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공쿠르상 수상작'이란 닉네임이 붙은 소설이 좋지 않은적이 없었다.
공쿠르상 수상작을 읽을때마다 감동을 받곤 하는 책이었기 때문에, 다소 거창한 제목의 『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지만, 주저없게 읽게 되는게 또 공쿠르상 수상작인것 같다. 읽을 책이 쌓여있는데도 이 책 부터 읽는다는 것, 그만큼 공쿠르상 수상작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작가 프랑수아 가르드는 이력이 특이하다.
전문 작가도 아니었고, 그로노블 행정판사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다. 그의 이력을 보고는 이 책이 소설이 아닌 르뽀인가 했다. 하지만 책장을 처음 폈을때부터 내용에 압도되었다. 상상력의 산물이 아닐까 싶었던 이 책의 내용은 실제 일어난 일이며, 이 책의 주인공 나르시스 펠티에는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실제 인물에게 일어난 일들을 소설화 시킨 것인데, 문명과 야만, 이성과 광기라는 대립되는 테마를 다루었다고 했다.
책 내용에서부터 한 편은 나르시스 펠티에가 조난당하기 시작한 3인칭 과거의 이야기가, 다른 한 편은 지리학자 옥타브 드 발롬브룅이 파리 지리학회장에게 보내는 편지가 교차되어 진행된다. 과거의 이야기에서는 그가 조난을 당한후 배고픔, 외로움, 절대적인 고독감에 떨며 목숨이 위협받을 처지에 그를 도운 야만인 노파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노파를 따라가 그들이 함께 움직이는 야만족 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과거 자신이 살았던 과거를 잃고 17년 동안이나 그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말, 그들의 생활에 적응해가는 나르시스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지리학자 옥타브는 나르시스를 관찰하며, 그가 야만인의 사회에서 모든것을 잊고 파리로 돌아와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롭게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며 학문적 고찰과 그에 대한 인간애가 생기는 걸 느낄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나르시스가 야만족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가족에게로 가지 못하게 될 것을 알자, 야만족의 말을 배우고, 그들이 몸에 문신을 하듯 자신도 그렇게 하면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던 것처럼 말이다. 잊고자 하는 것은 잊게 되는 것인가. 17년 전에 썼던 말을 잊게 되기도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난 네 살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나는데, 자신을 키워준 부모, 가족, 자신이 했던 말을 그렇게 잊어버릴수도 있는가 싶었다. 한 마디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다 잊어버린줄 알았던 말을 옥타브에게서 듣고 입안에서, 머릿속에서 맴돌던 말을 내뱉는 몇마디의 외침. 그 외침은 나르시스의 무의식 속에서 늘 살아있었나 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만 그가 몇마디의 말을 배우고, 야만인에서 문명인으로 변화하는 나르시스를 보는 것은 감동이었다. 처음에 자신이 그토록 원했었고, 이제 문명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아이처럼 하나씩 배워나가는 모습들 말이다.
이 모험을 통해 저 자신도 변화한 것이 아닐까요? 제가 관찰을 심화하면 할수록 제가 가진 평소 신념이 뿌리째 흔들립니다. 도대체 야만인이라는 것이 무얼까요? (158 페이지)
말한다는 것,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옛 시절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끝없이 이끌어내려 했지만 영구적으로 봉인되어 버린 기억을 말로 풀어내는 것, 즉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가 만약 내 질문에 대답을 한다면, 스스로를 극도의 위험에 빠뜨리는 꼴이 될 겁니다. 죽는 거죠. 임상적인 죽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타인 모두에 대한 죽음 말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두 세계를 동시에 머릿속에 담을 수 없음으로 인한 죽음, 동시에 흰둥이와 검둥이로 존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죽음. (349 페이지)
야만인이 문명인의 사회에 와 적응해 가는 사람도 있었고, 조난을 당해 야만족과 함께 생활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이렇듯 나르시스처럼 두 사회를 모두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나르시스는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조난을 당한 깊은 숲속에서도, 다시 문명인으로 돌아와서도 적응하려 했다. 어떻게든 생존하려하는 그의 본능적 노력이 문명사회에서 와서도 그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끝까지 입을 닫았는지도 모른다.
공쿠르상 답게 꽤 괜찮은 작품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정글'이라고 표현한다. 이 험난한 정글을 두 번이나 겪는 나르시스의 속마음을 조금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살아온 모든 삶에서 생존을 향한 몸부림을 쳤던 나르시스와 그런 나르시스를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도 변해갔던 한 지리학자의 생각들에 동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