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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공포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실비아 플라스의 시 전집과 그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을 읽을때 이처럼 고뇌하는 여성이 있는가, 끝없이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한 여성 소설가의 소설은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어느 한 사람의 내면은 우리가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알지 못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하고 있지 않은 이상 알 수가 없다. 뜻모를 이야기, 뜻모를 행동으로도 알수가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읽은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과 자전적 소설의 감흥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소설속 주인공 이사도라의 이야기를 만났다. 이 책이 나왔던 1973년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이 놓았던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라는 소설을 말이다. 이 작품을 내놓고 작가는 욕설을 담은 협박편지와 찬사를 가득 담은 편지들이 동시에 쏟아지는 나날이었다고 했다.
소설속에서는 비속어라고 해야 할 낱말들이 난무한다.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말, 아주 어렸을 때는 간혹 들렸던 말이지만, 우리가 금지하고 있는 말을. 책 속에서는 거의 보지 못하는 비속어 말이다. 이런 비속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불편할 소설이다. 그녀, 이사도라의 마음속에 낱말로 무수히 나타내는 낱말이므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읽어내다 보면 그녀의 마음속, 어쩌면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조금은 대변하는 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표현을 하지 않는다 뿐이지 성性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항상 고민하는 문제가 아니던가. 이사도라가 좀더 유별나게 표현한다 뿐이지.
사실 이사도라 식의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적나라한 그녀의 표현에 미리부터 질리기도 했지만 충분히 있을수 있는 일이며, 숨겨두고 있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사랑을 얻기 위한 나의 노력이야. (463페이지)
학회때문에 빈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사도라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비행기 안에는 117명의 정신분석 전문의가 탑승하고 있었고, 이사도라는 적어도 여섯 명에게 상담 치료를 받았고 일곱번째 의사와 결혼했다. 늘 정신분석을 받고 있었지만 그녀가 겪는 비행공포증은 해가 갈수록 더 심해졌다. 남편 베넷과 함께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지퍼 터지는 섹스를 경험하고 싶다. 아니 상상한다. 낯선 남자와 눈빛을 교환하고 어디론가 향하는 그런 상상 말이다. 여기에서 이사도라는 꼭 낯선 남자여야 했다.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보지만 어느새 바람빠지는 풍선처럼 그 상상은 사라지고 만다. 그녀와 함께 5년째 살고 있는 남편 베넷은 이제 낯선 남자가 아니다. 때로 침대에서 그녀는 베넷을 낯선 남자라고 상상한다. 누군가 그랬다. 남편은 남자가 아니고 가족이라고. 문득 그말이 떠올랐다.
학회가 시작될 무렵, 정신분석에 관한 학회의 기사를 쓰겠다고 기자의 신분으로 그곳엘 갔지만 그녀에게 출입증은 건네지지 않았고, 그녀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상상 속 남자와 부합하는 인물이다. 눈빛 한번 마주치자마자 불꽃이 타오른다. 그 남자, 에이드리언은 말을 건네며 자신의 엉덩이를 꼬집는다. 이 남자는 자신의 환상속 지퍼 터지는 섹스의 대상자였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뭔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상상속 인물, 즉 낯선 남자인 에이드리언은 현재의 자신에게 최고의 남자가 될 것 같았다.
이사도라는 적개심으로 불타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한 명의 단짝 친구 정도는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결혼의 의미를 믿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결혼생활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때 고개드는 그 갈망 때문에 힘들어 할 뿐이었다. 그 불안감과 그 굶주림, 그 모든 것의 울림의 소리를, 욕망을 주체할 수 없을 뿐이었다.
침묵이야말로 악기 중에 가장 무딘 악기다. 침묵은 나를 땅으로 박아넣는 망치다. 침묵은 나를 죄책감의 심연으로 끌어내린다. 침묵은 내 머릿속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는 그 어떤 목소리보다 가혹하게 나를 비난하게 만든다. (201페이지)
부분적으로는 그런 이유로 나는 글을 쓴다.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보지 않고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나의 글쓰기는 내 머릿속 미지의 세계로 나를 데려다줄 잠수함이고 우주선이다. 그 모험은 끝이 없고 무궁무진하다. (395페이지)
자신의 가족의 치부를 과감하게 드러냈고, 그래서 가족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기도 했던 에리카 종은 이사도라 윙의 입을 빌어 자신의 속내를 과감하게 쏟아냈다. 그럼에도 그녀가 하는 말에 우리는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다. 한 사람의 아내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외로움, 여자로서 살아가는 삶, 사랑이 필요한 사람으로서의 내적 갈등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수치스럽고 은밀한 생각들을 이사도라 윙의 이름으로 말하며 자신의 자아를 찾는 여정이다.
에리카 종이 40년 전에 발표했던 소설이지만, 요즘의 세태와 별다를게 없다.
자신의 내밀한 감정들을 과감하게 표현하지 않을뿐, 지금의 많은 여성들도 이사도라 윙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칠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