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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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최명희 작가의 『혼불』에 빠져 허우적거렸었다. 열 권의 책을 순식간에 읽고, 책 속의 주인공들의 삶에서 한동안 빠져 나오지 못했다. 책을 쓰다가 유명을 달리하신 최명희 작가 때문에 오래도록 애를 태우기도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년 전에 전주 여행을 하던 날, 나는 『혼불』을 쓴 최명희 문학관을 방문했다. 여행안내서에 있었던 걸 발견하고, 한옥마을과 함께 필수 코스로 잡았던 곳이었다. 최명희 문학관에 들어갔을때, 유리관 안에 높게높게 쌓여있던 친필원고 더미에 그저 반가움이 앞섰다. 그 많은 원고더미를 한 장이라도 가질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최명희 문학관을 거닐었다.

 

혼불 문학상 수상작 들이 나오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인연이 없어 두 권의 수상작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제3회 수상작인 『홍도』를 발견했다. 책 제목 '홍도' 보다 책 표지가 더 눈에 들어와 박혔다. 도저히 읽지 않고는 못 배길 표지였다. 수채화처럼 유려한 선으로 그려진 여자의 모습에 숨이 박혔다.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기리게 할 '혼불 문학상' 수상작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표지로 만나는 『홍도』는 이 표지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았으리라 짐작되었다.

 

『홍도』는 헬싱키를 출발 한국 인천행 비행기로 오는 여덟 시간 동안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이야기하는 걸 담았다. 현재의 삶과 과거 속의 삶을 반추하는 이야기이다. 처음에 난 홍도가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려니 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이야기는 동화속에서나 있음직하다고 생각했다. 정여립에 관한 장편 영화를 준비하는 동현에게 다가온 '홍도'라는 여자는 자신이 선조 시대에 살았던 사람인듯 말하고 있었다. 정여립은 자신의 할머니의 오라비고, 스크랩북에서 언급한 리진길이라는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이다. 동현이 계산해 본 홍도의 나이는 사백서른세 살이었다. 아름다운 외모로 미소만 짓고 있는 홍도를 보며 왠지 홍도의 말이 믿고 싶어졌다.

 

정여립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자 스크랩을 했지만, 정여립이 왜 자결을 했는지 진실을 알수 없었던 동현은 홍도의 이야기로 인해 정여립이 원했던 일들을 파악해간다. 『홍도』는 정여립 사건을 매개로 홍도의 지난 4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에게 역사책으로만 존재했던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동계를 조직했던 정여립은 선조 22년에 있었던 기축옥사를 불러온 장본인이었다. 기축옥사의 한복판에 홍도가 있었다. 종이에 꽃물을 들이고 마음이 동한 시를 적은걸 보고, 당나라 시인 설도를 쏙 빼닮았다 하여 설도의 자 홍도라 부르라고 했던 정여립을 홍도는 죽도할아버지라 불렀었다.   

 

 

역사란, 기록하는 자가 전하고 싶은 사실만을 간추리고 얼버무려 제 입맛에 맞게 기록하는 법이다. 따라서 수많은 진실은 사실이라는 말로 짓이겨지고 탈탈 털려 몇 자에 불과한 글자와 몇 줄로 채워진 문장으로만 남는다. 진실은 모두 사실이 되지 못하고 사실은 모두 역사가 되지 못한 채 지워지고 잊히거나 곰팡내 나는 책장 한 귀퉁이에서 나뒹굴고 있을지도 모른다.  (111페이지)

 

김대현의 『홍도』는 한 여자가 살아온 지난 날의 삶이자 우리의 역사속으로 안내한다.

홍도라는 여자가 살아온 기구한 삶 속에서, 홍도가 어린 계집아이로 겪었던 기축옥사에서부터 임진왜란, 천주박해까지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마주한다.  그녀가 여태까지 살면서 만난 몇 번의 사랑하는 사람, 또 보내야만 했을 홍도의 기구한 삶, 400년이나 기다려 새로 태어난 사람을 만날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는 것. 한 눈에 알아본 사랑이다. 홍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지난 날들의 이야기를 건넸다.

 

내가 표지를 보고 기대했던 책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름다운 표지 속 여자처럼 홍도의 기구한 삶은 그래도 나름 자신의 삶을 살아왔고, 우리의 역사 한복판에서 살아남았다. 홍도가 살고자해서 산것은 아니었지만, 지나온 시간들을 견디며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홍도가 이야기를 듣는 동현과 나직나직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홍도의 이야기에 홀렸다. 홀려버리고 말았다.

 

문득, 다시 전주로 발걸음을 향하고 싶어졌다.

혼불의 숨결이 살아있는 소설  『홍도』를 읽으니,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다시 만나고 싶고, 최명희 문학관에 높다랗게 쌓여있는 친필원고를 바라보며 혼불의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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