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사과 꽃이 피었다
황인숙 지음 / 문학세계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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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는 시인이 있다.

시인은 신문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시인이 엄선한 좋은 시詩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매일 아침 바쁜 시간에 신문을 훑어 보는데, 나는 바빠도 시인이 소개하는 시를 꼭 읽고 넘어간다. 시인이 소개하는 시들은 내가 모르는 시인의 시가 많이 있다. 시의 제목과 시인의 이름이 생소하다는건, 내가 그만큼 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시를 많이 읽지 않아도, 시인이 소개하는 시들을 읽으며 나는 시를 읽고, 시인들의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한다. 금새 잊을지라도, 다음에 보았을때는 그래도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내가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는 시인은 『꽃사과 꽃이 피었다』라는 시선집을 낸 황인숙 시인이다. 황인숙 시인은 1978년부터 2007년 사이에 쓰고, 시집으로 묶여 나온 시들에서 시들을 골랐다고 했다. 나는 일주일에 세 번씩 시인의 글들을 만나왔기 때문에, 황인숙 시인의 시를 읽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선집에서 시인의 시들을 만나보니, 처음이었다. 시인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봄에 분홍색으로 꽃망울 졌다가 하얀색으로 활짝 피는 꽃사과 꽃을 좋아한다.

사과가 익을 가을이면 큰 사과처럼 빨갛게 익어가는 꽃사과는 상당히 오밀조밀하고 귀엽다. 매실 만큼의 크기로 빨갛게 익어가면, 시큼한 단맛도 느낄수 있는게 꽃사과다. 이렇듯 좋아하는 꽃사과 꽃을 제목으로 하는 시선집이 나와서 무척 반가웠다. 시인의 30년간의 시작 활동을 갈무리 한 시선집이다.

 

시선집의 제목으로 쓴 시를 먼저 만나보면,

 

꽃사과 꽃이 피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눈을 치켜들자

떨어지던 꽃사과 꽃

도로 튀어오른다.

바람도 미미한데

불같이 일어난다.

희디흰 불꽃이다.

꽃사과 꽃, 꽃사과 꽃.   (「꽃사과 꽃이 피었다 」중에서)

 

금방이라도 꽃사과 꽃이 튀어오를 것만 같다.

 

시인은 길고양이들의 엄마라고 했다.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는 시인은 고양이들을 아껴서인지 고양이에 관한 시도 많이 썼다.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라고 시작하는 시「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라는 시를 읽어보면, 자유로운 고양이, 벌판을 뛰어노는 고양이를 그리고 있었다. 죽어서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데, 시인은 시에서 고양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었다. 고양이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나는 요즘 아파트 내에서 고양이를 보면 '야옹' 하고 한 마디 해주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나는 시인의 시를 두 번 정도 읽었는데, 어느 한 시를 읽으며 가슴이 저려왔다.

언젠가는 죽을지도 모르지만, 내 비명을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느 순간 삶을 달리할 지도 모르는데, 이처럼 시인은 비명을 시로 써 놓았다. 

 

그 여자를 반듯하게

편히 뉘어도 좋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녀 가슴 위에 공책 한 권.

그리고 오른손에 펜을 쥐어

포개어 놓으라.

 

비바람이 뚫고 햇살이 비워낸

두개골 속을

맑은 벼락이 울 릴 때,

그녀 오른팔 뼈다귀는

늑골 위를 더듬으리.

행복하게 뻐거덕거리며.   (비명碑銘) 

 

오랜만에 읽는 시는 무척 좋았다. 

시는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효과가 있다. 느리게 읽는 시, 맨 뒷 장을 다 읽고, 다시 앞 장으로 와 다시 읽는 시, 시의 의미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삶을 돌아 본다. 현재의 삶을 생각한다. 

 

제목이 너무 좋아 다시 읽고 싶은 시를 소개하겠다.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인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제목도 좋고, 시 내용도 마음속에 들어온다. 비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지 이 시는 더욱더 마음에 들어온다. 나도 말하고 싶다. '비가 온다구!' 하고 소중한 이에게 말하고 싶다.  

 

 

가을하면 생각나는게 시인데, 황인숙 시인의 시는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우리의 인생을 알게 해주는 시인의 「가을밤 1」이란 시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사십 대의 나이, 몇 년 있으면 오십이 되는 나이. 그 나이를 알리는 듯한 시가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시詩, 정말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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