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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평점 :
대부분 책을 읽을 때, 책이 재미있으면 숨 쉴 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간다고 표현하고는 한다. 나 또한 다른 리뷰에서 그렇게 밝힌 바 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이 책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숨 쉴 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설이 아니라 깊은 숨을 내쉬느라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소설(신형철 문학평론가) 이라고 표현했다. 처음 책을 읽으려고 할 때는 이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무릎을 쳤다. 그 말이 맞았구나.
제임스 설터의 소설 『가벼운 나날』은 부부의 결혼 생활을 다루고 있다.
소설 속의 부부 비리와 네드라의 20년에 걸친 결혼 생활인데,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들과 닮아 있다. 어쩌면 우리 이웃의 부부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아직 젊기만한 20대의 결혼 생활에서부터 그들이 40대 중반이 넘어가는 모습을 보이는데, 결코 행복한 모습은 아니었다. 중산층의 가정,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아주 모범적인 가정인양 그들은 아이들에게 헌신을 다 한다. 하지만 같은 침대에 들었을때는 다른 생각으로 등을 돌린다. 그들이 결혼 했을 적에는 무척 사랑하는 사이였을텐데도, 그들은 어느새 아이들의 이야기를 할때는 제외하고, 부부간의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부부가 되었다.
밖에서 보이는 그들 부부의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파티에 참석해 이웃들과 친분을 나누며, 자신들의 미래를 상상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행복한지는 알 수 없다. 비리는 비리대로 건축사무실에서 아름다운 한 여자를 비서로 앉히고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주변에서 맴돈다. 네드라 또한 친분이 있는 이와 식사를 함께 하고 그의 침대에 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혼자서 마음대로 여행을 꿈꾸는 네드라, 삶의 자유를 꿈꾸는 네드라의 모습은 분명 나나 내 주변의 사람들이 꿈꾸는 미래이긴하다. 하지만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임스 설터는 부부의 이런 모습들을 아주 담담하게, 우리들의 생활을 보는 듯 그렇게 그려내고 있었다.
실제로 이 세상은 두 종류의 삶이 있다. 비리의 말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삶, 그리고 다른 하나의 삶, 문제가 있는 건 이 다른 삶이고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이 삶이다. (51페이지)
주변의 부부들을 보면, 남편이 외도를 하는 사람들, 아내가 외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남편의 무심함 때문에 이혼을 생각하지만, 자식 때문에 못하는 부부들이 꽤 많다는 걸 볼 수 있다. 저마다 힘들다고 이야기하지만, 부부가 헤어지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그냥 그대로 사는 걸 보아 왔다. 소위 '쇼윈도 부부'라고 있다. 밖에서는 그렇게 다정하게 챙기고, 사이 좋은 부부처럼 보이지만, 집에서는 각방을 쓴다거나, 말 한 마디 제대로 나누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나이 먹을수록, 사이 좋은 부부가 점점 드물어져 가고 있다. 남남처럼 지내며, 각자의 삶을 사는 부분들, 결코 좋아보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부부의 모습은 서로 친구같은 부부다.
나이들수록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찾아 떠나고, 부부만 남게 된다.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을 볼때, 남편보다는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내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친구들도 좋지만, 부부가 함께 여행하고, 산책하면서 담소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인다. 나이들수록 같은 취미를 가지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사는 것 보다는,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나중에, 오랜 시간이 지났을때, 배우자가 진정 소중한 존재임을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게 용기가 있었다면, 믿음이 있었다면, 그는 생각했다. 우리는 마치 중요한 일을 수행하듯 우리 자신을 보존한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다른 사람을 희생시킨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장해둔다. 남들이 실패하면 우리가 성공한 곳이고, 남들이 바보 같으면 우리는 현명한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부여잡고 나아간다.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하나님밖에 안 남을 때까지. 우리가 믿지 않는,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그 하나님. (421페이지)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은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만든다.
삶을 너무 가볍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임스 설터는 이런 우리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삶이 너무 무거운 것도 우습지 않겠느냐고. 우리 마음속에서 지금 삶과는 다른 삶을 꿈꾸듯, 삶을 바람을 스치듯 가볍게, 빛에 비치듯 가볍게 살아가는 것도 어떠느냐고 속삭이듯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