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김동영 지음 / 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도, 책 속에서 혹은 주변에서 죽음을 만나면 나의 미래, 불투명한 미래의 모습, 혹은 죽음을 생각하곤 한다. 지금보다 과학이 발달하여 목숨을 몇십 년쯤 연장할 수 있다고 해도, 나에게 다가오는 죽음은 언젠가는 올테니까. 내가 아무리 다가오지 말라고 해도 시시각각 다고오고 있으니까.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지만, 언제가는 죽기 마련이다.
이 책을 읽다가, 나에게 죽음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존재. 수백 권의 책을 읽은들, 수백 편의 영화를 본들, 죽음에 초연할 수 있을까? 나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숙연하게 받아들일 것 같았지만, 갈수록 인정하기 힘들어진다. 내가 놓고 갈 것들, 가족, 친구들. 그 모든 것들이 눈에 어른거렸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것도 같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때 정리하기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정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나. 책 속의 주인공을 보며 너무 많은 것을 갖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와 『나만 위로할 것』이 작품을 읽지는 않았지만 김동영의 책을 사랑하는 이웃분의 글에서 만난 책은 아주 다감한 여행 에세이였다. 그런 그가 장편소설을 냈다. 제목도 로맨틱한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라는 책이었다. 책 표지 또한 한지 느낌이 나는 질감으로 된 코랄핑크빛을 지닌 표지다. 로맨틱한 제목과 로맨틱한 표지는 당연히 로맨틱한 글을 상상하게 했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 여든아홉 살된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첫 장을 읽고, 그 다음 장을 펼치면서, 당연히 그가 사랑했던 청춘의 시절로 돌아가겠지 하는 나만의 상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여든아홉 에서의 아주 최근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과학이 발전하여 줄기세포로 인해 백이십 세 까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시대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오십대의 나이에 사랑니 때문에 수명을 연장하는 시술을 받게 된 남자는 오십대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든여덟 살의 남자이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연구소에서 수학 문제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노웨어라는 카페에 앉아 있길 즐겼다. 여전히 미모를 간직하고 있는 카페 여주인과 카페에 드나드는 한 여고생과의 친분을 유지하면서, 자신에게 없었던 진정한 친구, 파릇파릇한 여고생 친구를 보면서 저절로 기분 좋아지는 저 머나먼 순수의 시대로 그를 이끌어간다. 새가 지저귀듯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는 젊은 날의 추억과 그를 스쳐간 아내들을 기억한다.
몸은 오십 대의 모습이지만, 속은 구십이 가까워진 그대로를 느끼고 있는 그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다. 외적인 젊음을 가졌지만, 외적은 젊음을 가진만큼 행복한것 같지는 않다. 젊은 날에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는 시간을 지내고 있었다. 그는 카페 노웨어에서 담배와 커피로 자신을 혹사하면서 찬란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는 글을 쓴다. 그가 글을 쓰고 있을때 열여덟 살의 친구는 그의 곁에서 그에게 몇마디의 말을 건네면서 나이를 떠난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자신의 젊은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했던 젊은 날이었음을 느끼는 것이다.
청춘이 영원할 줄 알았다. 더이상 늙지 않으면 시간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더 많은 일들을 하고 보다 밝은 미래가 내게 비춰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253페이지)
나이대로 시간이 지난다고 한다.
아마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십대 때는 시간이 너무 더디가는 것 같고, 나이가 어느 정도 든 4,50대의 중년들은 시속 4~50킬로미터의 속도대로 시간이 흐른다고 한다. 내가 느끼는 바도 그렇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십대의 나는 시간이 너무 가지 않아 애를 태웠다. 어서 시간이 흘러 스무 살의 나를 얼른 만나고 싶어 애를 태웠다. 지금의 나는 40대,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디 갔으면 좋으련만, 엊그제 1월인것 같았는데, 며칠 있으면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그만큼 시간이 빨리가는 것 같아, 어떨때는 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 애를 태운다.
이럴때 시간의 도둑이 나왔던 모모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시간을 훔치는 도둑 회색신사에게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이 들때가 많다. 붙잡고 싶은 시간만큼 지금 현재의 시간이 얼마나 찬란한 시절인가를 우리는 아주 먼 시간이 지난후에야 깨닫게 된다. 지금 현재가 우리에게 찬란한 시절임을 우린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깨달을지도 모른다. 시간의 소중함, 현재의 모든 순간이 찬란했음을 지금, 이 순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