사에 도움을 주는 것 같지만, 정작 탐정이 알아낸 것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수사를 게을리하지 않는 탐정은 자신의 눈에 비친 무언가를 보게 된다.

어떠한 것에 연결되었으리라는 걸, 의심스러운 눈길로 '동백'을 바라보지만, 의뢰인의 동생마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만 것이다.

 

 

탐정이 실종된 남자를 찾게 되는 과정은 다시 길을 잃어 버린다.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 삶의 지도를 잃어버린 것이다. 사람이 사라져버리게 되는 소멸,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재생이 보이는 작품이었다.

 

자신이 살았던 삶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사라질 수도 있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어떠한 행동으로 사라진 사람도 있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도를 만들게 되고, 지도가 그려진대로 따라가다보면 무작정 행복한 삶일까. 어떤 이유로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면 자신의 삶의 지도는 불타버릴 것이고, 새로운 지도를 써야 할 시기가 온다.

 

·········· 세상을 놓아버린 사람 같은 참담함도 전혀 없었고 ·········· 뭐랄까, 내면에서부터 삶의 의욕이 솟구쳐오르는 듯한 발걸음··········   (257페이지)

 

무거운 짐처럼 가지고 있었던 것을 놓아버리면, 윗 글에서처럼 삶의 의욕이 되살아 날지도 모른다. 활기찬 발걸음으로 세상을 향해 내딛는 사람의 모습이 비춰진다.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러자 오랜만에 분에 넘치는 환한 미소가 뺨을 녹이며 얼굴 가득 웃음이 번진다. (317페이지) 라고 나와 있다.

 

'일본의 카프카' 라고 일컬어지는 아베 고보의 작품 속에서 삶은 역시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걸 느꼈다. 어떤 이유로든 삶의 전환점이 왔을때 과감하게 새로운 삶을 향해 달려가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희열일 것이다. 과거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그 희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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