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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평점 :
난 여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 구나 싶었다.
최근에 읽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그렇고, 『1Q84』또한 하루키의 에세이와는 좀 다른 느낌이구나 했다. 우리가 익히 알아오던 『상실의 시대』로 알려진 책이 민음사에서 새로 나왔다. 지난 해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초록색과 빨간색 표지의 『노르웨이의 숲』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 새로 또 구입하게 된 작품이다.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며 며칠을 그렇게 지냈다. 책속의 주인공 와타나베에 빠져 하루키를 읽은 시간이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모르겠는데, 내가 읽은 하루키의 소설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다.
우리는 모두 지난 날 젊은이들이었다.
현재의 젊은 이들도 있을 것이지만, 지난 날, 나의 젊은 시절들을 그리워하게 된, 모든 것들이 아픔 뿐이라고 생각했었던 날들이 생각나게 한 책이었다. 만 열여덟에서 스무살의 시간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일상이 시처럼, 고통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을 이십년 쯤 지난후에 생각해보면, 마치 그날의 일들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펼쳐지는 걸 느낄수 있다. 그날의 일들이 마치 영화 화면처럼, 들리는 소리, 펼쳐지는 선명한 색감, 느꼈던 감정들 까지 자세하게 생각나는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한 비행기 안에서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이 흘러나오자, 마치 그림처럼, 영화속 화면처럼 펼쳐지는 기억속의 시간들을 들여다보며 이 책은 시작된다. 그 시간들이 존재 했던 곳에서는 주위의 풍경이나 소리가 하나도 안보였던것 같지만, 시간이 지난후 그 시간들을 기억할 때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떠오르듯, 와타나베는 열여덟살의 자신을 떠올린다. 와타나베에게 언제까지고 자신을 잊지 말라했던 여자, 나오코를 추억한다. 더불어 자신의 젊은 날들을 추억한다.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내가 존재하고 이렇게 네 곁에 있었다는 걸 언제까지나 기억해 줄래?
(20 페이지)
고등학교시절 친했던 친구 기즈키와 그의 여자친구 나오코와 함께 와타나베는 가장 친한 친구로 함께 어울렸다. 셋이서 함께 어울렸던 그 시간들은 기즈키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인해 어그러져 버린다. 와타나베는 기즈키와 지냈던 공간에서 지내기 힘들어 고향을 떠나 도쿄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기숙사에서 묵으며 대학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나오코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오코와 함께 거리를 하염없이 걸으며, 그들은 애써 기즈키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둘다에게 아픈 기억들이므로. 슬픈 기억들을 공유하는 친구로서 둘은 만나서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서로에게 슬픔을 공유하는 시간이었고,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 시간들이었다.
스무살이 가까워 오는 시간들중 와타나베와 함께 한 이들은 기즈키의 여자 친구 나오코와 함께였고,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는 이유로 대화가 통한다며 친하게 된 나가사와 선배와 시간들을 함께 했다. 수업 하나를 같이 듣는 다는 이유로 알게된 미도리와의 만남 또한 열아홉의 시간들을 함께 한 이들이었다. 나오코와 와타나베가 함께 한 시간들, 미도리와 와타나베가 함께 했던 시간들은 모두 자신들의 젊은 날을 공유했던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사랑했던 그들의 모습들이 새록새록 떠올리며 지난 날을 추억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시간들을 웅크리고 있을때, 이야기를 건네고, 함께 걸으며 시간들을 공유했던 이들은 모두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은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의 정경이 세세하게 우리의 머릿속에서 살아나듯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는 하루키 답게, 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사는 와타나베에게 청량감을 주었던 것은 음악이었고 고전 문학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유산』같은 경우, 몇번이고 읽어도 읽을때마다 감동을 받았다. 늘 책을 가까이 했던 그는 누군가와 이야기할 것을 책을 통해서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키의 책에서 늘 존재하는, 음악이 있어 와타나베는 그 시간들을 견뎌냈다.
매일 아침 태엽을 감듯이 열심히 살아보자고 마음 먹은 와타나베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을 좀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젊은 날들을 떠올리게 하는 글, 우리를 추억의 시간속으로 이끄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