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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그 책 - 추억의 책장을 펼쳐 어린 나와 다시 만나다
곽아람 지음 / 앨리스 / 2013년 12월
평점 :
내가 책 좋아하는 아이로 자란 건 어릴적 시골학교의 선생님 곁에서 놀면서이다.
섬의 한 초등학교, 한 학년이 겨우 120명이었고, 60명씩 두 반으로 나뉘어 공부하던 학교였고, 40분여를 걸어가야 학교가 있었다. 한번 학교에 가면 학교의 선생님들 곁에서 많이 놀곤 했는데, 그때 나의 놀이터는 학교 도서실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책을 사줄리는 만무했고, 도서실 가득 책이 꽂혀져 있는 책장에서 우연찮게 한 권을 빼어들었는데, 그 책이 그렇게 재미있을수 없었다. 그날 이후 일부러 도서실로 찾아가 집에 갈때까지 책을 읽었던듯 하다. 소도시로 나온 중학교에서는 만화에 눈을 떠 책은 그다지 읽지 못했고, 고등학교시절엔 하이틴 로맨스 소설에 빠져 있었고, 정작 내가 다시 책을 읽은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이다. 스무살 시절에 나는 공기를 흡입하듯 책을 읽었다. 한국소설이며, 세계문학전집을 날을 새면서까지 읽었다.
아마도 한편으로는 어릴적 읽었던 동화가 마음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결혼후 아이들을 키우며 아이들에게 맨처음 사준게 동화책이었으니까. 장난감보다도 나는 책을 더 사줬고, 입이 마르도록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세계명작동화를 읽었던 시간들을 즐겼다. 왜냐면 어릴적 내가 읽었던 그 감성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동화속 공주님들, 왕자님들의 꿈을 아이들도 꾸길 바랬고, 내가 좋아했던 책을 아이들에게도 권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이 책 어릴적 엄마가 무척 좋아했던 책이라고. 아이들이 커서도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랬고, 어릴때 읽었던 동화속 이야기에 아이들이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기를 바랬다.
몇년전 나는 한 블로그를 방문했다.
서양의 그림,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검색하다 들어갔던지 했던 블로그였다. 블로그의 글을 읽다보니 그림에 관련된 글이 있었고, 글을 쓴 블로거가 조선일보 기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놓고, 새로운 글이 올라왔으려나 하고 몇번씩 방문하곤 했었다. 괜시리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듯 그렇게 띄엄띄엄 방문했었다. 나는 그분의 블로그에서 많은 그림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의 캐릭터로 사용하고 있는 프란츠 아이블의 「책읽는 소녀」도 그분의 블로그에서 알게 되었고, 퍼온 그림이기도 하다.
어느 날 방문했을때 나는 그분의 블로그에서 어릴적 읽었던 동화책을 모으고 있다는 글을 보았다. 나 또한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책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있었던 차였고, 아이들이 읽었던 세계명작동화도 괜시리 헌책방에 팔아버렸다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던 때였다.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동화책을 모으고 있다는 작가의 글에 깊은 공감을 했었던듯 하다. 어릴적에 읽었던 동화책을 읽으며 어린시절의 나와 조우할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저자의 책을 읽어보자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기회가 닿지 않았다. 그러던차에 저자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우연히 들른 블로그에 있었던 글에 대한 책이라는 걸 알게 되어 반가움이 앞섰다. 그림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을 한다고 생각했었던 저자가 사실은 서울대의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왔다는 걸 난 이 책을 만나며 작가소개에서 알게 되었다.
저자 곽아람은 『어릴 적 그 책』에서 총 24편의 동화를 소개한다. 어릴적 추억과 현재의 시간을 아우르는 내용으로 책을 읽는 우리 또한 유년 시절의 추억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지만, 시간이 갈수록 과거의 일들을 추억한다. 그 기억이 어린시절 일수록 더 아련해지는 것을 느낄수 있다. 어릴적에 같이 놀던 아이들을 추억하는 경우도 많지만, 나 또한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에 어린시절의 향수를 느끼곤 한다. 그래서 다시 읽고 싶은 책에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 스무살 시절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 읽고 싶어한다.
소설 속에서, 어릴적에 읽었던 동화를 만나는 날이면 그 책에 대한 호감도가 더 쑤욱하고 올라갈 정도이다. 한 예를 들면 김경욱 작가의 『동화처럼』에서 개구리왕자 이야기를 할때도 그랬으니까.
처음 소개하는 책은 초록색으로 된 계몽사 판 〈어린이 세계의 명작〉중 『일본편』에 있는 「학 색시」를 소개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이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내용이 확실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어느 곳에선가 읽었다. 다만 우리집에 있지 않았던 책이라 기억하지 못할뿐. 아마도 시골의 초등학교 도서실에서 읽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어릴 때 읽었던 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일의 묘미는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어릴 때는 몰라서 지나쳤던 것들을 발견하고, 이야기의 한 장면으로 스쳐지나갔던 것들을 파헤쳐 '지식'으로 새로이 습득하는 즐거움은 정말 크다. (53페이지)
자연에 관심이 없었던 작가가 새로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떠가며 경탄한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취재 때문에 호암미술관에 들렀던 때 한국 전통정원 '희원'을 둘러보며 고즈넉하고 아리따운 모습에 반하여 그날 저녁에 바로『비밀의 정원』을 주문했다 했다. 정원을 가꾸며 심술궂은 아이가 점차 따뜻한 아이로 변해갔고,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두었던 고모부도 어느새 비밀의 정원때문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읽지 않은 것 같다. 내용은 다 알고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이어서 나는 이번 기회에 책을 구입해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러고는 몇 권의 책을 메모했다.
동화속에서 많이 만났고, 작가가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소개한 책 중에서 『비밀의 정원』과 『소공녀』, 『작은 아씨들』등을 말이다. 어렸을때 읽었으나 새로이 읽으면 다른 맛이 느껴지기도 할 것이므로. 모든 책이 그랬듯, 어릴 적 읽었던 동화를 다시 읽는 일은 추억을 읽는 일이기도 하므로.
내가 읽은 책을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아이들과 책이야기 하는게 즐겁다. 이런 마음은 나만 가지고 있는게 아니듯 저자도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서울에서, 천 리 길 진주에서, 우리는 같은 책을 읽고 있다. 우리 가족은 한솥밥을 먹는 '식구食口'라기보다는 같은 책을 읽는 '독안讀眼'인 셈이다. (141페이지) 라고 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책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모습인 것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책을 쓴 것은 나지만, 이 책을 만든 것은 두 분이다. 라고 말이다.
이 책을 만나는 일은 어린 시절의 자신과 조우하는 일이다.
작가가 말하는 글에서,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우리는 작가의 어린시절을 생각하고, 우리 자신의 어린시절을 추억한다.
책을 읽는 일도, 책이 내게로 오는 것도 인연이 아닐까 한다.
어느 책에선가 내가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한다고 했다. 내가 책한테 가는 게 아니라 책이 내게로 오는 것이다. 작가를 아는 일, 그 작가의 책을 읽는 일, 모두 하나의 인연으로 묶여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