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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 제18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홍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평점 :
예전의 나는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 주었다. 전화해서 나에게 이야기를 건네면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건넬때 적당히 한 마디씩 말을 건네주고, 더 하고 싶은 말을 하게 조용히 들어주는걸 잘했었다. 요즘의 나를 예전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들어주는 사람'이 아닌것 같다. 하긴 전화보다는 휴대폰의 카톡으로 하는 세상이 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와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나도 모르게 눈물 흘리던 때도 꽤 있었는데, 요즘은 꽤 시끌벅적하게 노는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고 사진 찍기 놀이를 한다던가, 쇼핑을 한다던가, 아님 등산을 한다던가 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열어보일 시간을 덜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대신 나는 작가가 하는 말을 들어준다.
짧게는 200페이지도 안되는 것, 때로는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 속에서 작가가 하는 말들을 듣는다. 누군가와 사랑하고, 어떤 이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때론 모험을 하는 이야기를 나는 묵묵히 듣는다. 몇시간이고 앉아서 작가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 세상 속에는 이렇게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나는 작가가 하는 말속에서 대신 살고 있다.
오늘 나는 이레라는 이름을 가진 스물여섯살 젊은 여자의 삶을 바라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며 율이네 구멍가게에서 율이와 함께 앉아있곤 하는 이레는 율이를 만난지 6년, 혼자 짝사랑중이다. 율이에게 거쳐간 여자 친구들이 많아, 고백해서 그의 여자친구가 되어 곧 헤어지고 싶지는 않다. 이대로 그의 옆에서 그를 바라보기만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때론 마음속에서 불이 일어날 때도 있다. 그의 마음을 얻고 싶어 그에게 사랑의 말을 하고 싶기도 하다.
율이는 할머니와 둘이 사는데, 여든 살이 넘은 할머니는 암에 걸렸으면서도 밝고 기운차게 살아가고 계신다.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직장을 찾다가 <들어주는 사람>이란 회사에 취직한다. 이곳 <들어주는 사람>의 사장은 이레가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일을 잘한다며 취직시킨다. 이야기 할 사람이 없어 <들어주는 사람>에 가입해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모습은 요즘 우리의 삭막한 현실을 보는 것 같다. 일주일에 두세 번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 매일 들어주었으면 하는 사람. 결국에는 사람과의 소통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인데,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건 외롭다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는 건 대화가 꼭 필요해서만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를 받는 사람을 많이 보아왔다. 타인에게 의견을 구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타인의 생각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스스로 고민하는 것을 이야기할 뿐이다. 결정을 하기 전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 때문이다.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라는 제목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걸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짝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제목의 말에 공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좋아한다는 고백을 못하고, 그의 주변에서 얼쩡거리기만 하고 있을때, 만약 좋아하는 사람에게 여자 친구라도 생기면 온 세상을 다 잃은 듯 슬프기도 할 것이다. 마음속에서는 고백을 하고 싶다고 아우성을 칠테지만, 소극적인 이레는 율이에게 그러지 못하는 것처럼.
<들어주는 사람>에서 통화하고 있을때,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때, 이레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음을 알게 되는 일도 그렇다. 사랑에 소극적일뿐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것에도 느리게 나아가는 이레의 모습은 어느 누군가의 모습과도 겹쳐 보였다. 느려서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겠지만, 이레처럼 느리게 율이를 바라보는 것도 괜찮은 일 같기도 했다.
6년이라는 시간동안 느리게 율이를 바라보았던 이레의 다급한 몸짓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졌다.
나의 곁에서 나를 느리게 보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저 일상일 뿐이지만 어느 순간에 그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으니, 우리는 또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나 싶다.
나에게 건네는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