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의 역사
박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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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작가를 처음 만난게 2년 반쯤 된것 같다.

제30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던 『백수생활백서』를 읽고 작가에게 반해버렸다. 『백수생활백서』에서 주인공 서연은 오로지 책을 구입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갖는게 아닌, 언제라도 그만두고 책을 읽기 쉽게 파트타임 일을 하는 것이다. 일년에 300권에서 500권 정도의 책을 읽으며, 하루의 일상이 책을 읽고 구입하는 것이다. 갖고 싶은 절판된 책이 있을때, 인터넷에서 연락을 취해 만나기도 한다. 만약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구입하기로 했을때, 벤치에 앉아 『연인』을 쌓아놓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을때, 약속시간이 다 되면 '연인 이세요?' 하고 물어볼 정도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을 읽는 독자, 책을 너무 사랑해 마지 않는 독자, 온 집안에 책이 가득 차 있어서 앉을 자리도 없게 만드는 애독자가 있으면 너무도 반갑다. 너무 부러운 일이기도 하고,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 교감하는 기분을 느낀다. 이렇듯 애독자의 모든 것을 닮았기에 박주영의 글을 좋아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 모두 네 권 정도 되는 장편소설이다. 박주영 작가는 이번에 단편 소설집을 냈다. 『실연의 역사』라는 제목을 가지고. 우리 모두는  한두 번쯤 실연을 해봤다. 내가 실연을 주었든, 실연을 당했든, 한두 번쯤 실연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박주영의 소설집에서 『실연의 역사』라는 단편 소설이 있을까 싶었지만, 제목과 일치하는 소설을 찾으니 「칼처럼 꽃처럼」이다. 그 속에서 실연의 역사를 나누는 인물들이 나오니 그러지 않을까 했다.

 

여섯 편의 단편들을 보자면,

 

「나는 아이팟이다」공부하는게 싫고 취미가 없어 중학교 중퇴를 한 정아는 엄마의 병실에서 암투병을 하는 윤주 언니를 아이팟 때문에 알게 되었다. 정아에게는 친언니가 있지만 미국에 살고 있었고, 윤주 언니 때문에 엄마의 병을 윤아 언니에게 알린다. 엄마는 너무 빨리 죽었고, 언니는 너무 늦게 왔다. 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윤아 언니보다는 윤주 언니가 더 편하다. 윤주 언니도, 윤아 언니도, 정아도 모두 아이팟을 듣는다. 아이팟으로 이어지는 매개체, 내가 가지고 있는 똑같은 물건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을때 무척 반가운 느낌이 들곤 하는데, 이들 모두는 아이팟을 듣는 이들이다.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이 와도 아이팟이라는 매개체 때문에 이들은 외롭지 않다.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스파이의 탄생」계절이 두 번 바뀔 동안 혼수 상태였다가 깨어난 남자가 있다. 현재 서른다섯 살로 15년 동안의 스무살 이후로 기억이 없다. 이제 새로 자신을 알아가야 할 남자다. 자신에게는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무엇보다 애인도 없었던듯 하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 한달에 한 번 정도 찾아오는 친구가 있었으나 기억에 없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 가족이라도 있으면 불안한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겠지만, 가족도 없는 상태에서는 너무도 불안할 것 같다. 자신의 부모도 스무살 이전까지만 기억나는데, 무슨 일을 했는지도 기억에 없으니 얼마나 불안할까. 증권회사 애널리스트 였다는데, 다시 직장을 찾아가야 할텐데, 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기억나지 않는 과거, 불안한 미래, 요즘의 젊은이들과도 비슷한 모습이다.

 

「칼처럼 꽃처럼」그와 헤어진 '나'에게 온 검은색 봉투에 담긴 초대장, 그와 나는 모든 가난한 이들이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가 된 케이도 그녀와 실연을 했다. 엄마의 죽음과 연관된 어떤 남자도, 엄마의 죽음으로 사랑을 잃은 아저씨도, 엄마의 죽음에 의문을 표하던 신문사 기자 와이도 최근에 실연을 한 남자였다. 실연을 한 사람들은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그들의 침울한 표정에서 자신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이심전심을 느낀다.  

 

사납고 시끄럽고 더러운 그곳에서 나는 그 어떤 때보다 사랑했다. 그를,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나를.  (71페이지)

 

 

「소설 小說 小雪」출장가는 비행기 안에서 늘 책을 읽는 남자, 떠나는 비행기에서 늘 영화를 보는 여자, 눈 때문에 비행기가 예정된 곳에 내리지 못하고 다른 공항에 착륙을 했다. 공항에서 대기중에 책을 읽는 남자를 발견한 여자는 남자가 읽던 소설 쓰는 일을 도왔다며, 소설가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둘은 서로 소설가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하는 방법과 그 소설을 유서로 남기는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나눈다. 그리고 신문의 한쪽면에 소설가가 죽었다는 기사가 뜬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종말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그때, 순수한 인간인 어머니와 완전한 인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리브카는 완전한 인간들의 삶을 한 장의 필름으로 기록하는 이다. 리브카는 기록자, 작가, 화가 등으로 불리며, 다른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고 기록하고 그린다. 순수한 인간들은 자신의 죽음이 언제 올지 알지 못하고, 완전한 인간들은 자신의 죽음을 조절할 수 있고, 다시 재생할 수 있다.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폐기되는 인조인간들이 있는 곳에서 리브카는 그들의 삶을 기록한다.    

 

「메리 골드」서른세 살의 친구 가영, 윤서, 지효가 있다. 소설속 주인공은 가영으로 친구들에게 얼음공주로 불린다. 공부를 잘했던 언니가 아버지를 따라 교사를 하며 결혼도 하고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는데 반해, 가영은 무엇하나 해놓은게 없다. 인물을 보면 출신학교나 직업, 재산이 딸리고, 돈을 물려줄 병들고 나이 든 부모가 있으나 인물이 별로인 남자중에서 후자 쪽을 선택할 정도로 세상 물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을 겪는 우리, 그게 꼭 남녀 사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모든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만, 헤어짐을 겪은 우리들은 늘 힘겨워한다.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으니 다시는 사랑을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사랑할 대상은 끝없이 나타난다. 삶에서 사랑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 경우가 있는데, 아침에 출근 준비하면서 듣는 라디오에서다. 그 많은 사람들이 늘 사랑때문에 아파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싶다는 사연을 보내는 것을 볼때면, 우리 삶에서 사랑은 뗄래야 뗄수 없는 것 같다.

 

사랑을 할땐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랑하는 상대방만 있는것 같지만, 실연을 하고 보면 이 세상엔 수많은 일들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났을때, 그 사람만이 이 세상 전부는 아니라는 걸,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도 한다. 실연의 역사를 가진 이들, 실연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성큼 성장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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