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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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994년은 어땠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신랑을 다시 만났던 해였구나. 나의 1994년을 생각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헤어졌던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나던 해였다. 한참 방황을 할 때였나 보다. 이십 대의 나를 기억해보면 거의 방황이었다. 그이를 만나 방황하는 내 삶을 그만 접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이렇게 곰곰 생각하게 하는 1994년.

다들 각자의 해로 기억할 것이다. 나는 신랑을 다시 만나던 해로. 또 누군가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김일성이 죽은 해로, 또 누군가는 온 국민을 아프게 했던 성수대교 참사로 기억할 것이다. 책 속의 열일곱 살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시간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 책은 2011년 현재의 그들이 열일곱의 시간들을 기억하는 내용들이다.

 

 

다른 어느 누구도 그들 틈에 끼어들지 못했던 세 사람, 지혜, 준모, 나, 세미 그들의 이야기이다. 지혜는 보는 것, 듣는 것,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아이이다. 그 모든 것들이 세세하게 기억이 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는 아이, 더 이상 그 어떤 새로운 것도 뇌속에 넣고 싶지 않는 이다. 다른 한 친구 준모는 뚜렛 증후군에 음성 틱 장애가 있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욕설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나, 세미는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한후 정이 없는 할머니 집에서 기거하고 있는 아이로, 친한 친구들인 지혜나 준모에게도 자신이 살고 있는, 으리으리한 집을 보여주지 않는다. 할머니 집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세미에게는 두 친구들만 있으면 되었다.

 

 

학생은 꽃이에요. 절벽에 핀 풀꽃. 잊고 잊히며 살아야 해요.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오래 안고 가지 말아요. 무슨 일이더라도.

  

사무쳐도, 아파도, 다 흘려보내요. 내 것이 아닌 듯. 그러면 꺾이지도 밟히지도 않을 거예요.  (88페이지)

 

2011년의 화자는 지혜다. 지혜는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하고, 1994년의 대부분은 세미가 이야기 하고, 한 꼭지 준모도 이야기한다. 같은 시간을 지냈는데도, 생각의 차이, 바라보는 것의 차이는 각자의 기억속에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림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는 지혜의 기억들도 때로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대부분을 이끄는 세미는 자신들의 이야기, 다시는 오지 않을 기억들을 이야기한다.

 

 

 

 

아직 십대의 그들. 스무살이 되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몇십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돌아보면 가장 생각나는 건 그때 십대 시절이다. 십대 시절을 오로지 셋과 지냈던 그들의 이야기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의 추억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그들만의 모든 것들을 '안녕'하고 외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정이현 작가의 소설은 담담하게 읽혀진다.

내가 읽었던 소설 중 가족문제를 날카롭고도 담담하게 써내려갔던『너는 모른다』도 그렇고, 연애소설이라는 『사랑의 기초_연인들』또한 그랬다.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그것은 꿈일뿐, 그토록 설레하던 사랑에 감정은 시들해지고, 덤덤해지는 사랑을 이야기했다. 세친구들 세미, 준모, 지혜의 십대를 이야기하는 『안녕, 내 모든 것』도 그랬다. 고모가 고모부에게 맞는 부분을 볼때도 그렇고, 누군가와 하룻밤을 보낼때도 그랬다. 십대의 사랑도 격정적일줄 알았지만, 이상하게 정이현 작가의 소설은 담담하게 읽혀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아침, 우리는 날마다 그 시간들에 안녕하고 있다.

내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는 그 시간들은 지나고보면 기억하고 싶은, 때론 기억하기 싫은 순간들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의 모든 내 시간들에게 나도 '안녕'하고 말 한 마디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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