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괴 1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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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괴決壞』라는 책을 구입하고 읽게 되었을때, 나는 '결괴'라는 뜻이 '매듭을 풀게 되다'라는 뜻이 아닐까 짐작했다. 뜻이 궁금해 인터넷 검색해보니 '방죽이나 둑이 물에 밀려 터져 무너지는 것'이 결괴라고 나와 있다. 책을 읽다보니 왜 제목을 '결괴'로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마음속에 둑을 쌓아놓다. 차곡차곡, 자신의 감정들을 그렇게 쌓아놓는데, 이 마음의 둑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금씩 풀어내기도 하지만, 어느 한 순간에 그걸 악의적으로 풀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는게 힘들다고 푸념하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들은 굳어있는 마음의 매듭을 조금씩 푸는 게 아닐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속으로 혼자 침잠하다가 마음속에 매듭이 커다란 둑이 되어 버리는 일도 생길 것이다. 힘들다고 누군가에게 푸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났지 않은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괴』는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악의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출하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무차별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의 마음들을 담았다. 지방 도시에서 살아가는 한 젊은 가장이 있다. 세살 된 아들 아이와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료스케는 잦은 전근 때문에 마음을 터놓을 수 없는 친구 하나 없다. 그에게는 뭐든지 뛰어났고 뭐든지 잘하며, 좋은 직장에 다니는 형 다카시가 있다. 사이좋은 형이지만 형에 대한 열등감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없는 속마음을 류스케는 인터넷에 일기를 쓰고 있다.

 

또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집단괴롭힘을 당하는 중학생 도모야가 있다. 친구들에게 당하는 일들 때문에 소년 역시 인터넷을 떠돌며 성인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살인에 대한 망상을 키워나간다. 누군가를 죽이겠다며 자신의 속마음을 자신만의 인터넷 일기장에 써놓는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여성들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형 다카시는 국회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다. 동생 류스케의 아내 요시에는 류스케가 남모르게 일기를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함이 들었다. 그런 마음들을 류스케의 형 다카시에서 의논하게 된다. 그러던 차에 출장간 류스케가 마지막으로 형 다카시를 만난후 토막난 시체로 나타났다. 사체가 한군데서 다 나타난게 아니라 쓰레기봉투에 담아져 전국에 뿌려졌다. 류스케를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이유때문에 다카시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그후에도 무차별적인 살인은 끊이지 않았다. 경찰은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자백만을 기다리지만 그는 자신은 살인을 하지 않았다며 자백하기를 거부했다.

 

살인에 대한 망상을 키우는 소년 도모야를 보면 아이 엄마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아이를 심하게 때렸다가 과도한 애정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부모의 역할, 특히 한결같은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부모가 아이에게 일관성 있는 마음으로 대하지 않으면 아이는 부모의 기분에 따라 맞춰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게 된다. 내가 본 도모야는 그런 엄마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받고 다른 아이들에게 해를 가했을때 대처하는 엄마의 태도도 소설속 교사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설은 아주 천천히 진행이 된다.

류스케가 느끼는 감정들, 가족을 만나는 이야기,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행동들, 형에 대한 감정들을 아주 세세하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한 다카시가 만나는 사람들, 그가 나누는 대화들, 자신이 느끼는 기이한 마음들, 그리고 도모야가 학교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담담하게 말한다. 아주 서서히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깊은 내면 속으로 이끌어간다.

 

두 권의 책인데 류스케가 시체로 발견되는 것이 첫째 권의 마지막 부분이고, 살인자가 밝혀지는 시점도 거의 막바지 부분이다. 살인자가 왜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질렀는지도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바다. 하지만 한가지 알수 있는 건 정체를 알수 없었던 살인자 또한 유년 시절에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불우한 가정, 마음 잡을데 없는 가정에서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은 가정이 평안해야 불행하지 않다는 것 또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반사회성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이 그처럼 무차별적인,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사실에 왠지 무섭게 느껴졌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우리의 주변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우리 내면의 깊은 절망과 그에 대한 악의로 나타나는 범죄에 대한 생각들을 담았다. 범죄로 인해 가족들이 느끼는 깊은 절망과 상처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도 알려주었다. 책을 읽는내내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다. 왜 그래야만 했는가에 대한 물음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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