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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들이 글을 쓸때, 어떤 영감이 생겨, 밥 먹는 것도 잊고 글을 쓰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들의 병, 위대한 작품을 쓰고 싶은 작가들의 고통이 크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속속들이 알수 없었을 뿐이다. 작가가 작품을 냈다. 평단의 찬사와 독자들의 찬사를 받고, 책이 오래도록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학교의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위대한 작품을 썼을때, 그 작품을 능가하는 위대한 작품을 써야겠다는 욕망은 더 커질 것이다. 압박이 시작되었다. 책을 출간했던 출판사에서도, 작품을 사랑한 독자들도 작가에게 새로운 작품은 언제 나오느냐고 묻는다. 그 말을 흘려 듣다가 작품을 다시 써야 겠다고 생각했을때 한 줄도 써지지 않는 글 때문에 고통스럽다. 장소를 바꿔 본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 모르는 곳에서 작품을 써보기로 한다. 낯선 곳에서의 풍경과 사람들 때문에 새로운 글이 떠오를 것도 같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이럴때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 될것도 같다.
한 예로, 난 글을 잘 쓰지 못한다. 그저 책 읽는 게 좋아 책을 사랑하는 독자다.
한때 문학 소녀였을때 시를 써 본적도 있고, 소설을 써보겠다고 원고지를 사다놓고 글을 써보려 했던 적도 있다. 내가 읽은 책과, 책을 읽었을때의 느낌을 적어놓자고 쓰던 독후감이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책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리뷰가 써지지 않을때, 왜그럴까 싶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 리뷰부터 쓰고 나서,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습관이 있다. 머리를 쥐어짜보지만 몇줄의 글이 써지지 않아 글을 쓰는게 이렇게 고통스럽구나 싶다. 그래서 난 되도록이면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을 부담없이 쓰려한다. 그런데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 리뷰대회를 하거나 하면, 잘 써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서인지 그렇잖아도 못쓰는 글이 더 엉망이 되어버리는 걸 알수 있었다. 잘 써야한다는 부담감이 그렇게 되는 것 같았다. 하물며 일개 독자인 나도 리뷰 하나 쓰는데 글이 써지지 않아 고통스러운데, 작가들의 고통이야 오죽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소설을 향한 치열한 욕망이 그려진 소설
이 소설은 첫 작품을 성공하여 많은 사랑을 받고, 작가의 일생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을 쓰겠다는 한 작가의 열망에서 비롯된 진실을 파헤쳐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두 명의 작가가 나온다. 작품의 화자인 마커스 골드먼과 마커스의 스승 해리 쿼버트가 그들이다. 서른 살의 작가는 첫 작품으로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출판사와의 계약 때문에 곧 두번째 작품을 써야 한다. 자신의 스승인 해리 쿼버트 만큼 일생일대 최고의 작품을 쓰고 싶지만, 한 줄의 글도 써지지 않는다. 계약기간은 다가오고, 글은 써지지 않자 마커스 골드먼은 일년동안이나 연락을 하지 않았던 스승 해리 쿼버트가 살고 있는 오로라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한달 가량을 머물렀어도 글을 쓸수가 없었다. 글을 써야겠다는 욕망은 커져 가지만 글을 향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후 해리의 집 앞마당에서 열다섯 살 소녀의 시체를 발견한다. 해리의 위대한 작품 「악의 기원」초고 원고와 함께. 열다섯 살의 소녀는 33년전 실종된 놀라 켈러건이었다. 해리는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고, 마커스 골드먼은 스승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오로라로 향한다. 자신의 대학 교수이자, 친구, 아버지이자 문학적 스승인 해리를 구하기 위해. 해리는 열다섯 살의 놀라를 사랑했다. 또한 「악의 기원」이 해리와 열다섯 살의 놀라의 이야기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작가 마커스는 자신의 스승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하게 하고, 2008년 미국의 대선과 더불어 미국의 최대 이슈였던 해리 쿼버트 사건을 책으로 쓰게 된다. 해리 쿼버트가 살인범이 아니라는 것을 온 국민에게 알리고자 한 것이다.
자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삶에 의미를 둘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네. 책과 사랑. (2권, 314페이지)
예술하는 사람들, 문학 작품을 쓴 사람들이나 그림을 그린 사람들, 음악을 만든 사람들을 보면, 그 작품이 있게 한 주인공, 뮤즈가 항상 있었다. 예술가의 감성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자신만의 뮤즈. 뮤즈는 때로는 연인으로, 때로는 소설속이나 음악, 그림의 주인공으로 나타났다. 작가의 예술적 감성을 살아있게 하고, 작가에게 훌륭한 작품이 될수 있는 원동력이 있게 했다.
작가는 주변 인물들에서 작품속 인물들을 창조해왔다. 때로는 실명으로, 때로는 이름을 바꿔서. 독자는 책을 읽을 때, 작품속에 들어있는 메시지를 작가의 글로 읽는다. 작품속에서 작가의 취향을, 작품속에서 작가의 생각들을 읽으며, 작가를 조금씩 이해한다.
작품속 작가는 위대한 소설을 쓴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며, 스승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낸다. 소설의 한 장이 시작 될때마다 스승 해리의 '좋은 글을 쓰는 법'을 알려주며, 우리를 해리 쿼버트 사건 속으로, 해리 쿼버트 사건을 파헤치는 마커스 골드먼의 생각속으로 인도하게 된다. 또한 해리의 인생의 연인이었고 뮤즈였던 놀라 펠러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작가들의 파라다이스'처럼 어딘가에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갖는다. 이게 소설이 가진 힘일 것이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그런 열망을 갖게하는 작가들의 역량일 것이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이렇게 크다는 걸 알수 있는 작품이었다.
재미와 즐거움, 또한 가장 중요한 좋은 책이라는 걸. 다 읽고 아쉬워지는 책, 책의 내용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책이다. 이렇듯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책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한다.
좋은 책이란, 다 읽은 게 아쉬워지는 그런 책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